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교환 프로그램 참가 동기
불어불문학과 소속으로서 학부 생활 내내 프랑스 문화를 공부하며 자연히 현지 체험에 대한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부 수업 동안 간단하게만 접한 ‘본고장’의 학문적 방법론들(explication de texte 등), 본교 수업에서는 다루어지지 않는 프랑스 문화의 면면들을 수업과 경험을 통해 배워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코로나19의 기세가 한풀 꺾인 틈을 타 교환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II. 파견대학 및 지역 소개
파리 4대학, 혹은 소르본 대학은 파리 중심의 라탱지구(quartier latin)에 위치한 유서 깊은 인문대학입니다. 교환 프로그램에 먼저 참여했던 선배는 소르본 대학을 ‘인문학의 성지’라 칭했는데, 화려한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양질의 인문학 교육을 제공하며 제반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3학년과 대학원 수업은 5구의 본교에서, 1-2학년 수업은 17구의 말세르브 캠퍼스에서 진행됩니다.
III. 출국 전 준비 사항
a) 교환학생 신청 및 입학허가서 수령
5-6월부터 본격적으로 본교와의 소통이 시작됩니다. 소르본 측의 안내를 따라 정식 교환학생 신청 절차가 마무리되면 입학허가서를 받습니다. 이 입학허가서가 출국 전후 모든 행정업무의 기반이 되는 만큼 빨리 받을수록 좋습니다.
b) 주거지 구하기
같은 시기에 기숙사 신청도 진행됩니다. 소르본 대학에는 기숙사가 없으며, ‘기숙사 신청’은 국제대학학생촌인 cite universitaire(이하 시떼) 내 기숙사들과의 제휴로 이루어집니다. 이전에 교환 프로그램에 참여한 선배들은 대부분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코로나 때문에 유학생 수가 줄어서인지 저는 운 좋게 시떼 캄보디아관의 1인실(월세 587유로, 주택보조금 제외 500유로) 을 배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의 기숙사 신청 절차는 시떼 사이트에서 직접 진행하시면 됩니다.
c) 비자 발급
프랑스 학생비자는 신청 절차가 복잡하고 발급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출국 희망일로부터 적어도 2달 전부터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먼저 학생비자 발급을 관리하는 중개기관인 Campus France 웹사이트에 입학허가서를 비롯한 서류를 업로드한 후, 형식적인 온라인 면접을 보게 됩니다. 면접이 끝나면, 직접 대사관을 방문해 각종 서류 원본을 제출해야 합니다. 저의 경우 대사관 방문으로부터 2주 후에 비자를 받았습니다. 여름방학에는 대사관의 비자 업무가 늘어나고 일처리 시간도 길어지는 만큼 대사관 방문 날짜를 일찍 잡기 어려워지니 최대한 일찍 시작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d) CAF(주택보조금) 서류
IV-c에서 설명할 주택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출생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를 떼 가야 합니다. 해당 서류들을 발급받은 후 양재동 외교부 여권과를 방문하여 아포스티유(외교부에서 발급하는 일종의 진위확인서)를 받습니다. CAF, allocation, 주택보조금 등을 키워드로 검색하시면 자세히 설명된 블로그 글들을 찾으실 수 있으실 테니 참고하시길 권유합니다.
