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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윤O민_University of Melbourne_2019학년도 2학기 파견

Submitted by Editor on 14 January 2021

I. 교환 프로그램 참가 동기

    

저는 호주 멜버른 대학으로 한 학기 동안 교환을 다녀왔습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주변 친구들이 각자의 길을 찾아 열심히 한발 한발 내딛고 있는 반면, 저는 미래에 대한 아무런 준비나 계획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던 저는 교환을 통해 한 학기 동안 외국에서 쉬엄쉬엄 공부하면서 머리를 식히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외국 친구들도 많이 사귀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좀 더 넓히고자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호주였을까요? 원래는‘교환학생은 무조건 여행하기 좋은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야지’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호주라는 나라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2019년 1월에 참가한 ‘SNU in Australia’는 제가 호주에 관심을 갖게 한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스누인 프로그램을 통해 호주의 다양한 매력을 알 수 있었으나, 아무래도 스누인은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그 매력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느껴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2019학년도 2학기 교환학생 추가모집 공고에서 멜버른 대학이 아직 공석인 것을 보고, 호주로 교환을 가면 그 때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호주의 여러 도시 중에서 멜버른을 고른 이유는 멜버른 대학이 호주 내에서 가장 순위가 높은 대학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7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로 멜버른이 몇 년 연속으로 뽑혔다는 영국 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통계 결과를 보고 ‘대체 얼마나 살기 좋기에 그러는 거지?’ 라는 호기심에 지원하게 된 것도 있습니다.

    

II. 세부 경험 내용

    

호주는 기본적으로 집값이 굉장히 비싼 나라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의 선호도와 경제력에 따라 개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거주 형태 또한 다양한데, 크게 ‘대학교 기숙사 (Colleges)’, ‘Student Accommodation’, ‘개인 임대’, ‘쉐어하우스’ 네 가지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먼저 대학교 기숙사(College) 입니다. 호주의 기숙사 시스템은 한국의 기숙사와는 많은 부분이 다릅니다. 한국에서 대학교 기숙사라고 하면 학교 내에 위치한, 비교적 저렴하게 숙식을 제공해 주는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다르게 호주에서 ‘College(컬리지)’라는 이름이 붙은 기숙사의 경우 대학과는 별개로 운영되는 하나의 교육기관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합니다. 같은 대학교에 소속된 컬리지라도 학교가 아닌 다른 단체(주로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대학교 내에서도 서로 다른 분위기와 성격의 컬리지들이 존재합니다. 무엇보다 각 과목별 튜터링, 세미나 같은 교육 프로그램이나 다양한 클럽활동, 봉사활동 등의 extra curricular들이 열리기 때문에 컬리지 내의 친구들과 끈끈한 사이를 유지하며 알찬 학교생활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말로만 들으면 누구나 살고 싶은 호그와트 같은 기숙사이지만, 컬리지 내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활동 덕분인지 기숙사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다음은 ‘Student Accommodation’로, 쉽게 말하자면 사설 학생 주거 공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학교 주변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으며, 대표적으로는‘Student Village Melbourne’, ‘RMIT Village’, ‘Journal’, ‘Unilodge’ 등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컬리지보다 훨씬 저렴하면서도 입주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종종 열린다는 장점이 있지만, 식사가 따로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마트에서 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를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다른 학생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곳을 선호했기 때문에 멜버른 대학과 걸어서 약 5분 거리에 위치한 ‘Student Village Melbourne’을 선택했습니다. 웹사이트에서 직접 원하는 방에 Apply를 해야 했는데, 혼자 방을 쓰고 싶다면 Studio(1인실)를, 룸메이트들과 방을 공유하는 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면 좀 더 저렴한 가격의 4인실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4인실을 선택해 룸메이트들과 거실과 주방, 화장실(2개)을 공유했지만, 각자 개인실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방끼리의 방음이 굉장히 잘 되었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가격도 제가 찾아본 모든 Student Accommodation 중에서는 가장 저렴했습니다. (Student Accommodation은 일반적으로 주 단위로 Rent fee를 계산하는데, 저는 가장 싼 방이었는데도 일주일에 약 AU $350를 지불했기 때문에 한 달에 백만 원이 넘는 돈이 나갔습니다. 가격 및 시설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https://www.mystudentvillage.com/au/student-village-melbourne/ 에서 확인 가능)

