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파견대학
1. 개요: 안녕하세요, 불어교육과 14학번 이선민입니다. 졸업을 앞두고서 부랴부랴 보고서를 쓰는 제 자신이 다소 부끄럽지만 기억을 더듬으며 쓸 수 있는 데까지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3학년 2학기부터 4학년 1학기까지 1년을 프랑스에서 수학하였습니다. 제가 파견된 대학교는 Universite Paris 13 ? Paris Nord 였는데, 이 대학은 Paris 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사실 파리 외부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Gare du Nord 에서 H선을 타고 Gare d’Epinay-Villetaneuse 에서 내린 다음 걸어가거나 바로 역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2정거장 정도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이 첫번째이고요. 두 번째는 지하철 13호선을 타고 북쪽으로 쭉 가면 종점을 2개 남기고 Saint Denis ? Porte de Paris 라는 역이 있습니다. 거기서 내리셔서 T8 트램을 타고 Jean Vilar 역에서 내려 걸어가시면 됩니다. (거기서 내리지 않고 좀 더 가면 Villetaneuse-Universite 라는 역이 있는데 거기서 내리면 뒷문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치안이 좋지 않은 동네라는 평판이 나 있고 또 그 평판이 사실이기 때문에 이 대학에 파견이 결정나신 분들은 입국에 앞서 많은 걱정이 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여러분들의 걱정을 조금 덜어드리기 위해 13대학의 특장점을 몇 가지 소개하겠습니다.
① 캠퍼스에 양이 있다: 저도 가기 전까지 ‘진짜야?’ 했었는데 진짜 맞습니다. 철조망으로 구획을 해 놓고 그 안에 가둬두는 것이 아니라 캠퍼스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때문에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양과 마주치는 경우도 있고 가까이에서 만져볼 수도 있습니다. 단 동절기에는 어디 갔는지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Emq-DhxFrf4 여기서 실상을 확인하세요.
②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FLE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다: 교환학생들은 따로 수강료를 내지 않아도 FLE 수업을 2개든 3개든 신청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DELF, DALF 대비 수업은 학점에는 포함이 되지 않는데, 수준별로 나뉘어져 있는 기본 어학 수업은 ECTS가 주어집니다. 제가 다닐 때는 실제 DALF 시험관으로 나가시는 분이 교수님을 맡고 계셨기 때문에 수업의 퀄리티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③ 한국어를 배우는 과가 있다: 다들 파리 7대학에만 한국어과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13대학에도 한국어를 배우는 과가 있습니다. 영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필수적으로 제 2 외국어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 때 선택할 수 있는 세 개 언어 중에 한국어가 있어서 ‘영한과’ 가 있다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래서 Tandem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시면 좋아요. Tandem 은 가르칠 수 있는 언어와 배우고 싶은 언어를 적어 내면 수요가 맞는 학생들끼리 연결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다행히 한국어를 배우는 친구와 연결될 수 있어서 시내에서 만나 놀기도 하고, 집에 초대받기도 했었습니다. 제 친구의 경우 한국어를 배우려는 수요가 없을 거 같아 영어를 가르친다는 조건으로 신청하기도 했는데요, 그 친구도 친절하게 불어를 가르쳐 주는 대학원생을 만났기 때문에 적극 추천합니다.
④ Boulangerie Ange 가 있다: 학교 정문을 나와서 트램 한 정거장을 (생드니 역 방면으로) 걸어가면 Boulangerie Ange 라는 이름의 빵집이 있는데요. 파리 평균가보다 훨씬 저렴함에도 불구하고 맛까지 훌륭합니다. 저와 친구들은 거의 아지트였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주 갔어요. 같은 건물에 Auchan 도 있어서(엄청 저렴한 초대형마트) 생활비를 절약해야 할 때 저는 하교 ? Auchan 에서 장 봄 ? 들고 집까지 옴 이렇게 하곤 했답니다..
제가 있을 때도 이 지역에서 흑인 폭동이 일어났었고, 생 드니에 숙소를 잡았던 한국 여행사가 버스 강도를 만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히 신변에 신경을 많이 쓰느라 학교 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일 때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위와 같은 장점들도 있으니 트램에서 최대한 핸드폰 보지 마시고(문 가까이에서 핸드폰 보고 계시면 문 열렸을 때 바깥에 있던 소매치기에게 뺏기고 바로 문이 닫혀서 잡으러 가지도 못하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밤 늦게 귀가하는 일만 지양하신다면(17시 이후에 수업을 잡지 않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즐거운 일들도 많을 거에요^^..
