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파견대학
1. 개요
싱가포르에 위치한 난양공과대학(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NTU)), 아트, 디자인, 미디어(Art, Design and Media (ADM))대학으로 1학기 동안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싱가포르의 학기는 1월 중순에 시작하여 3월 첫째 주에 봄 방학과 비슷한 휴식 기간이 있고 4월 말이면 마무리되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기숙사를 신청하여 2인 1실을 배정받아 교내에서 생활했다.
II. 학업
1. 수강과목 설명 및 추천 강의
현재 재학중인 조소과에 상응하는 과는 없었고 대학원 과정 전반의 이론 수업만 수강 가능했는데,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이 많지 않았다. 학교의 특성 때문인지 주로 테크놀로지, 미디어 관련 수업이 많이 진행되었다. 뉴 미디어 역사와 이론(New Media History and Theory) 수업과 사진 이론(Thinking Photography)수업을 수강했다.
뉴미디어 역사와 이론 수업은 미국인 Randall Packer 교수가 진행하는 수업이었다. Randall 교수는 음악을 전공한 후 사운드와 미디어 아트 관련 작업을 진행하면서 뉴미디어 장르에 관한 역사와 이론을 정리해왔다. 그가 쓴 책을 기반으로 수업을 진행했고 매 수업 전 관련 에세이와 그의 책을 챕터 별로 읽고 이에 대한 생각을 쓰는 과제를 했다. 수업은 미리 보고 온 에세이와 미디어 작품의 중요한 지점들을 다시 살펴보고 학생들의 생각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학기 후반부에는 온라인으로 심포지엄을 진행하였고 최종 과제로 뉴미디어 장르의 작가를 찾아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기반으로 분석하고 에세이를 썼다.
사진 이론 수업은 한국인 오순화 Oh Soon Hwa 교수와 Michael Tan Koon Boon 교수가 진행하는 수업이었다. 수업 때마다 강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추천해주었고 수업에서는 두 교수가 각각 사진과 관련된 역사와 이론을 정리해서 수업을 진행하였다. 사진이 예술과 사회, 정치 등 각 분야에서 어떻게 사용돼 왔는지, 이론가들이 사진을 어떤 매체로 분석했는지, 또 현대 사회에서 고도로 사진 기술과 사진 변형/조작 기술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토론하는 수업이었다. 학기 말에는 각자가 원하는 사진과 관련된 주제로 기말 에세이를 제출하고 이를 발표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미술의 역사와 이론을 공부할 때, 항상 먼 과거에서 시작하여 모더니즘 근처에서 학기가 마무리되어, 포스트모던, 현대미술은 자세히 다루어진 적이 없거니와 뉴 미디어 장르는 한 번도 단독 수업으로 만나본 적이 없었다. NTU의 공과대학 특성이 반영되었는지 이곳의 미술 대학도 테크놀로지와 관련된 영상, 애니메이션, 사진, 뉴미디어 등의 전공이 발달한 것 같았다. 뉴미디어 작품에 관해 갖고 있던 오해와 편견을 없애고 관심을 갖게 할 만큼 뉴미디어 수업은 집중도 높게 단계적으로 진행되었다. Randall 교수는 오랜 시간 이 분야를 연구해온 사람으로 누구보다 전문성이 높았다. 한 학기 수업으로 역사와 이론 전반을 정리할 수 있었던 잘 구성된 강의였다.
2. 외국어 습득 정도
대학교 3학년 때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적이 있어서 영어로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적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대학원 과정으로 가는 교환학생이기에 고급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영어에 익숙한 다른 친구들에 비해 말하는 것은 속도가 느리고 부자연스러웠지만 듣고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싱가포르 영어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었었지만, 막상 접하고 나니 적응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싱가포르는 다인종, 다언어 국가이기에 만나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언어와 발음, 억양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네덜란드나, 미국, 영국 등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비슷한 영어를 구사하는 나라에서 느끼는 정확한 언어에 대한 부담이 적었다. 덕분에 문법적으로는 부정확할지언정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해외에 가기 전의 불안으로 열심히 준비하고 현지에서 영어 사용이 점점 편안해지지만 돌아온 후에는 다시 한국에 익숙해지고 원래의 영어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3. 학습 방법
이론 수업에서 매주 영문 텍스트를 읽고 자료 조사를 해야 했다. 또한 매주 발표와 토론을 해야 했기 때문에 외국어 학습을 위해 추가적인 노력을 하진 않았지만, 수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었다. 다만 싱가포르 사람들의 독특한 영어 발음에 적응할 때까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싱가포르로 유학과 교환학생을 오기 때문에 학생들과 교수들 모두 서로의 언어적 한계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분위기였다. 주변 친구들과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III. 생활
1. 입국 시 필요한 물품 및 현지 물가 수준
입학 허가를 받고 난 후에 난양공대에서 메일로 수강 신청과 기숙사 신청에 관한 정보와 비자 신청 과정을 자세하게 알려줬다. 여타 유럽 국가와 달리 메일 답변이 늦어도 이틀 내에 왔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거나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메일을 통해 관계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편이 편리하고 확실했다. 싱가포르에 입국할 때 학생 비자 관련 서류를 확인했다. 비자 절차를 따라 제때 신청하면 무리 없이 서류를 받을 수 있었다.
