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검색해보면 “미국의 공립 대학 중 서부의 UC 버클리와 함께 동부를 대표하는 대학, 퍼블릭 아이비 중 하나”라고 나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꽤 알아주는 학교이며, 저는 제 복수전공인 영문과 순위가 높아서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영문과 말고도 경영대, 로스쿨도 유명하고 많은 재학생들이 UVA 타이틀로 취업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학교 수준 뿐 아니라 토머스 제퍼슨 제 3대 미국 대통령이 설립한 학교라 학교 곳곳에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학교이다보니 기숙사나 학교 건물이 낡았다는 생각도 들 수 있지만 계속해서 리모델링을 하고 신축건물이 들어서서 공부하는데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기숙사 생활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길게 적도록 하겠습니다.)
지도에서 찾아보면 아시겠지만 도심에 있는 학교가 아니라 학교를 중심으로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는 캠퍼스 타운입니다. DC 까지는 버스나 기차로 3시간이 걸립니다. 학교 크기는 체감 상 서울대의 2-3배입니다. 하지만 본인 전공 위주로 수업을 듣는다면 멀리 나갈 일은 거의 없으므로, 버스로 10분-15분 정도의 거리에서 이동하고 생활한다고 보면 됩니다.
II. 학업
1. 수강과목 설명 및 추천 강의
학교 자체 수강신청 사이트는 원하는 강의를 찾아보고 비교하기 어렵게 되어 있어서 많은 학생들이 아래 사이트를 사용하여 강의를 고릅니다.
https://rabi.phys.virginia.edu/mySIS/CS2/
강의 번호를 보면 분류와 수준을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Eighteenth-Century Women Writers라는 제목의 강의의 경우 ENEC 3200 이라는 고유 번호를 갖고 있는데, ENEC는 English Restoration and Eighteenth Century Lit에 해당하는 수업이라는 의미이고, 3200은 초중급 수준의 전공수업이라는 의미입니다. 숫자는 1000 대부터 시작하고 1000은 교양, 기초 수준의 수업, 4000은 전공 심화 수준 수업, 5000부터는 Graduate 대상 수업이라고 보면됩니다. (Graduate수업이라도 교수님에게 특별히 부탁하면 수강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영문과 복수전공을 하고 있기 때문에 English Department에서 Shakespeare1 (ENRN3210), Eighteenth Century Fiction (ENEC 3600) 이 두 수업을 들었고 언어학 전공에서 주관하는 Introduction to Linguistic Theories (LNGS3250), 미술대학에서 주관하는 14th century Italian Renaissance Art(ARTH2251), Kinesiology Department에서 주관하는 Running for Fitness(KINE1440), ePortfolio 를 만들어보는 Collect, Select, Reflect (ELA2600) 수업을 들었습니다.
들었던 모든 수업이 만족스러웠고, 각 분야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제가 들었던 수업들을 주저없이 추천합니다. 분야에 상관없이 ELA 2600 은 미국 등 영어권 국가로 취업이나 유학 기회를 찾고 계시는 분께 강력하게 권합니다. e Portfolio 주소 한 줄로 Resume를 더 눈에 띄게 만들 수 있으며, 그 동안 해왔던 활동 (스펙) 이나 글쓰기에 대해 현지인들의 평가를 받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러나 본인이 포트폴리오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수업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건강하게 교환학생 생활을 보내고 싶다면 Kinesiology dept.에서 주관하는 수업을 한 개 이상 들어보길 권합니다. 저는 매주 두 번씩 40분-50분 동안 자유롭게 뛰는 Running 수업을 들었지만, 요가와 테니스도 인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1학점 밖에 되지 않아 드랍의 유혹이 자주 찾아오기 때문에, 본인의 기상 시간이나 수업 장소와의 거리 등 자신의 컨디션을 충분히 계산한 뒤에 수강신청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서울대학교가 연구 중심으로 운영되는 학교인 반면 UVA 는 학부생에게 상당한 관심을 쏟는 학교입니다. 대형강의라도 교수님과의 면담이 쉽고 수업 조교도 많아서 원하면 언제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영문학 수업을 듣는 분이라면 교수님을 자주 찾아가서 Writing 첨삭을 받고 작품에 대한 생각을 들려드리는 것을 적극 추천합니다.
2. 외국어 습득 정도
Buddy Program 등 교환학생들끼리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교환학생이 모두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면 미국 현지인이 많은 행사나 동아리에 참여할 것을 권합니다. Buddy Program의 경우 교환학생이 다 같이 놀러가는 행사보다도 교환학생 모두에게 배정해주는 현지학생 Buddy와 둘이 놀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 영어실력에 크게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외국학생들이 꽤 있어 영어 실수나 버벅거림 등에 많이 인내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너무 움츠러 들지 말고 자신있게 이야기하다보면 영어 실력이 많이 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Language Commons에서 주관하는 Language Exchange Program에 신청해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중국인 학생들과 언어교환을 했습니다. 한국어, 중국어, 영어 세 가지 언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했는데 언어 실력 자체가 늘었다기 보다는 영어권 국가에서 생활하면서도 제2외국어인 중국어 감을 잊지 않을 수 있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본인이 공부하고 있는 제 2외국어가 있다면 Language Commons에서 오는 이메일을 주의깊게 봐두는 것도 좋습니다.