2. 수강신청 방법 및 기숙사
개강 주에 학장님이 국제교류 사무실로 부르셔서 수강편람을 종이로 나눠주십니다. 그 때 간략히 어떤 과목을 추천하고 비추천하는지 교환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서 알려주시기도 합니다. (ex. Savoir dire savoir ecrire 는 모든 교환 학생이 의무적으로 듣도록 한다, latin 이나 grec 은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를 배우는 수업이므로 교환 학생에게는 무리다) 수강편람은 L1, L2, L3 이렇게 세 장과 sports 한 장을 받을 텐데요, 거기 보시면 수업 시간과 교수님 성함, 강의실이 모두 나와 있습니다. 그게 확정이 아니라는 게 문제라서 한 2주 정도는 어쩔 수 없이 혼란을 겪으셔야 할 겁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과사 앞 게시판을 보면 가장 최근에 업데이트된 교실과 휴강 소식을 알 수 있고, 가장 정확한 것은 과사에 직접 가서 문의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과사가 어디인지 학장님께 미리 물어보세요.
L1, L2, L3 은 말 그대로 학년을 말하는 건데요, L1 는 수업이 널럴한 대신 분위기가 굉장히 소란스럽고, L3 은 수업 난이도는 꽤 있는 편이지만 듣기가 차분합니다. 저는 litterature et langues 로 들어갔기 때문에 L3 의 수업이 주로 언어학이었고, 언어학의 경우 한국에서도 배웠던 것이라 적응하기가 오히려 쉬웠습니다. 수강신청은 다른 분들의 보고서에도 나와있겠지만 그저 처음에 교수님께서 돌리는 빈 종이에 이름과 소속을 적기만 하시면 됩니다. 세 번째 수업까지 드랍을 할 수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드랍 방법조차도 그냥 수업에 들어가지 않으면 출석부에 이름이 남지 않기 때문에 (종이에 이름을 쓰는 것은 첫 수업뿐 아니라 매 시간 이루어지는 의식입니다) 자동으로 드랍이 됩니다. 저는 처음에 그리스 로마 신화 수업을 들었는데, 신과 영웅들의 이름이 모두 불어로 나오는 통에(ex. Persee ? 페르세우스) 인물 매치부터가 너무 어려워서 결국 세 번째 수업부터 나가지 않았습니다. 성적표에 뜨지 않은 걸로 보아 드랍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기숙사는 Villetaneuse, Bobigny, Saint-Denis 이렇게 세 군데가 있습니다. 인문대 캠퍼스와 가장 가까운 곳은 Villetaneuse 이고 제 친구들은 다 이곳에서 기숙사를 얻었습니다. 제 경우에는 5월 10일에 메일로 기숙사 신청서 양식이 왔고, 자리가 많이 없으니 선착순으로 배정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기숙사가 되든 안 되든 기숙사 문제로 화가 많이 나실 겁니다. 저는 신청 메일을 보냈음에도 합불 여부가 답장으로 오지 않아서 출국 2주 전까지 기다리다가 (계속해서 13대학 국제처에 문의 메일을 넣었는데 읽고도 답장이 없었습니다) 급하게 프랑스존에서 홈스테이를 구했습니다. 기숙사가 된 친구도 됐다는 말뿐 어디로 와야 한다는 지시사항이 출국 당일까지 없어서 마음 고생을 많이 했었습니다. 아무쪼록 기숙사 신청서 메일을 받는 대로 최대한 빨리 신청하시고, 답장이 없을 경우 떨어졌다고 생각하십시오. 덧붙여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면 기숙사 바로 앞의 대형마트 Auchan 을 이용하며 조용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지만, 파리 시내로 많이 놀러다니고 싶으시다면 기숙사는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집 주변 치안이 좋지 않아서 웬만하면 해가 지기 전에 귀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3. 교환 프로그램 담당자, 담당부서 이름 및 연락처
담당자: Dalila Sereno
담당부서 이름: Service des Relations Europeennes et Internationales
연락처: 01 49 40 28 48
II. 학업
1. 수강과목 설명 및 추천 강의
[Lexique 1] 제목만 보고 프랑스어 어휘력을 늘려줄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그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언어학 수업이었습니다. 어휘의 형태에 관해 연구하는 morphologie (형태론)를 배웠는데요, pommier 라는 단어가 있으면 pomme 이라는 radical (어근) 과 ?ier 라는 affixe (접사) 로 나뉘어 있다는 걸 가르치는 수업입니다. 우리말에도 실질 형태소, 형식 형태소 같은 개념이 있잖아요. 그런 걸 배운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시험에는 어휘를 주고 형태를 분석하거나, 같은 방식으로 형성된 단어끼리 모으는 문제가 나오는데, 듣도 보도 못한 단어가 나와서 매우 당황했지만 외국인 학생들은 손을 들고 단어의 뜻을 물어볼 수 있도록 교수님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런 경우가 우려되신다면 시험 전 수업에서 미리 교수님께 종이로 된 불불사전을 사용해도 되냐고 여쭤보는 것이 좋습니다. 보통 허락해 주십니다. 불불사전은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서점에서 9유로 정도에 살 수 있습니다.
