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교환 프로그램 참가 동기
외국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게 해당 국가에서 체류하는 것은 공부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연구 자료나 문헌을 조달하는 데에 비교적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는 반면에 현지에서는 훨씬 풍부한 자료와 최신 문헌들까지도 손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는 현재 작성하고 있는 박사 논문과 관련하여 자료 조사 및 전문가와의 면담 등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깊은 고민 끝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이라는 현 상황에도 불구하고 출국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독일로는 교환학생과 같은 불가피한 사유가 있지 않은 이상 입국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제협력본부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해외 수학을 위한 더 없이 귀중한 기회가 되어 주었습니다.
II. 파견대학 및 지역 소개
제가 교환학생 생활을 한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로서 정치, 경제, 교통, 학문의 중심지일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여느 유럽 도시에 비할 바 없이 독특한 얼굴을 지닌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베를린은 동독의 수도였던 동베를린과 서독에 속하는 서베를린으로 나뉘어 상이한 궤적을 그리며 발전해 왔습니다. 일례로 독일에는 보통 한 도시에 하나씩만 있는 종합 대학이 베를린에는 두 개나 있었고, 극장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전통과 성향을 지닌 두 개의 큰 극장이 각축을 벌였습니다. 이렇듯 베를린에는 과거 서구권과 동구권이 각기 지니고 있던 문화와 역사의 정수가 응집되어 있습니다. 동독 박물관, 장벽 박물관, 슈타지 박물관, 국립 역사 박물관 등 관련 뮤지엄도 다양하게 잘 갖추어져 있어 독일의 현대사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에는 두 베를린이 급격하게 혼합되면서 또 다른 문화가 태동하게 됩니다. 베를린의 혼종적인 성격과 저렴한 지대에 매력을 느낀 독일, 더 나아가 유럽의 청년들과 예술가들이 베를린에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시내 곳곳을 뒤덮고 있는 그래피티 아트, 폐허가 된 건물에 생긴 재즈 바와 클럽, 일요일마다 장벽 공원에서 열리는 버스킹 공연들… 이러한 면모는 계속 이어져 베를린은 지금도 문화예술의 산실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든 베를린에서 그에 관련된 창의적인 실험이나 행사, 전시, 강연회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베를린 자유대학교의 교명에 들어가는 ‘자유’에는 냉전시대의 역사가 기입되어있습니다. 원래 베를린 유일의 종합대학이었던 ‘베를린 대학교’(1949년 ‘베를린 훔볼트대학교’로 개명)가 분단 시 동베를린에 편입되자 서방에서는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1948년 베를린 자유대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시내 중심부에 자리한 훔볼트 대학교와는 달리 자유대학교의 캠퍼스는 자연친화적이고 조용한 주거 지역인 남서쪽 달렘 지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학교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만큼 건물들의 외관이 화려하거나 고풍스럽지는 않지만 자연 환경과 어우러져 공원 같은 여유 있는 느낌을 줍니다.
또한 베를린 자유대학교는 훌륭한 연구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2005년에 개관한 문헌학 도서관은 독문학에 있어서는 독일 최대 규모의 장서(17만5천여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가장 큰 학술 도서관인 베를린 국립도서관과 가까워 함께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자유대에서의 수학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대학교는 학생 수 약 3만 7천명으로 독일에서 14번째로 큰 대학이며 타임즈지 선정 세계 대학 랭킹에서는 2021년 기준 118위로, 독일 대학 중에서 10위에 해당됩니다.
III. 출국 전 준비 사항
베를린으로 교환학생을 떠나기 전 준비할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전입신고 예약: 베를린에서는 새 주거지에서 6개월 이상 체류할 예정이라면 원칙적으로 입주한 후 14일 내에 전입신고를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민센터에 날짜를 예약해야 하는데, 보통 예약이 밀려있는 경우가 많으니 미리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https://service.berlin.de/dienstleistung/120686/)
(2) 슈페어콘토 개설: 베를린에서 체류허가증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재정 보증이 필요한데, 가장 손쉬운 방법은 슈페어콘토를 개설하는 것입니다. 슈페어콘토란, 목돈(현재 10,332유로)을 묶어두고 1년 간 월 일정 금액(861유로)을 다른 계좌로 송금해 주는 특수한 계좌입니다. Deutsche Bank, Expatrio 등의 은행이 슈페어콘토를 제공하는데, Expatrio의 경우 한국에서도 손쉽게 가입할 수 있습니다.
