I. 파견대학
1. 개요
파리고등사범학교(École Normale Supérieure)는 1793년 인문사회과학 및 자연과학 분야의 고등교육 교원 양성을 목표로 설립된 프랑스 최초의 그랑제콜(grande école)이다. 프랑스 학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명실상부한 프랑스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이다. 학생들은 고교 졸업 이후 2년 간 그랑제콜 준비반(CPGE)을 이수한 학생 가운데서 엄격한 시험을 통해 선발한다.
2. 수강신청 방법 및 기숙사
수강신청은 없으며, 모든 강의를 자유롭게 청강할 수 있다. 학점 이수를 원하는 경우, 담당교수에게 평가를 요청하면 기말 보고서 또는 시험을 통해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다. 종강 후 학점을 이수한 강의의 개설학과를 통해 성적표를 받는다. 학점은 기본적으로 이수/미이수로 구분되며, 과목에 따라 학생이 요청하는 경우 20점 만점의 성적을 부여한다.
고등사범학교는 파리 시내 3곳에 캠퍼스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캠퍼스가 기숙사를 갖추고 있다. 고등사범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원칙적으로 기숙사에 거주한다. 기숙사는 1인 1실이며, 신청자에 한해 2인이 한 방에 입주할 수 있다. 기숙사비는 월 250유로이지만, 교환학생을 포함한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무료이다.
3. 교환 프로그램 담당자, 담당부서 이름 및 연락처
Corinne Zylbersztain
Direction des Relations Internationales
Ecole Normale Supérieure
45, rue d'Ulm - 75230 Paris Cedex 05
Tél : 01 44 32 31 98
e-mail : Corinne.Zylbersztain@ens.fr
II. 학업
1. 수강과목 설명 및 추천 강의
고등사범학교 1학년 과정은 한국의 학부 3학년에 상당하나, 실제 1학년 학생들이 수강하는 강의의 수준은 프랑스 내 타 대학의 석사과정에 준한다. 불어불문학 강의의 경우 담당교수의 강설식 강의가 비중이 높고, 3학년 및 박사과정(4학년) 강의의 경우에는 박사급 연구자들이 한 강의에 다수 참여하여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하는 강좌가 많다. 불어불문학 강의의 경우 시험, 토론 및 수시 과제가 없으며, 과제 및 발표는 학생 본인의 학위논문 주제와 관련된 주제를 장려한다. 요컨대 학문 후속 세대로서 학생 개인의 역량을 충실하게 인정하고 있다.
현대 프랑스 문학에 주된 관심을 가지고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이 분야 최고의 학생들인 고등사범학교 학생들과 동일한 수준의 작품 연구 수업에 적응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2010년 봄학기에 수강한 강의는 모두 넓은 의미에서 불문학 연구방법론에 속한다. 수강한 강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 문학사의 구축(Construction de l’histoire littéraire)
근대 유럽에서 이론으로서, 그리고 분과학문으로서 문학사(文學史)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또한 문학사의 기본 개념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를 통시적으로 검토하는 강의이다. 강의의 목표는 유럽 문학사를 파악하는 거시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함양하는 데 있다.
기말 과제물로서 ‘트리스탄과 이죄’ 전설에 관련된 일련의 중세 프랑스의 문학 작품들이 19세기 초반에서 20세기 말에 이르는 기간 동안 중세 불문학사 기술에서 차지하는 위치 및 역할을 통시적으로 고찰한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 문헌학과 해석(Philologie et interprétation)
작가의 초고, 교정쇄, 원작 및 참고문헌 등의 문헌학적 자료들을 통해 작품의 정확한 이해를 도모하는 문학연구방법론 강의이다. 강의의 4분의 3는 16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불문학 텍스트를 대상으로 담당교수가 직접 분석을 진행하였고, 나머지는 수강생들이 텍스트를 선정하여 습득한 방법론에 따라 1시간 가량의 발표를 수행했다.
기말 과제물을 위해 담당교수의 조언을 따라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의 『W 또는 유년기의 추억』을 분석 작품으로 선정하고, 작품의 모델이 된 나치 강제 수용소 관련 증언 문헌들과 작품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였다.