[Atelier d’ecriture 1] 강의 이름대로 글쓰기를 연습합니다. 하지만 FLE 가 아니기 때문에 외국어로서 프랑스어 작문을 배우는 게 아니라 모국어라는 가정 하에 시나 에세이를 써 보는 수업입니다. 예를 들어 e 를 쓰지 않고 한 단락의 글을 써 본다거나, je suis triste quand~ 으로 시작해서 여러 행으로 된 시를 만들어 보는 식입니다. 달프에서 요구하는 synthese 나 texte argumente 를 벗어나 불어로 말놀이를 해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Syntaxe et Semantique] 통사론에 관한 수업입니다. Pauline Hass 교수님께서 가르치셨는데 언어학 수업은 이 분이 직접 만드신 교재로 꼼꼼하게 가르치시니 이왕이면 이 분을 선택하시길 추천드립니다. 교수님들 중에 교재를 주시는 분이 많이 없기 때문에(중요한 개념어도 판서를 안 하시고 구두로만 설명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두로 전달되는 내용을 놓치면 끝이거나 도서관에 가서 관련 서적을 무작정 뒤져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Sport : Salsa] 제가 제일 재미있게 들었던 수업입니다. 프랑스 학생들과 엄청난 근거리에서 대면해야 하기에 처음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댄스스포츠를 들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정말 가까이 서서 서로를 안다시피 하고 추거든요. 하지만 동작 하나를 배울 때마다 계속해서 파트너를 바꾸면서 연습하므로 모두가 정신이 없을 뿐더러 친구가 없다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sans se tenir (서로 붙잡지 말고), continuez a marcher parce qu’il y a toujours quelque chose apres (그 다음 동작이 계속 있으니까 스텝을 멈추지 말아라) 등 신체 동작과 관련된 표현을 생생하게 배울 수 있으니 용기내서 꼭 들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Litterature de jeunesse] 프랑스에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이 잘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의 장르로 litterature de jeunesse 라고 부르는데요, 이 수업은 동화책에는 어떤 타입들이 있는지, 각각 어떤 효과가 있는지(ex.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줄거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알 모양으로 동화책을 제작한 사례) 살펴보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기말고사도 있고 발표도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발표는 각자 자기가 정한 동화책을 앞에 나가서 읽어주고, 수업에서 배운 방식으로 분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약 15분 정도 소요) 외국인 학생인 저에게 매우 버거운 과제였기에 고생을 좀 했지만, 의외로 프랑스 학생들은 스크립트를 보고 줄줄 읽기만 하는 경우도 있었고 ppt 는 누구와 견주어도 한국 학생들이 제일 잘 만들기 때문에 한 번 도전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Enonciation et pragmatique] 화용론에 관한 수업입니다. Pauline Hass 교수님이 enonciation 을 맡으시고 다른 한 분의 교수님이 pragmatique 을 맡으셔서 수업의 전반까지는 Pauline Hass 교수님께, 중간부터는 다른 교수님께 강의를 들었습니다. 정말 다양한 것들을 배우는데, 동사를 그 특성에 따라 분류하기도 하고, “je bois un cafe” 의 boire 는 주어와 목적어를 필요로 하는데 반해 “il boit beaucoup” 의 boire 는 주어밖에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두 boire 는 뜻이 다르다, 같은 것을 분석하기도 합니다. 문장이 실제로 발화되었을 때 어떤 뜻을 갖는가, 왜 그런가에 초점을 둔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Fondamentaux de la grammaire 2 : notions]
[Fondamentaux de la grammaire 2 : applications]