마지막은 ‘아파트 쉐어’ 및 ‘쉐어하우스’입니다. CBD에 위치한 아파트를 임대할 수 있는데, 두 명이서 한 방을 사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아무래도 둘이서 공간을 사용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넓고 편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교환을 같은 시기에 가는 친구가 있다면 함께 아파트를 빌리는 방법도 고려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개인이 임대하는 쉐어하우스에 입주하는 방법이 있는데, 멜버른에는 유학생들이나 워킹홀리데이를 온 한국인들이 꽤나 많기 때문에 한인쉐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Student Village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저는 ‘교환학생’을 간다는 것은 단순히 놀러가는 것과는 분명 달라야 한다는 점을 항상 명심하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한국인 교환학생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한국인 교환학생들끼리 친해지면 상대적으로 편하게 지낼 수는 있겠지만, 그 무리 속에서 안주하다 보면 정작 외국 학생들과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보니 초반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애초에 서울대학교에서 멜버른 대학교로 저 혼자 교환을 가기도 했지만, 한국에서 멜버른으로 교환을 온 학생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고충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멜버른에 도착한 첫 날 시내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해 양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 끙끙대면서 숙소로 돌아오는 중이었는데, 운이 나쁘게도 그 때 비가 내렸습니다. 그러나 양손이 짐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우산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당시 호주는 겨울이었기 때문에 날씨가 굉장히 추웠는데, 추위 속에서 비를 맞으며 걸어오는데 날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막막해 길 위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처럼 초반에는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럼 한국인 교환학생 말고 다른 교환학생들이랑 놀면 되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교환학생 OT에 가면 친구들과 빨리 친해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후에도 친구를 사귀는 일은 생각만큼 그렇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교환학생의 70% 이상이 유럽과 미국에서 온 서양 학생들이었는데, 이후 있었던 크고 작은 행사를 통해 서양인들은 서양인들끼리 무리 지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인종차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서양 친구들과는 기본적인 성향 자체가 달라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교환학생들만 가입할 수 있는 동아리인 MUSEX에서 선상 파티가 열렸는데, 서양의 파티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저는 그들의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또한 공통 관심사가 적었기 때문에 대화를 어느 정도 이어나가는 것은 가능하더라도 그 이상으로 깊이 친해지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초반에는 ‘내가 너무 보수적이고 소극적이라서 괜히 겁먹고 마음속으로 벽을 쌓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를 자책했는데,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해본 결과 이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앞서 말한 성향 차이가 크기 때문에 동양인은 동양인들끼리, 서양인은 서양인들끼리 어울리는 게 일반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너무 무리하지 말고, 너와 잘 맞고 너를 좋아해주는 친구들은 분명히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이후, 저는 좀 더 마음을 가볍게 먹고 나와 잘 맞는 친구들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제가 찾은 답은 바로 ‘동아리’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 멜버른 교환 생활은 동아리가 절반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 만큼, 멜버른 대학교의 경영학부인 ‘Bachelor of Commerce’하에 있는 여러 동아리에 가입했고 이후에도 평소 관심 있는 분야에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크고 작은 동아리들에 가입했습니다. 멜버른 대학교의 동아리 대부분은 가입비 5달러를 내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이후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고 말고는 개인의 스케줄이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동아리마다 절반 이상은 유령회원이 되지만, 그들이 낸 돈은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는 회원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일단 가입하고 활동에 참여하기만 하면 5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음식이나 프로그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우선 전부 가입해놓고 가장 마음에 드는 몇 개만 골라서 열심히 참여하자라는 생각으로 괜찮다 싶은 동아리들은 모두 가입했습니다.

