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교환 프로그램 참가 동기
그동안 길어봐야 일주일 남짓 해외여행을 다녀본 것 말고는 해외생활 경험이 없었습니다. 다른 문화권에 살면서 견문을 넓히고 영어 실력을 기르고자 교환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수업 방식을 경험해보고, (제가 작년 지원 당시 영화 프로덕션에 관심이 많았어서) 서울대에서 잘 개설되지 않는 영화나 연극 프로덕션 관련 수업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II. 파견대학 및 지역 소개
저는 캘리포니아 북부(미국 전체 기준 서쪽 끝, 세로로는 중간 위치)에 있는 버클리에 위치한 UC Berkeley로 다녀왔습니다. 버클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30분쯤 걸리는 위치에 있고, 가까운 공항으로는 SFO(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과 OAK(오클랜드 국제공항)이 있습니다. 그쪽 해안지역은 통틀어 ‘Bay area’라고 불리는데, LA처럼 겨울에도 따뜻한 날씨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1~2월에는 확실히 한국보다 훨씬 따뜻한데 5월에도 서늘합니다. 저는 1월과 5월 패션이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얇은 자켓 한 장 차이 정도?). 그리고 일교차가 상당해서 낮에만 엄청 덥습니다.
버클리는 ‘시’인데 우리나라 시랑 비교하기에는 정말 볼 게 없습니다. 다운타운도 규모가 작고 8시 이후에는 상당히 깜깜하고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국 대부분 지역이 그렇듯이 치안이 안 좋고, 흔히들 다른 지역보다 더 나쁘다고 이야기합니다. 여학생들은 교환학생이든 현지인이든 거의 다 후추스프레이를 들고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툭하면 학교 경찰서(UCPD)에서 근처 어쩌구 street에서 강도, 폭행사건 일어났으니까 주의하라는 메일이 옵니다... 밖에 다닐 때는 혼자 안 다니시는 게 좋습니다.
III. 출국 전 준비 사항
본격적으로 서술하기에 앞서 버클리 교환학생 관련 정보를 얻기 좋은 블로그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UC 버클리 교환학생”이라고 네이버에 검색하면 <찰나의 이야기>라는 블로그가 뜨는데, 제가 버클리에서 만난 연대 교환학생 친구 블로그입니다. 캠퍼스 신청부터 비자, 수강신청, 기숙사, 파티, 신용카드 등등 정말 필요한 정보들이 일목요연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블로그에 없는, 저만 적을 수 있는 정보들만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출국 전 준비사항’은 앞서 말씀드린 블로그에 자세히 적혀있어서, 저는 그냥 개조식으로만 적겠습니다.
항공권 구매 (저는 출국 6주쯤 전에 샀는데 당시 유가가 쌌어서 경유로 왕복 98만원에 샀습니다.)
하우징 알아보기
수강신청
보험(학교보험보다 ISO보험이 훨씬 저렴. 학교보험은 자동 가입되니 Waiver신청 넣고 ISO로 바꾸시기를 추천)
해외에서 쓸 카드들
각종 예방주사, 코로나 음성확인서
참고로 저는 기숙사 아닌 외부 아파트를 에어비앤비 통해 임대해서 다른 한국인 교환학생들이랑 살았는데, 에어비앤비가 정말 말도 안 되게 수수료를 많이 받습니다. 에어비앤비 통해서 구하시는 건 정말정말 비추합니다.
IV. 학업 및 현지 생활 안내
1) 학업
UC 버클리는 미국 내에서 학구열이 높기로 유명하고, 특히 제가 속해있었던 경영대학(Haas)은 굉장히 경쟁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버클리에서 공부를 거의 안 했고 영어 작문이 느린 편이라, 버클리 학생들이 서울대 학우분들보다 똑똑한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캠퍼스 내 도서관이 10군데가 넘는데 다 예쁘게 생겨서 한번쯤 도서관에서 공부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다만 개방시간과 요일이 제각각이라 홈페이지로 확인하고 가셔야 합니다.
<들은 수업>
저는 4개의 정규 수업과 4개의 Decal을 들었습니다. Decal은 학부생이 직접 강의계획서를 짜고 가르치는 수업입니다. 그만큼 내용이 얕고 학문적으로 얻어갈 것은 없는데 저는 친구 사귀고 싶어서 4개나 신청했습니다. 8개 수업이 총 19~20학점 정도 되었는데, 공강일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에 있는 건 교환학생으로서 할 게 못 되는 것 같아서 Decal 중 2개를 fail받았습니다. 참고로 버클리 현지 학생들은 대개 14학점 정도 듣는다고 합니다.