e) ameli 가입
의료보장카드(carte vitale)와 사회보장번호(numero de securite sociale)을 받으려면 사회보장제도 사이트인 ameli에 가입해야 합니다. 본래 6개월 단기체류의 경우, 발급받는 데만 반 년 넘게 소요되는 의료보장카드를 굳이 신청할 필요 없습니다. 다만 저는 프랑스에서 백신을 맞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임시 사회보장번호를 받아야만 했고, 그 덕분에 회당 25유로인 pcr검사도 항상 무료로 받을 수 있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관광차 입국 시 pcr 음성확인서를 요구합니다). ameli 가입 및 사회보장번호 신청은 비자를 발급받자마자 가능하니, 한국에서 신청 절차까지 마치고 가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IV. 학업 및 현지 생활 안내
학업) 소르본 대학에서는 오직 프랑스어로만 수업이 진행되기에, 파견되는 학생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역시 언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교환학기 5개월 전에 DALF C1을 취득한 상태였는데, 수강신청을 할 당시 상대적으로 수준이 높은 3학년 수업들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할까 봐 1-2학년 수업들만 선택했습니다(사실 1-2학년 수업들이라고 해서 3학년 수업들보다 잘 ‘들리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결과적으로는 이 선택을 후회할 만큼 수업들을 따라가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비록 6-70%밖에 알아듣지 못할지라도 강의의 흐름은 쫓아갈 수 있었고, 대부분의 과제와 시험은 지엽적인 강의 내용의 복기보다는 본인의 해석과 분석에 더 큰 비중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같이 수업을 듣는 프랑스 친구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인문학의 성지’에서 지적 자극을 잔뜩 받고 가시려면, 본인의 언어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마시고 듣고 싶은 수업들을 모두 듣다 가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현지 생활)
a) 은행
프랑스 계좌가 필요한 서비스들(일부 통신사에서의 전화개통 등)을 누리고 싶으시다면, 그리고 아래 c에서 설명할 주택보조금을 받을 의향이 있으시다면 프랑스 계좌를 만들어야 하고, 계좌를 만들려면 최대한 빨리 (가능하다면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은행에 가서 rdv를 잡아야 합니다. 은행 직원에게 계좌를 만들러 왔다고 말씀드리면 가능한rdv 날짜와 가져와야 할 서류 목록을 알려주십니다. 이후 해당 서류들을 챙겨 은행에 가서 상담원과 계좌를 만들면 됩니다. 늦어도 2주 후에 프랑스 카드를 수령할 수 있습니다. 학교와 제휴한 은행이 있다면 해당 은행 지점을 이용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b) 전화
저는 계좌 개설 과정에 차질이 생겨서 급한 대로 프랑스 계좌가 필요 없는 프리(free) 통신사를 이용했는데, 지하철과 기차 등에서 종종 인터넷이 끊겨 애를 먹곤 했습니다. 프랑스 계좌를 만드실 예정이시라면, 어디에서든 인터넷 접속이 원활한 편이고 쉽게 해지할 수 있는 부이그(Bouygues) 통신사를 추천드립니다. 계좌를 개설하여 통신사에 가입하기 전까지는 한국 통신사의 2주 해외로밍 서비스를 이용하시거나 인천공항에서 2기가바이트짜리 선불 유심을 사 가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c) CAF(주택보조금)
프랑스에 거주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주택보조금을 받을 수 있지만 신청 절차가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저는 온라인 신청을 9월에 마쳤으나 보조금을 5개월 넘게 받지 못해 직접 CAF 사무실을 방문하고 상담원과 수십 차례 통화하는 등 상당히 곤란을 겪었고, 결과적으로는 귀국 후에야 5개월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절차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에서 준비한 출생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서류를 가지고 주불 한국대사관을 방문하시면 번역공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를 비롯한 각종 기본 서류들을 스캔하여 CAF 사이트에 업로드하시면 온라인 신청 절차는 완료됩니다. 이후 곧바로 서류 복사본을 CAF 사무실에 우편으로 부치시면 됩니다. CAF 신청 절차 또한 각종 블로그 글들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길 권유합니다.
III.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자칭 프랑스 문화의 추종자였던 저에게, 교환학생 생활은 제가 소비하던 미디어에 다 담기지 못한 다채로운 프랑스의 면면을 새로이 발견하는 기회였습니다. ‘앞으로 내 인생이 잘 안 풀릴 거라는 계시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난히 행정 문제로 애를 먹었고 외로움을 타기도 했지만, 그만큼 소중한 인연들도 많이 생겼고 프랑스를 공부하기 시작한 이래로 버킷리스트에 차곡차곡 쌓아둔 사소한 소망들도 전부 이룰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지금까지의 삶과 앞으로의 향방을 진지하게 되돌아볼 수 있었던 ‘건강한 고립’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소르본, 파리, 프랑스에서 행복한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