제가 가장 열심히 참여했던 동아리는 크게 세 개가 있는데, 이를 하나씩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선 첫 번째는 ‘ICSS (International Commerce Students’Society)’입니다. 말 그대로 Commerce를 전공하는 학생들만 들어올 수 있으며, 호주 현지 학생들이 아니라 해외 유학생들로만 구성된 동아리입니다. 애초에 멜버른 대학교는 전체 재학생의 절반 정도 (2018년 기준 42%)가 유학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Bachelor of Commerce는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유학생의 수가 굉장히 많은 학부였습니다. 따라서 아시아계의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는 ICSS에 가입할 수 있다면 보다 잘 맞는 친구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ICSS는 제 예상과는 달리 단순히 친목을 위한 동아리라기보다는, 한국의 학회처럼 실제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가를 초청해서 강연을 열거나 동아리 회원들을 대상으로 모의 면접 컨설팅을 받는 등 보다 전문적인 세션을 많이 주최하는 단체에 가까웠습니다. 따라서 오늘 행사에서 만난 친구가 다음 행사에 나올 것이라는 보장이 안 되기 때문에, 좀 더 진득하게 자주 볼 수 있는 친구를 만드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중 Subcommittee를 뽑는다는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Subcommittee로 선발되면, 행사나 세션을 준비하고 기획하는 과정에서 함께 일하는 임원진들과 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Subcommittee 선발은 다른 동아리와는 다르게 지원서와 면접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영어 면접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저는 지원을 굉장히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처음이자 마지막 호주 교환인 만큼 후회를 남기지 말자는 생각에 용기를 내 지원했고, 운 좋게 Subcommittee로 뽑힐 수 있었습니다. 이후 함께 선발된 임원진 친구들과 다양한 활동을 기획·주최하며 금방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의 커리어와 관련된 활동을 주로 하다 보니 제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어서도 굉장히 좋은 자극을 많이 받았습니다. 해외 취업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는데, ICSS의 구성원으로서 한 학기를 보내면서 외국 기업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K-POP 동아리, ‘UKC (Unimelb K-POP Club)’입니다. 평소에 아이돌을 굉장히 좋아하는 저로서, K-POP 동아리가 있다는 것은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제 관심사를 다른 사람들, 그것도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동아리에 가입했습니다. UKC에서는 기본적으로 주 2회 Dance class가 열리고, 한 달에 한 번 동아리원 모두가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큰 행사가 열렸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Dance Class를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 누구도 서로의 춤 실력을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춤을 잘 못 추더라도 K-POP 아이돌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춤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매달 열리는 행사에서도 함께 랜덤플레이댄스를 추거나, K-POP 아이돌과 관련된 퀴즈를 맞히는 등 동아리원 모두의 참여를 이끌 수 있는 활동들이 많았습니다.

이후 UKC의 친구들과 가까워지면서 이 동아리의 많은 친구들이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K-POP과 한국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호주 현지 학생들보다는 중국과 동남아 쪽 친구들이 특히 그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비록 순수한 호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친구들이 제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저를 굉장히 좋아해 주었고, 한 학기밖에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없는 저를 많이 배려해주었습니다. 가끔은 한국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 친구들의 질문을 받고 당황한 기억도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제가 한국인이라고 소개를 하면 ‘지민이는 부럽다. 한국 남자들은 다 잘생겼잖아!’라고 말하며 제가 남자친구가 있는지 궁금해 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은‘Language Exchange Club’입니다. 이름 그대로 세계 각국의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동아리로, 영어를 비롯하여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중국어, 일본어, 그리고 한국어 수업이 있었습니다. 이 동아리의 가장 큰 장점은 특정 언어가 모국어인 학생들이 직접 그 언어를 가르친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어는 중국인 학생이 가르치고, 스페인어는 스페인어가 모국어인 라틴계 학생들이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모르는 점이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바로바로 질문해 그에 대한 답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가입비 5달러만 내면 시간이 맞는 모든 외국어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여러 언어를 가장 저렴하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굉장히 인기가 많았는데, 실제로 멜버른 대학교 동아리 중에서도 부원의 수가 가장 많은 동아리 중 하나로 손꼽히는 동아리였습니다. 저는 일본어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는데, 사실 수업이 주1회 한 시간씩 열렸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진도를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부터 시작해서 일본어 기초 문장을 차근차근 배웠고, 함께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함께 발음 연습을 하며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 개의 동아리를 중심으로 멜버른 대학교에서의 한 학기가 굴러갔고, 동아리 부원들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수업을 마친 이후나 주말에는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거나 쇼핑을 가거나 노래방에 가는 등, 한국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러 다니는 것과 다름없는 생활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동아리에 대해 소개했다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멜버른 대학교 생활 자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멜버른 대학교는 총 8개의 캠퍼스가 있는데, 저는 그 중 본캠퍼스인 파크빌(Parkville) 캠퍼스에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멜버른 도시 자체가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캠퍼스 내에서도 전통적인 유럽풍 스타일의 건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학교 자체가 시내와 가까운데다가 주변이 거의 대학생들 주거지인지라 늦은 밤에도 사람이 많은 편이며, 캠퍼스 경비원들이 종종 순찰을 돌기 때문에 크게 위험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큰 사우스뱅크(Southbank) 캠퍼스에는 음대와 미대가 위치해 있습니다.)