저는 경제 주전공생(경영 복전)이지만 버클리가 경영이 더 유명하길래 버클리에서 경영 전공을 하겠다고 신청했습니다. 3개의 경영 전선을 들었는데, 수업을 고른 기준은 그냥 경영전공 강의목록에서 교수님들 성함을 복붙해서 ratemyprofessors.com에 검색하고 평점 높은 분들 것을 담았습니다. 어이없는 기준이긴 한데 저는 3개 다 정말 만족하면서 들어서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a) Spanish 1(Perez 선생님/박사과정생)
월화수목금 8~9AM 수업. 캘리포니아에 스페인어 사용자가 많고 언젠가 남미 여행 가면 필요할 것 같아서 신청했습니다. 5학점이고 A+ 목적으로 다 하려면 로드 많게 느껴질텐데, 저는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서 많이 빠지고 숙제도 몇개 빼먹었는데 B+ 받았습니다. 선생님 친절하신데 스페인어로 수업하셔서 복습을 잘 안 하면 수업 자체를 알아듣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 수업에서 기초 배운 게 5월에 멕시코 여행 갔을 때 꽤 도움 됐습니다. 이 분은 박사과정생인 선생님이셔서 수강신청할 때 교수명은 지도교수님 성함이었습니다.
b) UGBA 191P, Leadership and Personal Development(Cort Worthington교수님)
그토록 물가 비싸고 치안 안 좋은 버클리를 골라야 할 이유가 하나 있다면 바로 Cort 교수님입니다. 이분 관련해서는 워드 2페이지를 써도 모자라서 짧게만 쓰겠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부터 14년동안 들었던 수업 중에 최고의 수업이었고, 교수님은 제가 롤모델로 삼았을 정도로 멋지십니다. 화요일에는 마틴루터킹, 오프라 윈프리 등 유명 리더들의 case를 미리 읽어와야 하고, 교수님께서 주요 포인트들을 짚으시며 수업하시면서 옆자리 사람과 짧은 토론을 시키십니다. 목요일에는 수업 직전까지 Journal template에서 요구하는 짧은 글(매주 주제 달라짐)을 써 가고, 수업 중에는 Lab 그룹(학기 내내 고정)끼리 모여 앉아서 자기 글 내용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코멘트를 해 줍니다. 회계 재무 쪽 수업도 아니고 명시적 지식보다는 암묵적 지식 위주의 수업이다 보니 사실 커리어에 가시적인 도움이 되는 수업은 아니지만, 인생관과 행복, 자존감 측면에서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되는 수업입니다. 저는 이 수업을 통해 성격과 삶에 대한 자세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 미천한 필력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훌륭한 수업이고 이 수업 하나만으로도 버클리를 추천할 이유가 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수업은 매 학기 열리지 않을 수도 있는데, Cort 교수님께서는 매 학기 강의를 여십니다. 그분의 다른 수업은 들어보지 않았지만 비슷한 주제를 다룬다고 들었고, 정말 존경스러운 어른이시기 때문에 다른 수업이라도 꼭 들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수업을 듣게 된다면 반드시 단 한 번이라도 교수님과 1:1 면담을 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c) UGBA 192T, Responsible Business(Strand 교수님)
미국과 북유럽의 자본주의를 비교하고 북유럽 기업의 경영 사례를 배우는 수업입니다. 이 수업은 1학점인 대신 3월에 끝나는 수업이라 로드가 상당합니다. 저는 리딩을 꼼꼼히 안 해갈 때가 있었는데, 이 수업은 리딩을 다 해 왔다는 전제 하에 2시간 내내 같은 조 친구들과 의견을 나눠야 하는 수업입니다. 개인적으로 리딩이 귀찮다고 생각하면서도 수업주제도 꽤 특이하고 수업방식도 서울대 전공수업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수업이라 좋았습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북유럽계 장신이신데 풍채도 배우 같고 말씀도 위트있게 잘하십니다.
d) UGBA 152, Negotiation and Conflict Resolution(Dayonot 교수님)
협상을 준비할 때 고려해야 할 것들과 협상 중에 신경써야 할 것들을 가르치시고 수업 후반에는 학생들끼리 실습을 해보는 수업입니다. 이 실습시간이 영어회화 잘 못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고통스럽습니다. 교수님과 달리 학생들은 말이 빠르거든요. 그래도 굉장히 실용적인 수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화가 약하신 분들은 협상/비즈니스 상황에 사용되는 영어구문을 미리 익혀두시고 수강하기를 추천드립니다. 교수님도 정말 귀여우시고 친절하십니다. 저녁 6-9시였는데 마지막 수업 때는 파파존스 피자도 시켜주셨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이 박찬호 스타일이셔서 수업 끝나고 질문 한 번 하면 집에 가기 어렵습니다.
e) Decal 2개 (fail받은 것들 제외)
Decal은 학부생들(보통 수업당 2~5명)이 가르치는 수업이기 때문에 거의 다 저녁시간대입니다. 저는 원래 4개를 신청해서 월화수목 밤까지 학교에 있어야 했고, 그중 2개를 잘 안 나가서 fail을 받았습니다.