한국인이 별로 없는 지역이라고 들었으나 교회 커뮤니티 등 한국인 단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본인이 얼마나 영어로 이야기하고 싶은가와 한국어의 편함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따라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
3. 학습 방법
시험은 주로 에세이 방식이고 수업시간에 다루지 않은 ‘본인의 생각’을 묻는 문제도 많기 때문에 평소에 수업을 들으면서 모든 것을 받아적기 보다는 수업 내용을 본인이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에 수업 내용을 그대로 답안지에 적었을 때는 “내용은 잘 적었지만 본인만의 논리가 없다”는 피드백을 받았고, 조금 더 큰 그림에서 답변을 적었을 때 더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학생들의 분위기가 모르는 것은 그 떄 그 때 질문을 하자는 주의이고 어떤 질문을 해도 눈총받거나 비판받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수업시간이나 수업 직후에 반드시 물어보고 해결했습니다. 수업에 따라 다르지만 조교가 office hour을 여는 경우 학생들이 예상 외로 많이 가서 함께 공부하며 답을 알아가는 ‘그룹 스터디’같은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가서 모르는 부분을 물어보면 다른 학생들도 똑 같은 부분을 모르고 있었구나는 것을 알게 되고, 미국 학생들이 공부하는 방식도 알게 되어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이 때가 아니면 언제 미국 학생들과 토론해보겠어’라는 마음으로 조교 office hour에 매번 찾아가고 바보 같은 질문도 많이 했는데, 역시 성적과 관계 없이 그런 경험을 많이 해본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III. 생활
1. 입국 시 필요한 물품 및 현지 물가 수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교환학생 준비물 이외에 특별히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날씨가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크게 변화가 없기 때문에 2학기 출국자라면 한국에서 입는 패딩이나 큰 코트는 가져가지 않아도 됩니다. 한국 음식 파는 곳은 근처에는 없지만 Nova (Northern Virginia) 지역에 큰 한인마트가 있어 배달도 가능하고 그곳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하거나 직접 가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마을 안에 한국음식을 파는 식당이 세 곳 있어 한국음식이 절실한데 못 먹었던 적은 없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물가가 비싼 편에 속한다고들 합니다. 부유층이 많고 학생들 씀씀이도 적지 않습니다. 현지 학생들이 사는 정도로 지출을 하다보면 생활비가 남아나지 않습니다. 스타벅스 커피가 마을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싼 커피이기 때문에, 매일 한 잔씩만 마셔도 학생증에 충전하는 Plus Dollar 가 금방 없어집니다. 꼭 필요한 것이 있거나 주기적으로 구입해야하는 것이 있다면 미리 사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2. 식사 및 편의시설(의료, 은행, 교통, 통신 등)
알러지 반응이 있었던 것, 화상을 입었던 것 제외하고는 큰 병치레가 없었습니다. 환절기에 감기에 걸렸을 때도 한국에서 가져간 약으로 버틸 수 있는 정도였고, 화상도 기숙사에 있는 응급처치 약품으로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정도로 해결이 안 되는 경우 Student Health에 가면 웬만한 것은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주 특수한 경우이지만, 저는 교정기에 문제가 생겨서 급히 동네 Orthodontist 를 방문했습니다. 보험이 안 되는 부분이라 꽤 많은 비용을 지불했고, 학교 밖이다 보니 교환학생의 처지를 잘 이해해주는 느낌도 아니었습니다.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병원은 마을 안에 다 있지만 웬만하면 개인적으로, 그리고 Student Health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은행은 Bank of America 계좌를 학교 Newcomb Hall (학생회관 같은 곳입니다.) 에 있는 지점에서 쉽게 만들었고, 귀국할 때 없앴습니다. 현지 학생들은 Venmo라는 어플을 통해서 서로 송금을 하기 때문에 계좌를 만들고 바로 어플를 다운로드 하시는게 편합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버스 뿐 아니라 Charlottesville 에서 운영하는 버스 역시 학생증으로 무료 승차할 수 있습니다. 교통비는 장 보러 갈 때 우버를 타거나, 여행갈 때 기차, 버스를 이용한 것 말고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유심은 한국에서 AT&T의 유심을 사 갔습니다. 학교 안에 와이파이가 워낙 잘되어 있어서 LTE를 사용한 적이 거의 없고 LTE 사용시에도 문제없이 인터넷 이용이 가능했습니다.