또한 서울대와 마찬가지로 수강편람 웹사이트 (http://handbook.unimelb.edu.au)가 있기 때문에 출국 전 한국에서 틈나는 대로 이 웹사이트에서 수업을 검색해 놓고, 온라인으로 정식 교환학생 등록을 할 때 골라놓았던 과목을 신청해야 합니다. 개강 첫 일주일은 다양한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이때 진행하는 수강신청 오리엔테이션에 무조건 참가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곳에서 가르쳐주는 대로 그대로 잘 따라 하면 쉽게 수강신청을 마칠 수 있지만, 만약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해도 당황하지 말고 교내에 위치한 안내센터인 ‘Stop 1’의 수강신청 담당자에게 주저 말고 도움을 청하면 됩니다. 다만 선수과목인 Pre-requisite 수강 여부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기 때문에 본인이 선수과목을 수강하였음을 보일 수 있는 영문 성적표를 준비해가야 합니다. (선수과목을 듣지 않았음에도 그 과목을 꼭 듣고 싶으면 미리 이메일 등으로 허락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서울대와 마찬가지로 개강 후 약 한 달간은 수업을 드랍하거나 새로운 수업을 등록하는 것이 자유로웠습니다.

호주 대학교의 학기는 한국과는 굉장히 달랐습니다. 한국 대학교의 한 학기는 보통 15 ~ 16주 (3달 반 ~ 4달)로 이루어집니다. 일반적으로 7주 수업 후 중간고사, 다시 7주 수업 후 기말고사를 치르고 이것까지 마치면 학기가 끝나게 되는데요, 멜버른 대학의 수업 기간은 이것과 조금 달랐습니다. 호주의 학기 자체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15 ~ 16주 정도이지만, 별도의 중간, 기말고사 없이 12주 동안 계속 수업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3달이 지나 수업이 끝나면, 남은 3주 동안 과목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시험을 보는 날짜는 시험기간이 시작하기 한 달 전쯤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다보니 시험 날짜가 어떻게 잡히는지가 굉장히 중요한데, 만약 운이 나쁘게 하루에 시험 2개가 잡히면 그 전 주는 고생길을 걸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한 학기 동안 배운 내용을 한꺼번에 공부해야 하다 보니 한 과목도 힘든데, 두 과목이 몰리면..) 시험이 너무 늦게 끝나면 다른 친구들이 다 놀 때 혼자 외롭게 공부를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필이면 저는 마지막 시험이 전체 시험 기간의 거의 마지막 날짜로 잡혔던지라, 공부하면서 다른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볼 때 정말 괴로웠습니다.

파이널 시험은 학교가 아니라 시험을 위해 따로 마련된 건물인 ‘Royal Exhibition Hall’에서 치러졌습니다. 이곳은 본래 왕립전시관으로 굉장히 큰 규모의 건물이었는데, 몇 천개의 책걸상을 갖다놓고 다른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과 섞여서 함께 시험을 봤습니다. 학교 포털에서 미리 자신의 수험번호(책상번호)가 몇 번인지를 알아야 올바른 시험지가 놓인 자리에 앉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꼭 확인해야 했습니다. 저에게는 이러한 시험 방식이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는데, 전통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시험을 관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1인용 책걸상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놓여있을 뿐만 아니라 각 줄마다 다른 과목을 보는 학생들을 배치하기 때문에 컨닝의 우려도 덜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앞서 말한 것처럼 현재 서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 만큼, 전공 선택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Commerce 수업 세 개 (『Strategic Marketing』, 『Business in the global economy』, 『Supply Chain Management』)를 수강했습니다. 수업은 크게 ‘Lecture’와 ‘Tutorial’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Lecture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한국식 강의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교수님의 수업을 듣는 시간이었고, Tutorial은 15-20명 정도의 소규모 인원이 교수님(혹은 강사님)의 지도하에 매 수업시간마다 정해진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인원도 적을뿐더러, 계속 앉은 자리에서 조를 짜서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고 발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수업 참여도가 더욱 활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강의를 처음 들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무슨 말인지 도통 못 알아듣겠네!’였습니다. 제가 수강했던 세 개의 과목 중 두 개는 호주인 교수님, 하나는 인도인 교수님께서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아무래도 호주 로컬 악센트가 처음 들었을 때는 익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도 영어 역시 발음 자체가 한국인에게 익숙한 미국식 영어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특히 인도 교수님의 영어는 정말 알아듣기가 힘들어서 다른 과목으로 바꿔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내 이 부분은 제가 익숙해져야 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지 않고 수업을 끝까지 들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영어가 영어의 전부가 아닐 뿐만 아니라, 발음이 다르다고 그들이 사용하는 영어가 틀리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멜버른 대학교의 대부분의 Lecture은 출석체크를 하지 않았습니다. 학비가 비싼 만큼 혹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데 그 시간이 강의 시간과 겹치거나, 듣고 싶은 과목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과목들끼리 서로 시간이 겹치는 상황을 고려해서 출석체크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 Tutorial은 학생들의 수업 참여가 중요한 만큼 출석을 체크합니다.) 따라서 수업을 못 듣는 학생들을 고려해 매 수업시간 이후 강의의 녹화본이 서울대학교의 eTL과 같은 사이트에 업로드 됩니다. 사실 이 점을 악용하여 수업을 빠지고 나중에 녹화된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저는 이 녹화본을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잘 들리지 않는 발음이 있다면 몇 번이고 돌려볼 수 있었고, 제가 빠뜨린 부분이 있다면 녹화본을 통해 그 부분을 보충할 수 있었습니다.