제가 들은 수업은 The nature of Pixar film과 Visual Narrative Storytelling(VNST)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은 모두 좋으셨지만 내용은 아무래도 엄청 얕습니다. 저는 영화 쪽에 관심이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들었는데, pixar 수업은 타이틀을 보고 픽사 영화의 속성 내지는 특징을 분석하는 수업일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말그대로 픽사 영화에 숨어있는 ‘자연’에 대해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수업명을 잘못 해석해서.. 조금 후회했습니다. 고등학교 생윤 시간에 배우는 생태계 관련 윤리 내용 짤막하게 가르치시고 픽사 00영화 xx장면에서 이 부분에 대해 토론해보자 하는 수업이었습니다.
VNST는 얕긴 하지만 고등학교나 대학 수업에서 못 배운 것들이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영화/드라마/웹툰/게임 등 시각적 스토리텔링 장르들의 특성과 구성요소에 대해서 배우는 수업이었습니다.
2) 생활
교통- 제가 다녀본 미국 지역 중 뉴욕 맨해튼을 제외하면 교통이 정말 할많하않입니다. Bay area에는 BART(바트)라는 이름의 전철이 다니고 버스 노선도 몇 개 있습니다. 그런데 배차간격이 15분, 20분 이런 수준이고 그마저도 잘 안 지키고, 바트는 툭하면 운행취소되어서 3~40분 기다려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애들은 Uber를 많이 이용하는데 아주 비쌉니다. 10분도 안 되는 거리가 10달러 정도고 심야에는 훨씬 더 붙습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물가, 임금 수준이 다르다 보니 거기 현지 애들은 별로 비싸다고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Tip] 미국 내에서 여행을 자주 다니고 싶은 분들은 버클리보다는 UCLA를 추천합니다. 버클리에서는 SFO와 OAK 공항 가는 거리보다 UCLA에서 LAX 공항 가는 거리가 훨씬 가깝습니다. 그리고 OAK는 규모가 작은 공항이고, LAX가 SFO보다 크고 항공편도 많아서 다른 주로 가는 항공편 가격이 전반적으로 저렴합니다.
물가- 뉴욕과 버클리가 미국에서 제일 물가 비싼 곳으로 유명합니다. 갤런당 기름값이 애리조나 등 다른 주보다 2달러 이상 더 비쌉니다...택시비나 지하철비를 등도 LA보다 버클리가 비쌌습니다.
음식- 기숙사 살면 Meal plan값이 방값에 포함되어서 그냥 학교식당에서 먹으면 되고, 기숙사 안 살면 사 먹거나 집에서 해 먹어야 합니다. 거긴 외식 한 번 하려면 인당 2만원부터 시작이기도 하고 그렇게 맛있는 집도 없습니다. 저는 한국인 룸메들이랑 살았고 다들 요리를 괜찮게 했기 때문에 한식을 많이 만들어 먹었습니다. UC 버클리는 학기 중에 “Food Pantry”라는 이름으로 매주 정해진 시간에 식재료(쌀, 계란, 야채, 기름 등등)를 무료로 나누어주어서, 이걸 매주 받아오시면 식비를 많이 아낄 수 있습니다.
중고품!- 미국은 정말 물가가 비싸고 다이소도 별로 없어서 초반에 생활용품 사는 비용이 많이 깨졌습니다. 드라이기, 도마, 팬 등을 사야 한다면 University Avenue에 있는 Goodwill, Out of closet 등 중고품 가게를 적극 이용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저는 가자마자 마트에서 25달러정도 주고 드라이기를 샀는데, 룸메는 중고품 6달러짜리를 사 와서 잘 썼습니다.
3) 언어 관련
저는 영어 회화에 정말 자신이 없었고(토플 스피킹 19점) 미국 가서도 생각했던 것보다 영어회화 실력이 그렇게 빨리 오르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20살 언저리 친구들 특성상 은어를 많이 사용하고 말이 빠른 친구들이 많아서, 처음 갔을 때는 1:1 대화에선 50%정도, 단체로 섞여서 말할 때는 20% 남짓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들은 수업 중에 발표나 대화를 많이 요하는 수업이 많았는데 기존에 영어회화 실력이 어느 정도 좋았더라면 더욱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꼭 미국 교환학생 가시기 전에 회화 실력을 올리고 가시기를 권해드립니다.
III.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개인적으로는 비자 발급부터 OT비용 등등 돈을 너무 뜯어간다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후회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다시 작년으로 돌아가도 돈을 들여 다녀오고 싶을 만큼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똑같은 교환생활을 해도 얼마나 달라지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텐데, 저는 ‘미국에 오기 전과 돌아갈 때 나 자신이 같은 사람이라면 시간과 돈이 아까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다양한 것을 시도해보고 견문을 넓히려고 노력한 결과 인생의 큰 터닝포인트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교환 프로그램 관련하여 지원해주신 국제협력본부 담당자님들께 감사드리며, 프로그램이 더욱 활성화되어서 더 많은 학우분들이 교환생활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버클리 교환학생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서는 <찰나의 이야기> 블로그와 본 보고서를 먼저 정독하시고, 정독 후에도 여전히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인스타그램 @me_chury_r_로 물어봐주시면 아는 선에서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