- 문학 텍스트의 언어학적 읽기(Lecture linguistique des textes littéraires)
문학 전공자들을 위한 현대언어학 입문 강의이다. 클로드 시몽(Claude Simon)의 단편소설 『북(Nord)』을 다채로운 언어학 이론을 통해 한 학기에 걸쳐 분석하였다. 파리 3대학 언어학과의 미셸 샤롤(Michel Charolles) 교수와 피에르 르고픽(Pierre Le Goffic) 교수가 강의를 주도하는 가운데, 고등사범학교의 안마리 파예(Anne-Marie Paillet) 교수 및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카트린 푹스(Catherine Fuchs) 교수가 참가하여 강의의 폭을 넓혔다.
조르주 페렉의 『W 또는 유년기의 추억』에 나타난 프랑스어 시제 사용의 양상을 분석한 보고서를 제출하여 학점을 이수하였다.
- 프랑스어 작문 연습(Atelier d’écriture)
외국어교육원에서 제공하는 외국인을 위한 고급 프랑스어 작문 강의이다. 담당교수인 미셸 길(Michèle Ghil) 교수는 중세불문학 박사이며, 강의의 초점 역시 실용문 작성보다는 고전 불문학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작문기법상의 특징을 파악한 뒤 같은 유형의 텍스트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단편소설, 묘사문, 산문시 등을 작성하는 주제가 매주 부과되며, 학기 중에 2회의 시험을 통해 어휘력 및 정확한 작문 능력을 평가한다.
2. 외국어 습득 정도
고등사범학교는 영어 강의를 제공하지 않는다. 고급 수준의 프랑스어 능력이 필수적이다. 한편 학내 외국어교육원(ECLA)에서 외국인을 위한 프랑스어 강좌를 제공한다. 강좌는 수준에 따라 5개 반으로 편성되며, 모든 학생이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고, 과제를 제출하고 시험에 응시한 학생에 한해 소정의 학점을 부여한다.
3. 학습 방법
모든 강의가 프랑스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강의 녹음을 반복해서 청취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인문학의 경우 공동연구 과제가 드물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습을 혼자서 진행해야 했다. 기말보고서 작성의 경우 담당교수의 상세한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교수당 학생수가 대단히 적은 학교로서, 개인별 지도는 고등사범학교의 강점 중 하나이다. ‘문헌학과 해석’의 경우 담당교수인 마리크리스틴 벨로스타(Marie-Christine Bellosta) 교수와의 두 번의 면담을 통해 연구주제를 확정했고, 연구 계획서를 작성하여 보고서 집필 전에 지도를 받았고, 보고서 제출 후에는 상세한 서면 첨삭과 함께 1시간에 이르는 면담을 진행했다.
고등사범학교의 도서관은 80만여 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는데, 이 도서관의 방대한 문헌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문학사의 구축’ 강의의 기말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필요한 문헌 조사 작업은 모든 학생들에게 19세기 전반에 출판된 고서들을 개방하는 도서관 덕분에 진행될 수 있었다.
III. 생활
1. 입국 시 필요한 물품 및 현지 물가 수준
간단한 취사가 가능한 기숙사가 제공되기 때문에 서울대학교 기숙사 입사에 필요한 것 이외에 필요한 물품은 많지 않다. 프랑스 내 한국 물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곳이 많기 때문에 식품 등을 많이 가져가지 않는 것이 좋다. 비자 발급 및 학교 등록시에 필요한 서류들만 잘 준비하면 된다. 전압 및 전기 코드는 한국과 같다.
파리의 겨울은 길고 습하며, 한국과 같은 혹한은 없지 않지만 10월부터 4월까지는 겨울옷이 필요하다. 여름은 대체로 건조하고 온화하지만 날씨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긴옷을 충분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 고등사범학교의 냉난방 시설이 좋지 않기 때문에, 보고자는 5월에 스웨터를 입고 잔 적이 있다.
관광도시인 파리의 물가는 프랑스 타 지역에 비해 매우 비싸며 유럽의 평균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의류를 비롯한 공산품은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출국시 잘 준비할 필요가 있지만, 농산품은 한국보다 저렴하다. 한편 학생 복지가 매우 우수하며 경제적 혜택이 많다.