수업마다 평가하는 방식이 다르기는 했지만 일반적으로 Tutorial 참여 태도가 10%, 과제가 30~40% 정도 반영되며, 과제는 수업마다 그 주제나 진행 방식이 다양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과목이던 간에 시험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게다가 중간고사 없이 Final Test만 있기 때문에, 그 한 번의 시험이 최종 성적의 반 이상을 결정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와 달리 드랍자 포함·미포함 여부를 전혀 따지지 않고 절대평가로 성적을 매길 뿐만 아니라, Commerce 수업은 ‘Hurdle’이라고 Tutorial 참여도나 과제에서 아무리 높은 성적을 받더라도 Final Test에서 50% 이상을 맞히지 못하면 Fail을 받는 제도가 존재했습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시험을 좀 못 보더라도 과제에서 어느 정도 좋은 성적을 받으면 C 정도는 받을 수 있는데, 멜버른에서는 아무리 과제에서 만점을 받아도 기말 시험에서 절반 이상을 맞히지 못하면 바로 낙제를 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무조건 절반은 맞아야 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한국에서 공부할 때와 비슷할 정도로 만만찮은 부담감을 느꼈습니다. 교환학생을 가서는 패스만 받으면 되니까 공부를 좀 더 설렁설렁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저는 그 패스를 받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제가 살던 숙소가 멜버른 대학과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주로 같은 기숙사에 사는 친구들과 함께 기숙사 매 층마다 마련되어 있는‘Study Lounge’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친하게 지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환학생이 아니라 멜버른 대학교에 실제로 재학 중인 유학생들이었기 때문에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말 새벽까지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니 저 역시 덩달아 그 분위기에 적응되어 공부에 더 몰두하게 된 것 같습니다.

    

III.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멜버른은 전 세계의 그 어느 도시보다도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차별이나 편견 없이 어울려 사는 도시이며, 멜버른 대학 역시 그 어떤 대학보다도 International students를 위한 지원 제도가 가장 잘 마련되어 있는 대학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환을 간 그 대학의 학생으로서 한 학기를 보내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꼭 호주로 교환을 오시는 것을 추천 드려요!

또한 저는 자신이 교환을 가서 가장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때 교환학생으로서 가장 의미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처음부터‘Socializing’, 즉 외국 친구를 사귀는 것을 목표로 하고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목표를 잡고 한 학기를 보내다보니, 앞서 언급한 많은 내용에서도 느끼실 수 있겠지만 ‘어떻게 하면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결정들이 이루어졌고 남들이 해보지 않은, 그리고 해보지 않을 도전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저만의 목표를 세우지 않고 무작정 교환을 떠났다면,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을 것이며, Subcommittee 모집 공고는 ‘교환학생이 귀찮게 무슨 저런 걸 해’라는 생각을 하며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동아리에서, 수업에서, 숙소에서 만난 친구들과 꾸준히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교환학생을 떠날 예정인 학우 분들도 이 글을 보신다면 ‘내가 정말 교환을 가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뭘까’라는 고민을 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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