기숙사는 여러 곳이 있는데 저는 International Residential College 를 1지망으로 지원했고 다행히 문제없이 1인실에 배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국제학생 기숙사라고 해서 국제학생 비율이 특별히 높은 편은 아니며, 많은 교환학생들이 다른 기숙사에서도 생활하고 있습니다. 국제학생 기숙사여서 좋았던 점이 있다면 다른 기숙사에 비해 행사가 많고 다른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생활비가 비싸고 비싼 생활비에 비해 건물이 낡고 에어컨과 난방이 잘 가동되지 않았습니다. 생활비를 생각한다면 학교 근방에 있는 주택을 다른 학생들과 쉐어하는 Off-grounds housing도 나쁘지 않습니다. 같거나 혹은 더 싼 가격으로 훨씬 깨끗하고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를 비교해 본 후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3. 여가 생활
저는 UVA 에서 University Salsa Club 에 가입하여 매주 lesson에도 참여하고 학기에 한 번씩 있는 Showcase에서도 공연했습니다. 매주 금요일에는 다운타운에 있는 Virginia Discovery Museum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Paramount Theater 에서 영화 상영준비를 돕는 일을 해본 적도 있습니다.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한국의 대학생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을 최대한 많이 해보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다운타운에도 영화관이 있고 학교 안에서도 유명한 작품을 자주 공짜로 상영해주기 때문에 메일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원하는 행사를 할 때 빨리 신청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작은 캠퍼스 타운이지만 그만큼 학교 안에서 재미있는 행사를 열어줍니다. 좋은 강연도 자주 열리고 행사를 할 때마다 Staff와 Volunteer을 모집하기 때문에 본인만 의지가 있다면 4개월 동안 충분히 재미있는 교환학생 생활을 보낼 수 있습니다. 캠퍼스 타운이라는 점이 불편하게 느껴지면 토머스 제퍼슨이 지은 Monticello 나 근처 Winery (주변에 20여개의 Winery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에 매주 한 곳씩 다녀오는 계획을 세워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교환학생 신분에서 차를 렌트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차가 있는 현지 학생과 친해져서 본인의 이동 반경을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4. 기타 보고 사항
저는 학기 앞뒤로 여행 계획을 따로 잡지 않고 학기 중에 중간고사 reading break 때 뉴욕을 다녀오고 Thanksgiving 때 캐나다 몬트리올과 퀘백을 다녀왔습니다. DC는 주말에 버스를 타고 1박2일로 다녀오는 일정으로 두어 번 다녀왔습니다. Reading break나 Thanksgiving 처럼 제법 긴 휴일이 이어질 때가 있으면 미리 계획을 짜고 비행기 표를 사두는 것이 좋습니다. 같이 여행 갈 사람도 미리 구해놓아야 긴 휴일을 알차게 보낼 수 있습니다.
IV.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많은 학교입니다. Halloween 때 학교의 상징적인 건물인 Rotunda 앞 넓은 잔디 (The lawn 이라고 부릅니다) 에서 Charlottesville 주민들과 그 가족들이 Costume을 입고 Trick or Treat을 하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고, 추석 즈음에는 International Center에서 주최하는 월병 만들기 행사에서 대학원생과 초청 교수 등 다양한 학교 구성원들과 월병을 만들었던 순간도 아직까지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귀국하기 직전에는 학교 내에 공유 킥보드가 들어와 제법 멀리 떨어진 Runk dining hall (학교 내 세 곳의 식당 중 가장 깨끗하고 음식이 맛있는 곳입니다. 시간이 남으면 꼭 찾아가서 브런치를 먹어보길 권합니다. Newcomb hall와 O’hill 에도 dining hall이 있지만 음식의 질이나 위생상태가 만족스러운 편은 아닙니다.) 까지 아침을 먹으러 갔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주미 이탈리아 대사의 강연을 들은 것도 의미있었고, Career center에 찾아가서 resume를 첨삭받고 학교 졸업생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 가서 면접을 보고 온 일도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순간입니다.
하지만 교환학생을 준비하기에 앞서 결코 간과해서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비용 문제입니다. 생각 외로 생활비가 많이 들고, 부모님께 죄송한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교내 장학생 선정에도 절차가 있고 선정 기준과 반영 비율을 전부 공개할 수 없는 사유가 있겠으나, 장학생 선정을 위해 많은 서류를 공들여 준비한 만큼 선정되지 못한 데서 느끼는 실망이 작지 않았습니다. 교환학생 다녀온 것은 절대 후회하지 않고 UVA로 지원하여 다녀온 것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남들이 가니까 가는 교환학생’ 이라는 생각으로 출발한다면 돈만 잔뜩 쓰고 오는 실망스러운 한 학기가 될 수도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뚜렷한 목표의식과 계획을 가지고 출발해서 조금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되더라도 후회없는 교환수학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