현지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저렴했다. 관광지의 고급 레스토랑은 한국의 비슷한 레스토랑보다 비쌌지만 그만큼 서비스와 질도 높았다. 그 외에 시내 레스토랑이나 카페, 바는 서울과 비슷한 정도였지만 술은 한국보다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교내 식당이나 각 지역에 있는 푸드 코트에서는 김밥 천국이나 학식 가격 정도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과일이나 채소 등은 저렴했고 맥주와 담배, 음료, 유제품 가격이 높았다. 기숙사는 2인 1실이 한 달에 300싱가포르 달러 정도 였다.
2. 식사 및 편의시설(의료, 은행, 교통, 통신 등)
식사는 주로 교내 식당을 이용했다. 기숙사마다 식당이 있었고 학교의 중심 건물들에도 푸드 코드가 크게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가까운 거리에서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교내 의료시설이 있지만, 대기시간이 길고 정확한 진료가 어렵다고 들었다. 나는 학교의 중심 건물 근처 기숙사에서 지냈는데, 중심 건물에 은행과 편의점, 푸드 코트, 맥도날드, 써브웨이, 스타벅스 등 편의시설과 프렌차이즈 모두 들어와 있어 편리했다. 다만 일요일에 하는 식당이 적어 몇몇 식당과 맥도날드에 사람이 몰렸다.
건물 내 학교 와이파이가 잘 되어 있으나 사용하지 않으면 끊기기 때문에 계속 로그인해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기숙사에는 와이파이가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공유기를 가져가 각자 방에서 연결해 사용해야 했다. 한국에서처럼 계속해서 음악을 듣거나 인터넷을 하며 다니지 않는 이상 크게 통신비가 나갈 일은 없었다.
난양공대는 싱가포르의 서쪽에 위치해 있어, 주로 동쪽에 위치한 관광지나 시내, 공항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하철과 버스가 굉장히 잘 되어있기 때문에 공항에서 학교까지 1시간 30분가량 걸리지만 내내 안전하고 쾌적하게 갈 수 있었다. 교통카드를 구매해 사용하는 방식은 한국과 똑같았다. 버스-지하철 간 환승 제도도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서울에서 생활하는 것과 비슷한 교통비를 지출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싱가포르의 중심지까지는 교통편이 잘 되어 있어, 멀긴 하지만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대중교통이 끊긴 후에 우버나 그랩으로 택시를 이용했는데, 중심가에서는 잘 잡히지 않고 가격이 1분 단위로 오르기 때문에 화가 났다.
3. 여가 생활
전공 상 예술 관련 행사, 전시, 공연 등을 많이 찾아다녔다. 싱가포르에서는 거의 매달 다양한 문화 행사가 곳곳에서 진행되는 것 같았다. 대부분 높은 질의 공연과 전시를 학생 할인으로 저렴하게 관람할 수 있었고 싱가포르의 지리적, 문화적, 역사적 특성을 재해석하는 전시가 자주 진행되었다. 싱가포르 아트 페어인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 국제 아트 페스티벌인 ‘SIFA(Singapore International Festival of Arts), 싱가포르 디자인 위크(Singapore Design Week)등이 상반기에 진행되었다. 대형 영화관에서는 간혹 한국의 흥행 영화가 걸렸고 찾아보면 독특한 독립 영화관이나 작은 디자이너 샵, 전시, 공연장이 많았고 예술 관련 워크숍이나 강연도 자주 진행되었다.
4. 기타 보고 사항
IV.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대학생 때는 주로 유럽 지역에 관심이 많았고 자주 여행했었다. 동남아 지역에 관심을 두고 여행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아서 나에게는 낯선 곳이었다. 싱가포르는 자연적인 모습을 많이 간직한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 사이에서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가장 많이 발전한 도시 국가였다. 아트 페어나 심포지엄에서 주변 나라들을 이끌어 동남아시아의 대표 국가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식민지와 이민자의 역사를 기억해야 할 가치로 계속해서 재해석하고 재정립하는 시도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러한 노력 덕분에 짧은 역사를 가졌음에도 싱가포르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인종, 다문화, 다언어 국가에서의 경험은 한국에서는 하기 힘든 귀중한 경험이었다. 또한 취업난이나 주거난, 경제난으로 학업 외에도 많은 걱정을 안고 사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아닌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가정을 꾸리고 건강한 삶을 사는 싱가포르의 대학원생들을 보며 다시금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북미 정상회담으로 싱가포르가 주목받는 요즘, 싱가포르에 교환학생을 다녀온 것은 대학원에 온 후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