이 두 가지 수업은 세트로 진행되는 것인데요, notions 에서 개념을 배우고 applications 에서 연습 문제를 푸는 방식입니다. 문장에는 phrase simple 과 phrase complexe 가 있는데, phrase complexe 는 등위접속사로 연결된 phrase coordonnee 와 종속접속사로 연결된 phrase subordonnee 가 있다.. 저는 이런 것들을 배웠습니다. 사실 grammaire 가 붙은 수업은 외국인 학생이 훨씬 유리합니다. 모국어로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쓰는 말을 분석해 본 경험이 많이 없지만, 외국인들은 처음부터 위와 같은 체계를 가지고 프랑스어를 배웠으니까요. 아시아계 학생들이 굉장히 높은 점수를 받아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FLE 수업] 저는 첫 학기에 B2 general, C1 general, 두번째 학기에 C1 preparation 을 들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general 은 해당 레벨에 맞는 어학 수업으로 학점이 주어지는 반면, preparation 은 정말 시험 대비를 하는 수업이기에 어학보다는 시험 형식에 단련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학점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B2 general 에서는 접속법, 목적보어대명사가 여러 개일 때의 위치 같은 까다로운 문법들을 연습 문제와 함께 배웠습니다. Moussion 교수님이 여전히 계신다면 그분은 매우 친절하시므로 수강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C1 general 의 내용이 기억이 안 날 정도로 preparation 에서 상당한 고생을 했는데요, 수업 한 번에 2명씩 production orale 을 합니다. debat 역시도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선생님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다른 학생들도 질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에 준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다들 외국인 학생들이기 때문에 다양한 억양의 프랑스어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2. 외국어 습득 정도
떠나기 전에 OIA 홈페이지에서 봤던 많은 후기들은 교환학생을 갔다 온다고 해서 기적적으로 프랑스어가 느는 것은 아님을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외국에서 살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나름의 기대가 있었는데, 많은 분들의 증언대로 정말 외국에 나간다고 해서 외국어가 비약적으로 느는 것은 아니더라구요. 하지만 현지에 있으면 자의와는 상관 없이 어쨌든 프랑스어에 계속해서 노출되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빠른 말하기나 liaison 듣기에 익숙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외국어 습득이 목적이라면 6개월보다는 1년을 선택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6개월 정도 되면 ‘아, 이제 좀 알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때 머리 표면에 붙어있던 프랑스어들이 1년 정도 되면 어느 정도 흡수되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좀 슬프지만 ‘가서 배워야지’ 하는 생각은 넣어 두고, 더 잘 배우기 위해 가기 전에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말도 애초에 잘 꺼낼 수 있어야 대화도 더 많이 해보거든요.. ‘내가 불어를 더 잘했으면 좋았겠다’ 하는 것을 순간 순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3. 학습 방법
현지인 친구를 사귀어 대화를 많이 해 보는 것이 최고이지만 이것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교환학생들은 잠깐 있다가 떠나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프랑스 학생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지대한 관심이 있지 않는 한 먼저 말을 걸어 주지 않습니다. 소극적이었던 저는 다음과 같은 방법들을 애용했습니다.
① 엿듣기: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불어 구어 표현을 익히기에 이것 만한 게 없습니다. 저는 공강 시간에 라운지에 혼자 앉아서 주변 학생들이 하는 표현들을 듣고 메모했는데요. 뭔가가 없어졌을 때 (자기가 그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게 아니라 그 물건을 문장의 주체로 두어) “Ca m’a echappe !” 라고 한다든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라는 말을 “C’est la premiere fois et la derniere fois” 라고 한다는 걸 책에서 배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프랑스인들이 어떻게 대화하는지 열심히 들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② 메모하기: 1번이랑도 통하는 것인데 저는 현지에서만 배울 수 있는 단어들을 수시로 핸드폰 메모장에다 적어 두었습니다. 마트를 다니면서 ‘요가 매트’, ‘설탕 함유를 30% 줄였습니다’, ‘섬유유연제’, ‘미끄럼 방지’, ‘인체 공학적 디자인’ 이런 표현들을 끊임없이 메모했었어요. 물론 프랑스 생활을 끝낸 지 1년 반이 되어가는 지금 기억이 안 나는 것들도 많지만 책 속의 프랑스어에서 벗어나는 데 좋은 방법이었어요.
