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교환 프로그램 참가 동기
어렸을 때부터 해외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그 문화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틈 날 때마다 여행도 자주 다녔지만, 한 나라에서 수개월 이상 현지인처럼 거주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교환학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주변 친구들과 가족들 모두 하나같이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추천을 해주어, 교환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파견 국가를 정한 첫번째 기준은 언어였습니다. 할 줄 아는 제2외국어도 없었고, 영어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하더라도 영어가 공식 언어이거나 적어도 자유롭게 통용되는 나라에 가고 싶었습니다. 실생활과 밀접한 표현들을 배우고 사용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후보는 영국, 북유럽, 미주, 호주 등으로 좁혀졌습니다. 두번째로 파견 기간 동안 주변국에도 여행을 자주 갈 것이라는 걸 고려했을 때, 많은 나라들이 모여 있고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유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건축학도로서, 졸업 전 유럽여행을 꼭 하고 싶었고,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이 외에도 도시의 규모, 파견교의 장단점 등을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영국의 맨체스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II. 세부 경험 내용
기숙사와 캠퍼스
기숙사는 oxford road를 따라 늘어서 있고, 캠퍼스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City, Victoria park, Fallowfield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캠퍼스에서 먼 기숙사일수록 교환학생보다 영국인 학생 수가 많고, 사교적인 느낌이 강해집니다. 입학 전 원하는 기숙사를 5개 신청하게 되는데, 꼭 신청했던 기숙사가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저 또한 Victoria Park 내의 기숙사를 신청했으나, Fallowfield 내의 Oak house를 배정받았고, flatmate 들은 저 외에 전부 영국인이었습니다. 처음엔 저의 영어가 부족해 영국인 친구들과 친해지기가 힘들었고, 밤마다 창문너머로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싫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덕분에 영국식 영어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었고 영국 대학생들의 문화도 가까이서 접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학생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헬스장 armitage center가 기숙사와 가깝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기숙사의 방은 전부 1인용이지만, 개인 화장실과 식사제공 여부로 4종류로 나누어집니다. 저는 식사가 제공되지 않는 8인용 flat에 들어가 부엌을 함께 사용했고, 화장실은 남녀 2개가 있어 4명이서 공용으로 사용했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고 오히려 자주 마주쳐서 빨리 친해지게 되어 좋았습니다.
맨체스터 대학교 캠퍼스는 맨체스터 시내와 주변부 주택가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규모가 서울대학교에 비해 작고 건물들이 모여 있어, 캠퍼스 내에서는 도보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City와 Victoria Park 지역 기숙사와 캠퍼스까지의 거리 또한 그렇게 멀지 않아 도보로 이동할 수 있으나, 기숙사가 Fallowfield 라면 버스나 자전거를 이용해야 합니다. 학기 초에 stagecoach 사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간제 버스 티켓을 저렴하게 판매하는데, 맨체스터 시내를 갈 때에나 맨체스터 지역 외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니 구매를 추천합니다.
학교 생활
개강 후 첫 한 주 동안은 신입생들의 적응을 위해 수업이 없고, 대신 OT와 다양한 사교 모임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몇 군데를 나간 덕분에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교환학생 기간이 끝날 때까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한 첫 주에 학교가 끝난 후 기숙사에 돌아오면 flatmate 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주변의 다른 flat 술자리에 놀러가곤 합니다. 다들 서로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맥주 한 캔씩 들고 한명씩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주도적으로 친구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사뭇 이색적이었습니다.
국내에서의 전공을 따라 건축학과 수업을 듣고 싶었으나, 처음 교환학생을 지원할 시 건축학과가 없거나 있더라도 교환학생을 받지 않는 협정교가 많았습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들로 저에게 맞는 건축학과는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 학기 동안 다른 분야의 수업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전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채 맨체스터 대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수업은 50~60 credits를 신청해야 했고, 저의 경우 Advanced English Language In Use (10 credits), Art spaces (20 credits), Introduction to Planning and Development (20 credits)를 수강하였습니다. 기준표에 따르면 맨체스터 대학교의 20credits 가 서울대학교의 5학점 정도로 나와 있었지만, 학점 수 대비 절대적인 강의 시간 자체는 서울대학교 강의들에 비해 훨씬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개인적으로 읽어야하는 책이나 자료들이 훨씬 더 많았고, 학기 중간에는 학생들의 밀린 독서를 위해 수업을 하지 않는 reading week도 있었습니다. 또한, 20 credits 짜리 두 과목의 시험 모두 6문제 중에서 원하는 2문제를 골라 서술하는 유형이었습니다.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영국에서의 교육 제도는 학생들의 재량과 노력에 많은 부분을 맡기고, 학생들이 관심있는 부분을 더 심도있게 파고들기 좋은 제도라고 느꼈습니다. 수업의 경우 학기 초에는 교수님들의 강한 영국식 억양으로 인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다행히도 강의를 다시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가 제공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져 갔습니다.
맨체스터 생활
통신사 giffgaff의 유심칩을 사용했는데, 무제한 데이터가 25파운드로 우리나라에 비해 저렴한 편이고 앱을 통해 손쉽게 관리가 가능합니다. 또한 거의 모든 유럽국가에서 로밍이 가능하여 여행 시 편리했습니다. 한편, 남녀 구분 없이 대부분 미용실을 가는 한국과 달리 영국은 남자들이 주로 가는 barbershop 과 여자들이 주로 가는 hair salon 이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영국 barbershop 의 경우 대개 10파운드 초반으로 한국보다 더 저렴했습니다. 빨래는 기숙사 내에 laundromat이 있었고 앱 또는 카드로 결제하는 방식으로, 빨래 2.5파운드, 건조 1파운드였습니다.
