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저는 2018학년도 2학기에 일본 도쿄도 구니타치 시에 위치한 히토쓰바시 대학(Hitotsubashi University)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습니다. 저의 소속은 사회학부였습니다.
II. 학업
1. 수강과목 설명 및 추천 강의
저는 7개의 과목과 2개의 제미(ゼミ, Seminar)를 수강하였고, 한 개의 대학원생 과목을 청강하였습니다.
‘현대 일본어론’은 やさしい日本語(쉬운, 혹은 친절한 일본어)를 테마로, 재일 외국인이나 농인 등 일본 내의 사회적 마이너리티가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일본어를 어떻게 바꿔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토론하고 실천해보는 수업이었습니다. 세 분의 교수님이 돌아가면서 수업하는 방식으로, 수업 내용은 크게 やさしい日本語의 이론적 설명, やさしい日本語로 말하기, やさしい日本語로 쓰기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일본인 학생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었지만, 유학생 입장에서도 일본어를 공부하거나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느꼈던 어려움 등을 조별토론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재미있고 의미 있는 수업이었습니다. 중간에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일본수화로 수업을 진행하는 명청학원(明晴?園)에서 특강을 하러 와주셨는데, 개인적으로는 한국수화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관심 있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고전강독입문(총합)B’은 페미니즘 고전을 영어로 읽는 수업으로, 서울대의 소그룹원전읽기 수업과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매주 한 명씩 발제를 맡고, 나머지 학생들은 텍스트를 읽어 와 이를 기반으로 수업에서는 토론을 하거나 교수님의 해석과 설명을 들었습니다. 학생 수가 적은 만큼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 수월했고, 교수님께서 한국의 상황도 관심 있어 하셔서 수업 중에 한국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또, 이 수업을 통해 일본의 젠더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술론’에서는 일본 근세 미술사를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일본미술을 감상하는 데 필요한 기초 지식을 배우고, 그 뒤에는 카노파, 림파 등의 구체적인 작품들을 보면서 설명을 듣는 방식이었습니다. 매 수업이 끝날 때 수업 내용과 관련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술 전시들을 소개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아시아국제관계론’은 재일조선인 문제와 현대 한국의 교육문제를 다루는 수업이었습니다. 교수님도 재일교포이신 만큼, 재일교포 사회 내에서의 논의나 문제들도 깊이 있게 다뤄주셔서 배울 것이 많은 수업이었습니다. 매주 수업이 끝나고 나면 코멘트 카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그 다음 수업이 시작할 때 교수님께서 그 중 몇 가지를 골라 답변해주셨는데, 이를 통해서 일본 학생들이 재일조선인 문제, 그리고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조선의 역사와 문화B’는 전후 한반도의 역사를 다룬 수업이었습니다. (조선의 역사와 문화A는 봄, 여름 학기에 개설되는 수업으로, 일제강점기를 다룬다고 합니다.) 한반도의 역사를 일본과 연결 지어 배울 수 있었던 것이 좋았고, 무엇보다 교수님께서 매주 준비해주시는 수업 자료가 평소에는 접하기 힘든, 당시 일본 신문의 칼럼이나 인터뷰, 통계 자료들이어서 더욱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문학’ 수업은 메이지 말기부터 쇼와 초기까지의 사실 소설을 다뤘습니다. 매주 한 작품씩 교수님께서 발췌해오신 원문을 직접 읽어가면서 내용을 설명해주시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과제도 따로 있지 않아서 편하게 들을 수 있던 수업이었습니다.
‘일본어상급(문장표현)I’ 수업은 다양한 상황에 걸맞게 일본어로 글을 쓰는 방법을 배우는 수업이었습니다. 주제에 맞게 각자 글을 써오는 과제가 매주 있었고, 선생님께서 첨삭을 해주셨습니다. SNS에서의 글쓰기 방법도 익힐 수 있도록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어 글을 올리거나 서로 댓글을 다는 과제도 있었습니다.