(3) 체류허가증 신청 예약: 전입신고, 보험 가입, 슈페어콘토 개설, 학교 등록 등의 절차를 모두 마친 후에 최종적으로 외국인청에 체류허가증을 신청하게 되는데, 이를 위한 신청 날짜도 미리 예약을 해두는 편이 좋습니다.
(4) 집 구하기: 주거의 경우 학교에서 제공해주는 기숙사를 이용하면 친구를 사귈 기회가 많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기숙사의 경우 학교에서 오는 안내 메일에 유의하면서 신청하면 됩니다. 한 가지 숙지할 점은, 베를린의 대학들은 캠퍼스가 시내에 흩어져 있고 기숙사도 여러 곳이라, 기숙사와 자신이 다닐 캠퍼스 간 거리가 가깝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 밖에 개별적으로 숙소를 구하는 방법으로는 베를린리포트 사이트, 페이스북 페이지, wg-gesucht.de, www.immobilienscout24.de 등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5) 은행 계좌 개설: 은행 계좌는 현지에 도착해서 개설해도 되지만, 인터넷 은행인 N26의 경우 독일에서 살게 될 주소만 미리 안다면 한국에서 개설해 갈 수도 있습니다. 모든 개설 절차는 인터넷 사이트와 핸드폰 어플, 화상 전화 인증으로 이루어집니다.
IV. 학업 및 현지 생활 안내
학교 수업은 크게 Vorlesung과 Seminar 두 종류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Vorlesung은 대형 강의와 유사한 형태로, 강의 시간 내내 강의자 혼자 발표하는 방식입니다. 반면에 Seminar는 토론식 수업으로 학생들이 활발하게 참여하는 수업입니다. 한국 학생들에게는 Vorlesung이 익숙한 수업 방식일 것이고 예습도 전제로 하지 않아 편하게 수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어로 수업을 듣는 경우 90분 동안 집중해서 청취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Seminar는 독일의 토론 문화를 체험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생생한 현장감이 있어 수업에 집중하기가 쉬운 편입니다. 하지만 수업 전 읽기 과제를 하지 않을 시 논의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수업들이 전체적으로 읽기 과제 양이 많은 편이기 때문에 모교에서보다는 수업 개수를 적게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독문학의 경우 두 개에서 세 개 정도가 적정한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와 달리 독일에서는 강의자마다 학생들과 면담할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미리 신청을 하고 자료를 보내야 해서 면담의 문턱이 높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시간이 따로 할애되어 있는 만큼 보통은 친절하게 면담을 해주시니 수업 관련 질문이나 어려운 점이 있다면 적극 활용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는 것 같습니다.
현지 생활과 관련하여서는 주 독일 대한민국 대사관의 홈페이지에 특히 코로나 관련 입국 및 출국 규정, 비행편 현황, 주별 방역 규정이 업데이트되어 있어 참고하기 좋습니다. 그밖에 베를린에서의 생활은 대도시라 그런지 서울에서와 대체로 비슷합니다. 늦은 시간에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삼가야 하지만 그밖에는 치안 또한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III.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세계적인 코로나의 유행으로 인해 학교 생활에 여러모로 제약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대면 수업이나 행사가 전적으로 취소됨에 따라 외국인 친구를 사귈 기회라 없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럼에도 저뿐만 아니라 강의자와 다른 학생들도 화상 수업이라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고, 학업에 있어서 만큼은 대면 수업을 하던 때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야기하는 각종 문제와,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 사회적 분열에 대해 독일의 정치 시스템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독일의 민주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관찰할 수 있었던 것도 이번 기간 동안 얻은 귀중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시기지만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어 보람있고 유익한 한 해를 보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