식사가 제공되지 않는 기숙사였기 때문에, 직접 요리를 하거나 외식을 해야 했습니다. 식재료 및 대부분의 물품은 기숙사 근처에 큰 규모의 Sainsbury‘s가 있어 애용했고, 가끔씩 한식이 먹고 싶을 땐 Oseyo 라는 한인마트를 이용했습니다. 물가가 비싸다고 하는 영국이라 걱정했었는데 외식을 할 경우 10~15 파운드였지만, 마트에서는 한국에서와 가격이 비슷하거나 더 싼 식품들도 많았습니다. 그로 인해 파견을 가기 전까지는 요리를 거의 못했는데, 지금은 요리 실력이 늘었습니다. 외식은 기숙사 근처의 아시안 레스토랑에 자주 갔고, 캠퍼스 내에서는 University Place 건물 내에 학생들이 많이 가는 푸드코트가 있습니다. 캠퍼스에서 조금 더 가면 나오는 eatgoody 에서는 저렴하게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고, 특히 한국으로 택배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맨체스터는 산업혁명의 발원지로 유럽을 상상했을 때 떠오르는 옛스러운 건물들보다는 의외로 현대건물이나 벽돌건물이 많았습니다. 처음 맨체스터에 왔을 때에는 중심부에 집중된 시내와 고리형 도로, 주변부의 저층 주택가로 이어지는 도시 구조가 다소 단순하게 느껴졌고, 반대로 서울의 거대한 규모를 실감했습니다. 시내에 가면 Arndale center, Debenhams, Selfridges, M&S 등이 쭉 이어져 있어 쇼핑을 하기에 매우 편한 구조입니다. Primark의 옷들은 퀄리티가 떨어지지만 매우 저렴하여, 파견기간 동안만 입고 버리는 학생들도 많다고 합니다. 축구에 관심이 있다면, Football museum이나 Old Trafford (Manchester United 경기장), Etihad Stadium (Manchester City 경기장) 등을 구경하는 것도 좋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Royal Exchange에서 봤던 연극이었습니다. 클래식한 건물 내부에 철제 극장이 자리 잡아 있고, 객석이 무대를 360도 둘러싸고 있어 배우들과 더 친밀하게 느껴졌습니다. Salford Quays는 비교적 최근에 재개발된 지역으로서, 전쟁박물관, The Lowry, media city UK, Old Trafford 등이 있습니다. The Lowry에서는 다양한 공연예술을 선보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문화인 스탠드업 코미디를 관람한 경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행
여행 또한 교환 프로그램의 큰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파견 기간이 1년이 아닌 한 학기였기 때문에 Short Term Study Visa 6개월짜리를 받아야 했고, 이는 영국 밖으로 나가면 자동으로 소멸됩니다. 따라서 다시 영국에 들어올 때마다 필요한 서류를 챙겨 새롭게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습니다. 특별히 까다로운 과정은 아니지만, 마음 편히 학기 중에는 영국 내 도시들을, 교환기간 전후와 학기 사이에 끼어있는 겨울방학에는 다른 유럽 국가들을 여행하기로 계획했습니다. 영국에서는 Railcard를 구매하면 기차표 구매 시 할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Manchester Piccadily 역에서 London Euston 역까지는 기차로 2시간 밖에 걸리지 않아, 학기 중에 꽤 여러 번 런던에 방문했습니다. 이 외에도 맨체스터는 영국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영국 어느 도시로든 여행을 가기 쉬운 편입니다. 유럽 대륙 내에서 여행할 때에는 수하물 추가요금, 공항에서 시내까지 이동하는 시간 등을 고려했을 때 비행기보다 기차가 더 유리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III.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그동안 책과 문제집에서만 사용해왔던 영어를 직접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에 쓴다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영어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마다 정말 답답했지만, 그걸 기억해 뒀다가 그에 맞는 영어표현들을 나중에 찾아보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표현력이 늘어 자신감도 생겼고, 친구가 저에게 전보다 영어실력이 늘었다고 말해주었을 때 참 기뻤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큰 동기부여가 되었고,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이전에는 외국, 특히 유럽은 모든 것이 좋고 삶도 행복하기만 할 거라는 막연한 환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6개월을 살면서 어디에나 장단점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고 더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의 전반적인 기반시설 자체는 한국이 더 깨끗하고 편리하다고 느꼈습니다. 치안의 경우에도 단적인 예로 제가 교환학생에 가 있을 때 맨체스터 대형 쇼핑몰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고, Piccadily Gardens는 시내 중심부인데도 항상 다소 위험해 보이는 노숙자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반대로 유럽에서 살면서 좋았던 점은 그곳의 사람들이었고 이들 덕분에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유의미한 변화도 생겼습니다. 교환학생에 가기 전에는, 어떤 정답이 존재한다고 무의식으로 생각했고, 그것에서 멀어질까봐 불안감을 자주 느꼈습니다. 그러나 영국 및 여러 나라에서 만난 사람들은 너무나 다양했고, 어떤 것도 오답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조금 더 여유로운 자세로, 타인의 시선과 기준보다는 저의 마음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남들을 대할 때에도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조건들로만 그들을 지레 짐작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도 깨달았습니다. 유럽에서 사는 6개월 중에는 즐거운 날도 있고 우울한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배움이 있었고 대개 행복했으며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