제미는 교수님별로 나눠져 있었는데, 히토쓰바시 대학에서는 정규 학부생 전원이 제미에 소속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교환학생은 제미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지만 들어가고 싶은 학생은 해당 교수님의 허가를 받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회학부 소속이었지만 주 제미는 법학부의 권용석 교수님 제미를 수강하였고, 부 제미로 사회학부 카토 케이키 교수님 제미를 수강하였습니다. 두 제미 모두 주로 근대 이후 한반도의 역사에 대해 공부했는데, 학부가 달라서인지 같은 주제여도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 다양한 관점에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대학원생 수업인 ‘동아시아국제관계’를 청강하였는데, 한중일 세 나라의 학생들이 수강하고 있어서 각 나라의 입장에서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2. 외국어 습득 정도
저는 일본어 한자 쓰기 실력이 약해, 일본어 문장표현 수업을 수강하였습니다. 과제는 모두 기본적으로 컴퓨터로 작성해 제출하는 것이었지만, 교수님과 상담한 결과 저는 한자 연습을 위해 손으로 써서 제출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한자도 헷갈리는 일이 많았는데, 직접 많이 써보면서 조금씩 한자 실력을 늘려갈 수 있었습니다.
제미에서는 매주 읽어가야 하는 텍스트가 많아, 일본어 독해도 더욱 빨라지고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또, 레포트를 쓰는 과정에서는 일본인 친구들에게 검토를 받으면서 레포트에서 자주 쓰는 표현들과 쓰지 않는 표현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말하기는 평소에 생활하면서 거의 일본어로만 소통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이 늘었습니다. 제가 선택한 기숙사도 일본어를 주로 사용하는 동이어서 유학생끼리도 일본어로 소통하였습니다. 그리고 제미에서의 토론이나 발표는 학술적인 일본어 말하기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3. 학습 방법
제가 수강한 수업들은 대부분 기말고사를 레포트로 대체하는 과목들이어서 시험을 위한 공부는 거의 할 일이 없었습니다. ‘미술론’ 수업이 유일하게 기말고사가 있었지만 오픈 북 시험이라 평소에 해둔 필기를 정리해가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습니다.
평소의 과제와 수업 발제는 그 동안 수강했던 전공 수업들 내용과 연결 지어 준비하였고, 일본어는 일본인 친구들에게 검토를 받았습니다. 레포트를 쓸 때는 한국에서처럼 인터넷으로 자료들이 공개되어있지 않아서 도서관에서 직접 책이나 논문을 찾고 복사해야 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그 대신 질적으로 좋은 자료들을 찾을 수 있어 공부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교수님들께서 유학생들을 최대한 배려하려고 해주셔서, 수업을 듣는 데 어려움이 있으면 곧바로 교수님들과의 상담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III. 생활
1. 입국 시 필요한 물품 및 현지 물가 수준
웬만한 생필품들은 현지에서 구입할 수 있어서 옷과 노트북 정도만 챙겨 가도 될 것 같습니다. 히토쓰바시 기숙사 근처에는 100엔 편의점이 있어서 생필품과 음식도 주로 100엔 편의점에서 구매했습니다. 전체적인 물가는 한국보다 비싼 것 같지만, 대학교 근처의 음식점들은 한국과 가격이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JASSO 장학금을 받아 생활할 수 있었는데, 장학금이 들어오는 날짜가 매달 말이어서 조금 불편한 점이 있었습니다. 와이파이 공유기와 유심, 정기권, 생필품 구매 등 첫 달에는 가장 지출이 많은데, 장학금이 늦게 들어와 부모님께 지원을 받아 생활해야 했습니다. 마지막 달에도 귀국(1월 30일) 며칠 전에 장학금이 들어와 장학금은 거의 쓰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2. 식사 및 편의시설(의료, 은행, 교통, 통신 등)
학교에 있을 때는 주로 학식을 먹었지만, 학식도 한국에 비하면 그렇게 싼 편은 아니어서 매점에서 삼각김밥이나 빵을 사 먹은 적도 많았습니다.
다쳤거나 아플 때는 학내 보건소에 가장 먼저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다른 병원에 가야 할 정도의 증상이라고 판단되면 보건소에서 가까운 병원을 소개해주고 예약도 대신 해주어서 유학생 입장에서는 안심이 되었습니다.
생활하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교통이었습니다. 기숙사-캠퍼스 사이가 지하철 역 세 개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중간에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데다가 일본은 환승 시스템이 없다 보니 돈을 또 내야 했습니다. 정기권을 끊었지만 교환학생은 학생 할인을 해주지 않아 통근 정기권으로 끊어야 해서 학교에 가는 돈만 한 달에 10만원 정도씩 써야 했습니다. (자전거를 탈 수 있다면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다른 대학교에서는 교환학생도 학생 할인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곳도 있다고 들어서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또, 대학교와 기숙사 자체가 도쿄 서쪽 끝이라 신주쿠와 같은 도쿄 중심부로 가려면 시간과 돈을 많이 들여야 하는 것이 조금 불편했습니다.