③ 스터디: 4호선 Saint-Michel-Notre-dame 에서 내리면 Gibert Jeune 라는 서점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다양한 FLE 서적을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에 (수입을 거치지 않았으니까요) 득할 수 있는데요, 저는 두번째 학기에 친구들과 같이 CLE 에서 나온 단어책을 하나 골라 스터디를 했었습니다. niveau 가 4가지로 나뉘어 있으니 수준에 맞게 선택해 보세요.
사실 프랑스에서 생활을 하며 듣는 불어는 정말 다른 세계입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배웠던 불어는 langage soutenu 인 데다 발음도 또박또박 해 주잖아요. 그래서 길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듣는 불어는 하나도 안 들리는데 오히려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이해가 잘 되는 특이한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거에요. 특히나 13대학이 위치한 생 드니 지역은 이민자들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같은 프랑스어라도 억양 때문에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아랍어를 섞어 쓰시는 분들도 있고요.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DALF 를 봤을 때 듣기 3번에서 북아프리카 이민자의 억양이 나오는 것을 보고 (물론 그 때도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아, 내가 생 드니에서 학교를 다닌 것이 보람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답니다. 다양한 억양이 공존하는 지역에서 구어 프랑스어에 노출되는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해 보세요.
III. 생활
1. 입국 시 필요한 물품 및 현지 물가 수준:
입국 전에 필요한 물품을 꼼꼼하게 챙기느라 매우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무언가를 사는 게 아예 불가능한 곳으로 떠나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렇게 프랑스에 갔더니 한국에서 ‘꼭 사 가야 한다’ 고 알려진 물품들이 다 마트에 버젓이 팔더군요. Jetstream 을 살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형 마트에 가면 Bic, Frixion (지워지는 볼펜인데 진짜 좋아요) 등 웬만한 건 다 구할 수 있습니다. 예쁜 노트나 투명 파일, 바인더를 사고 싶다면 프랑스의 다이소로 불리는(다이소의 상위 호환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Hema 에 가서 둘러보세요. 스타킹이나 양말도 carrefour 만 가도 다 팔고, 프랑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220V를 쓰기 때문에 변압기도 필요 없습니다. 화장실 슬리퍼를 챙겨가라는 조언이 인터넷에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denfert-rochereau 역에서 셔틀버스를 타면(인터넷에서 시간표를 확인해 보세요) 파리 근교에 있는 이케아 매장에 갈 수 있습니다. 저는 입국하고 바로 다음 날 이케아부터 갔는데, 여기 가면 고무 소재로 된 슬리퍼도 있고 일명 돌돌이로 불리는 머리카락 및 먼지 제거 테이프도 구할 수 있어요. 6개월에서 1년 동안만 쓸 저렴이 침구를 구하시는 분도 이케아로 향하세요. 돌돌이는 쟁여두는 것을 추천합니다.
