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교환 프로그램 참가 동기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연호, 2014)라는 책을 읽고 나서부터 덴마크라는 나라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복지, 교육 측면에서 배울 점이 많아 보이는 나라에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궁금했고, 직접 그곳에서 살아보며 느끼고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대학 생활의 절반을 마쳤을 무렵에 느꼈던 전환점이 될 만한 무언가에 대한 갈증은 교환을 가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어졌고, 망설임 없이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교를 선택했습니다.
II. 세부 경험 내용
학업
저는 사회학 수업 세 개(Understanding Crime and Criminal Justice / Protest Movements, Culture, and Social Change / Danish Society ? A Sociological Perspective)와 교환학생 전용 수업 하나(Danish Culture Course)를 들었습니다. 2월부터 학기가 시작되어 대면 강의가 진행되다가 3월 셋째 주쯤부터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주로 PPT에 교수님이 목소리를 녹음해서 올려주시거나 Zoom을 통한 화상 강의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전공인 사회학 수업 위주로 서술하자면, 수업 방식은 교수님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당일 수업 주제와 연관된 텍스트가 기반이 됩니다. 교수님께서 텍스트에 대해 일방적으로 설명하시기보다는 그에서 다루는 이론이나 문제의식 등에 관한 학생들의 토론을 장려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토론 과정에서 나오는 학생들의 의견을 교수님께서 수업의 전개에도 적극 반영하시므로 한 학기 동안의 강의를 교수와 학생들이 같이 만들어간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적은 시험 한 번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덴마크의 시험 방식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가 수강한 수업의 시험은 모두 10p 정도 분량의 에세이를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교수님이 미리 정하신 주제에 따라 혹은 수업에서 다루었던 제재 안에서 자유롭게 주제를 선정해서 글을 쓰는 것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한 학기 동안 다룬 텍스트들을 에세이에 적절히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만의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는 것보다 수업에서 다루었던 텍스트를 논리 전개 과정에서 활용하는 것을 중시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에세이 한 번으로 성적을 낸다는 것에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그간 읽었던 텍스트를 어떻게 에세이에 녹여낼지 생각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방식이 충분히 적절한 평가 방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의 자체가 텍스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업을 통해 학생이 무엇을 배웠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방식이지 않나 싶습니다. 한 학기 동안 읽었던 텍스트의 골자를 다시 한번 정리해보고 그것들을 논리적으로 글을 전개하는 데 활용해 보는 것이 배움에 있어서 단순히 내용을 암기하는 것보다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수업의 내용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형식적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생활
(1) 주거
코펜하겐 대학교는 자체 기숙사가 없습니다. Housing Foundation이라는 업체를 통해 기숙사를 신청하도록 되어 있고 본인의 지출 가능 범위, 수업을 듣는 단과대까지의 거리 등을 고려하여 적절한 기숙사를 선택해야 합니다. 기숙사 신청이 선착순으로 이루어지지만 신청 시작 시간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준비 과정에서 가장 걱정을 많이 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기숙사 신청 링크가 오고 약 한 시간 정도가 지나서 접속했지만 기존에 원했던 기숙사가 남아 있었고 다행히 신청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Signalhuset이라는 기숙사에서 생활했습니다. 한 플랫에서 4명이 생활하며 방 4개, 화장실 2개와 거실, 부엌이 있고 방 신청에 있어서 성별의 제약이 없습니다. 월세는 약 4000dkk(약 70-80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른 기숙사들에 비해 월세도 비교적 저렴하고 한국 친구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근처에 메트로역, 기차역이 모두 있어 교통도 편합니다. 건너편에는 Fields라는 대형 쇼핑몰이 있고, Netto, Rema1000과 같은 소형 마트도 근처에 두루 있어서 생활하기 좋았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3월 중순쯤부터 4월까지는 기숙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플랫메이트들도 있고 같은 기숙사에 있던 친구들 플랫에 자주 놀러갈 수 있어서 덜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2) 교통
코펜하겐의 경우 교통이 잘 되어있는 편입니다. 버스, 메트로, S-tog, 기차 등을 편의에 따라 이용하면 되지만 교통비가 한국의 2배 이상입니다. 저는 초기에 자전거를 못 타서 학교를 오갈 때 메트로를 이용했는데, 2월 한 달간은 통근권을 이용함으로써 교통비를 그나마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덴마크는 “자전거의 나라”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이용합니다. 그만큼 자전거가 하나의 교통수단이며, 자전거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고 코펜하겐 곳곳에서 쉽게 자전거를 장기간 빌릴 수 있습니다. 저는 코로나로 인한 Lock-down 기간에 기숙사 근처 공원에서 자전거 타는 것을 배운 이후로 코펜하겐 내에서 이동할 때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가지 못했을 곳에 가서 예쁜 풍경도 많이 보고 답답할 때 스트레스도 풀고, 자전거를 탔던 시간들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3) 식생활
코펜하겐의 물가는 한국의 2-3배 정도이며 특히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외식을 자주 하지 못합니다. 그나마 식재료비는 한국의 그것과도 비슷하기 때문에 주로 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해 먹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4)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 하에서의 생활
덴마크 내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3월 중순쯤부터 Lock-down 조치가 시행되었습니다. 수업도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정부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고함에 따라 5월 중순까지는 덴마크 내의 관광지도 가보지 못하고 실내에서 생활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베이킹, 근처 공원에서 자전거 타기라는 새로운 취미도 생기고 친구들과도 더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공부도 더 열심히 해볼 수 있었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식재료 사재기나 인종차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이방인으로서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덴마크는 5월 말쯤부터 Lock-down 조치를 단계적으로 완화했고 종강 이후부터 덴마크를 많이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은 거의 하지 못했지만 한 나라에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은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덴마크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애정도 많이 생기고, 덴마크의 문화를 보다 깊이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유가 더 많아지다 보니 친구와 교육이라는 제재를 바탕으로 덴마크의 중등교육 체계를 조사하고 덴마크 친구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볼 수 있었는데, 그를 통해 덴마크 친구들의 이야기를 깊이 들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뜻밖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던, 불완전했기에 더 소중하고 단단해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III.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보고서를 쓰다 보니 교환 학기가 끝났다는 게 비로소 실감이 납니다. 한 학기 동안 오래도록 보고 싶은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고, 저를 더 많이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 역시 조금은 더 넓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몇 문장만으로 흩어져있는 기억들을 모아 정리하고 매듭짓기가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 행복했고, 여러모로 저에게 전환점이 돼 준 수개월이었습니다. 그간의 시간이 두고두고 꺼내 보고 싶은 추억이자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든든한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