통신은 해약 위약금이 없는 이온 모바일 회사의 유심을 사서 사용했습니다. 매달 데이터 몇 기가를 사용할지, 그리고 음성 통화 기능을 사용할지 말지 정할 수 있습니다. 유심이 도착하는 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는 만큼 처음 갈 때 1~2주 정도 사용할 유심을 사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숙사에서는 처음 들어갈 때 와이파이 공유기를 신청할 수 있어서 기숙사에 있을 때에는 데이터를 쓸 일이 많이 없었습니다.
3. 여가 생활
저는 SPICA라고 하는 k-pop 댄스 동아리에 들어가 매주 두 번 연습에 나갔습니다. (비싼 돈을 들여 정기권을 끊은 만큼 토요일 연습을 위해 학교에 갈 수 있던 것도 좋았습니다.) 가을 축제 무대에도 서게 되어서 연습하는 데 동기부여도 되었고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과도 많이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일본 대학에서는 한국의 동아리에 해당하는 것이 부활동과 서클로 나뉘는데, 교환학생은 주로 조금 더 가벼운 느낌인 ‘서클’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히토쓰바시 대학에서는 유학생과 재학생을 1:1로 매칭해주는 버디 프로그램이 있어서 신청하였는데, 정말 잘 맞는 친구와 버디가 되어서 대학 생활에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습니다. 버디 프로그램 참가자를 대상으로 하는 일본 문화 체험 행사도 여러 번 있어서, 지역의 마쓰리(축제)에 가거나 지역 농가에서 직접 야채를 따서 돈지루를 만들어 먹는 등 버디와 함께 다양한 경험들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1월에 학기가 끝나고 귀국하기 전까지는 버디와 오사카, 교토 여행도 다녀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해, 한 달에 세 번 이상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일본의 미술관은 각 작품마다 설명이 자세하게 적혀있고, 음성가이드도 내용이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미술론’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소개해주시는 일본 미술의 전시들도 많이 보고 왔는데, 수업에서 기초적인 지식들을 배우고 가니 보이는 것들이 더 많아 즐겁게 감상하고 왔습니다. 도쿄에는 크고 작은 미술관들이 많아서 미술관마다 특색이 있는 것이 재미있었고, 마음에 드는 미술관에서는 다음에 예정되어있는 전시의 예매권을 할인된 가격에 미리 구매해두기도 하였습니다.
4. 기타 보고 사항
매년 서울대 정치외교학부와 히토쓰바시대학 법학부 간에 국제교류세미나가 열리는데, 저는 2017년에 이 국제교류세미나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히토쓰바시대학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교환학생으로 가 있는 기간에는 히토쓰바시 쪽에서 국제교류세미나가 열려 이번에는 히토쓰바시 측 학생으로서 참여하여 서울대 학생들을 맞이하였습니다. 양측 모두의 입장에서 세미나를 준비하고 참여할 수 있던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의미가 있었고, 세미나 중간에는 저희 조의 통역 역할도 할 수 있어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IV.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이번 교환학생은 저의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값진 경험이 되었습니다. 일본언어문명 전공을 하면서 ‘이제 일본에 대해서라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가서 생활해보니 전혀 다른 일본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나라를 완벽하게 안다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교환학생 기간 동안 생긴 일본에 대한 궁금증들을 풀기 위해 더욱 깊이 공부해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한국에 돌아와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의 주니어 펠로우 프로그램에도 신청하여 올해 7기생으로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장래에 한일 간 민간교류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일본언어문명전공을 선택하였지만, 전공 공부를 하다 보면 ‘한일관계가 정말 더 나아질 수 있을까’하는 회의감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항상 마지막에는 일본에 있는 친구들과 지인들을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내곤 했는데, 이번 교환학생을 통해서는 더 많은 일본 친구들을 만나 제가 일본에 대해 공부하는 데 있어서 흔들리지 않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물론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실망한 적도 상처를 받은 적도 있었지만, 그런 경험들조차도 공유할 수 있는 많은 친구들을 만난 덕분에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눈을 보고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 번 느끼고 왔습니다. 그리고 한일 관계를 위한 일을 하는 것이 저의 길이라는 걸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4학년이 되어 진로도 생각해야 하고 지금까지 해왔던 공부도 더욱 심화시켜 가야 할 시기가 된 만큼, 교환학생의 소중한 경험들을 살려 더욱 성장할 수 있는 한 해로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