2. 식사 및 편의시설(의료, 은행, 교통, 통신 등)
고등사범학교에서는 주중에 조식 2.5유로, 중식 및 석식 3.8유로의 가격에 식사를 제공하며 식사의 품질은 프랑스의 명성에 걸맞게 우수하다. 한편 특정 대학에 소속되지 않은 채 파리시 학생조합(CROUS)에서 운영하는 학생식당이 파리 시내에 여러 곳 있는데, 고등사범학교의 세 캠퍼스에서 모두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CROUS 식당에서는 매일 중식과 석식을 2.9유로에 판매한다.
고등사범학교 학사과를 통해 유리한 조건으로 의료보험 가입 및 은행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 학내에 보건진료소를 갖추고 있으며, 교환학생의 대다수가 거주하는 윌름(Ulm) 캠퍼스와 주르당(Jourdan) 캠퍼스의 경우 도보 1분 거리에 종합병원이 위치한다. 파리의 대중교통 요금은 대략 서울의 2배가 조금 못 되는 수준이나, 학생의 경우 9월부터 1년간 300유로에 모든 파리 시내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파리는 서울의 반이 안 되는 면적에 19개의 지하철 노선을 갖추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윌름(Ulm) 캠퍼스는 대학지구인 카르티에 라탱의 한복판에 있고, 주르당(Jourdan) 캠퍼스는 파리국제학생기숙사(CIUP)와 인접해 있어, 생활환경은 파리의 다른 학교에서 수학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우수하다.
고등사범학교 캠퍼스 전체에서 무선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으며, 기숙사 방에 인터넷과 유선전화를 연결할 수 있다. 휴대전화의 경우, 사용량이 많지 않은 외국인들은 통화료를 선불로 충전해서 쓰는 요금제를 선택하고 필요할 경우 소액을 충전하여 사용할 수 있다. 국제전화의 경우 15유로에 3시간(휴대전화 기준) 가량의 요금으로 한국에 전화를 걸 수 있는 한국 전화카드가 있다.
3. 여가 생활
고등사범학교에서는 학과별 학생 활동이 드문 반면 기숙학교인 만큼 동아리가 매우 발달되어 있다. 학생 규모가 2000명 정도인 작은 학교지만 활발하게 운영되는 동아리는 30개가 넘는다. 교환학생들의 학내 여가 활동은 거의 동아리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보고자의 경우 고전음악 연주 동아리 ‘음유시인들(Trouvères)’에 가입하여 3번의 콘서트에서 연주하였다.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문화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도시이다. 루브르 및 오르세를 비롯한 모든 국립박물관은 만 25세 미만의 학생들에게 무료이다. 고전음악/무용/연극 공연의 경우 8유로,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경우 1.7유로에 학생표를 구입할 수 있다. 만 25세 미만인 경우 프랑스 국내 철도 전 노선을 최소 25%에서 최대 60%까지 할인 받을 수 있으며, 본토의 모든 군(département) 단위에 숙박료 20유로 미만의 유스호스텔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저렴한 국내 여행이 가능하다.
4. 기타 보고 사항
IV.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고등사범학교의 유일한 한국인 학생으로 생활하기는 쉽지 않았다. 파리의 여타 대학이나 비교해서도, 서울대학교와 비교해서도 고등사범학교는 대단히 학구적이다. 강의는 모두 향후 프랑스 학계를 주도할 미래의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외국인 학생을 위한 제도적 배려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상호 경쟁이 아닌 상호 협조에 기반한 창조적 열의에 넘치고 있으며, 교수진은 학생 각각의 학문적 수준과 관심에 대해 전폭적인 이해와 지도를 아끼지 않는다. 보고자는 졸업 이후 대학원 진학을 계획하면서, 고등사범학교에서의 한 학기를 통해 공부의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한편 고등사범학교는 20세기 초 분과학문으로서 불문학을 태동시킨 이래 이 학문을 주도해온 곳이기도 하지만, 철학과 수학에 있어서도 세계 제일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학교이다. 뜻있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 소중한 도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