오히려 챙겨오면 좋은 것은 락앤락과 소형 밥솥입니다. 저는 락앤락을 챙겨갔는데 모든 친구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었습니다. 락앤락이 있으면 남은 반찬을 보관할 수도 있고, 2~3인분을 해다가 나중에 먹기 편하게 1인분씩 냉장고에 넣어둘 수도 있고, 과일을 깎아서 보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인마트에서 산 500g 짜리 김치를 하루에 다 먹어야 한다거나, 멜론 한 통을 다 먹지 못해서 갈변시켜야만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제 친구는 락앤락이 없어서 그 맛있는 멜론을 못 먹었어요. 소형 밥솥은 제가 가져가지 않아서 답답했던 것인데요, 매끼 스스로 챙겨먹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고된 일입니다. 밥솥이 있으면 한인마트에서 반찬 될 만한 걸 몇 개 사다가 냉장고에 쟁여 놓고 밥만 해서 그때그때 먹을 수 있어요. 안 그러면 매끼 파스타나 샌드위치같은 일품 요리를 해 먹어야 되는데 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한 끼 먹고 나면 바로 다음 끼 뭐 먹을지 걱정해야 해요. 선천적으로 체력이 좋으신 분들은 식빵, 시리얼, 우유, 고기만 사 두고 내키는 대로 드셔도 괜찮지만 저같이 골골대서 삼 시 세끼 챙겨먹어야 하는 분들은 밥솥이 필수입니다. 짐이 걱정되신다면 프랑스존이라는 사이트에서 프랑스 생활을 막 청산하시는 분들에게 구입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2. 식사 및 편의시설(의료, 은행, 교통, 통신 등)
[의료] 학교에 처음 가면 Securite Sociale 값으로 230유로 정도를 납부해야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것이 바로 외국인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건강 보험인데, 학교에 돈을 납부한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예컨대 보험사로 LMDE 를 선택했으면 그곳에다 서류를 보내야 carte vitale 이라는 보험 카드를 주는데요, 이 서류 준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보험사 내에서 분실도 일어나기 때문에 사본 마련도 필수입니다) 가까운 병원에 전화를 해서 예약을 잡고 ‘당신을 주치의(medecin traitant)로 설정하고 싶다’ 고 말씀드린 후 계약서를 써야 합니다. 그 계약서와 함께 재학증명서, 비자 사본 등등을 보내야 하는데 일단 비자 자체도 OFII 인터뷰를 받아야 완료되기 때문에 길면 3개월까지도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carte vitale 을 받는 것을 애당초 포기했는데, 프랑스는 약국이 워낙 잘 되어 있기 때문에 감기 정도는 약사와의 상담을 통해 좋은 약을 처방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병원에 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면 각 지역에 Centre Municipal de Sante 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보건소에 해당하는 기관이 있습니다. 이곳에 예약해서 진료를 받으면 일반 병원보다 다소 저렴한 가격에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두 번 정도 갔는데 갈 때마다 20유로 정도가 나왔었어요.
[은행] 학교에서 rendez-vous 까지 잡아서 연결해 줍니다. Place de Clichy 에 있는 Credit Mutuel 에서 카드를 만들었습니다. 은행 앱이 있어서 처음에 서류로 주는 아이디랑 비밀번호로 로그인을 해 놓으면 잔액과 잔액의 변화 추이까지(...) 그래프로 볼 수 있어요. ImagineR 를 신청하신 경우 매달 일정 금액이 빠져나갈텐데 잔액이 부족하지 않게 잘 관리해 주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잔액 부족 때문에 카드가 bloquer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debloquer 하는 일은 정말 번거롭습니다. 은행은 업무 시간이라 할지라도 전화를 받지 않아요. 저는 한국 카드랑 비밀번호가 헷갈려서 3번이나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카드를 재발급해야 하는 일까지 겪었는데요, 여러분은 절대 그러지 마시길 바랍니다. 또 처음에 설명해 줄 때 1회 인출 한도와 1일 인출 한도를 잘 기억해 놓으시는 게 좋습니다.
[교통] ImagineR 는 1년용이지만 쓰다가 해지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일찍 떠나는 분들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귀국하기 전, 귀국해야만 하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해지해야 한다는 편지를 쓰세요. 그리고 비행기표 사본과 만료일이 찍힌 비자 사본, 그리고 교환학생 기간이 적힌 attestation de sejour 사본을 첨부해서 우편으로 보내시면 자동 정지됩니다.
[통신] EU 내에서 자동 로밍이 된다는 점에서 Free 를 사용하시려는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선 8구에 있는 Free 매장을 갑니다. 가면 유심을 발급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Je voudrais une carte SIM” 이라고 말씀하시면 직원이 바로 무인 유심 발권기(?)로 안내해 줍니다. 그 다음엔 기계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데요, 이 때 안드로이드인지 아이폰인지에 따라 발급받는 유심의 크기가 다른데, 자기 폰에 맞춰서 선택을 잘 하셔야 합니다. 저는 안드로이드인데 아이폰용 미니 칩을 발급받아서 10유로를 날리고 말았습니다. 프랑스에 가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유심 사는 것이다 보니 Free 를 이용한 제 경험담을 적었는데요, 사실 저는 다시 프랑스에 간다면 SFR 를 쓸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도 말씀해 주셨지만 Free 는 저렴한 대신 속도가 매우 느리고 자주 끊기며, 다른 나라에 갔을 때 운이 안 좋으면 저처럼 안 터질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 친구가 SFR 쓰는 걸 봤는데, 조금 비싸긴 해도 정말 빠른 속도를 누릴 수 있더라구요.
3. 여가 생활
돈을 어디에 투자할 것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여행에 돈을 쓰고 평소에 가난하게 살거나, 여행을 포기하는 대신 파리에서 높은 질의 삶을 영위하거나. 제 친구들 중에는 전자처럼 하다가 여행이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후자로 전환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행 때문에 생활비가 쪼들려서 프랑스의 유명한 식당이나 카페를 많이 가보지 못했는데, 외식비에 투자를 하신다면 국제적으로 알려진 미슐랭 식당을 몇 가 보시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 같습니다. 돈이 들지 않는 여가 생활로는 파리의 musee 탐방과 공원 탐방이 있습니다. 잘 알려진 musee 외에도 쇼팽이 연주했던 피아노를 볼 수 있는 musee de la vie romantique, 마리우스를 구출한 장발장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는 musee des egouts, 조용한 화실이 있어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musee du Montmartre 같은 곳들도 있답니다.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에 나오는 그랑드 자트 섬도 파리 북서쪽에 있으니 한 번 가보세요. 공원으로 말하자면 저는 Montsouris 공원과 열기구가 있는 Andre-Citroen 공원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IV.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다들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신청하며 마음에 품은 목표가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학기가 너무 힘들었기에 잠시 쉬어가려는 분도 있고, 여행을 많이 다니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 어학 능력 향상을 목표로 잡고 너무 무겁게 떠났던지라 10월 중반에 정신적으로 무너졌었습니다. 어학 스트레스를 차치하더라도 외국에서의, 특히 프랑스에서의 생활은 많이 힘듭니다. 인종차별도 심하고, 종종 성희롱도 당하게 되며, 프랑스어를 배우는 사람이라고 해서 환대하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언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상황도 비일비재합니다. 무엇보다 이런 일을 겪고 집에 돌아와도 내 몸 건사해 줄 사람은 나 혼자라는 것이죠.
잘 먹는 게 중요합니다. 내 자신을 내가 컨트롤하고 있는 것 같아도 인간은 생각보다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는 11월부터 4월 초까지 매일같이 우중충한 날씨를 자랑하는데, 그 기간이 긴 만큼 기분에 미치는 영향도 지대합니다. 돈을 좀 쓰더라도 rue Sainte-Anne 에 가서 따뜻한 국물이 있는 아시아 음식을 드세요. 쌀국수도 좋고 라멘도 좋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땐 친구들을 불러서 찜닭이나 떡볶이 같은 걸 해 보세요. 그리고 soldes 를 할 때는 생활비를 걱정하며 집에만 있지 말고 나가 보세요. 저는 10유로밖에 안 되는 가격에 좋은 청자켓을 하나 건졌답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하루하루를 즐겁게 꾸려나가는 데 초점을 두지 않고 무엇을 하든 ‘뭔가를 얻어가야 한다’ 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 제 우울감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렇게 힘들었음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프랑스를 다녀오기 전의 나와 그 이후의 나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실 출국 전의 저는 목표 지향적인 만큼 느긋함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일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 일을 하면 피곤해지는 것이 그 증거다” 정신을 품고 살아가는 프랑스인들과 함께 하다 보니 이제는 조금 힘을 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한국에 막 돌아왔을 때 승객이 마중나가지 않으면 서지도 않는 버스, 버스가 서기도 전에 정류장 끝으로 달려나가는 승객들을 보고서 ‘왜 이렇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요즘도 계산대에서 조금이라도 오래 걸리면 뒷사람들 때문에 안절부절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뒷사람도 느긋하고, 앞사람도 편하게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기다릴 수 있는데’ 하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목표로 했던 어학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자문화를 보는 다른 시선을 얻어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는 스스로 나약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지?’ 하는 일들도 많았습니다. 여러분은 처음부터 마음을 넓게 먹으시고 저보다 훨씬 행복한 교환 생활을 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