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교환 파견 동기
살면서 외국에서, 학생의 신분으로 마음 편하게 현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환학생을 가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여행을 가더라도 긴 호흡으로 넉넉하게 둘러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골목을 걷고, 평상이 있으면 누워서 한숨 자고, 원하는 술집이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 여유로움이 여행을 가장 즐겁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만약 교환학생을 간다면, 긴 여행보다도 훨씬 긴 시간을 두고 제가 머무는 도시에서의 삶을 즐길 수 있겠다는 점이 큰 매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입학할 때부터, 3학년 1학기 교환학생 파견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팬데믹으로 두 번이나 지원을 미뤄야 했습니다. 학번은 높아지고, 나이는 먹고, 취준은 가까워지면서 불안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한 번뿐인 대학 생활에서 교환학생을 포기하면서까지 급하게 얻어야 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더 미루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팬데믹이 한참이던 22년 1학기 캐나다 교환학생에 대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까지도 이때의 결심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II. 파견대학 및 지역 소개
1. 파견대학/지역 선정 이유
제가 지원한 대학교는, 캐나다 알버타주의 University of Calgary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는 거의 파견가지 않았던 학교이고, 실제로 OIA 귀국보고서를 뒤져도, 이전 합격자 명단을 살펴보아도 기록이 없습니다. 아는 사람도 정보도 없는 캘거리를 가게 된 이유에는 다양한 고민들이 얽혀 있었습니다.
어디로 교환학생을 가야 하는지 결정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환 생활에서 무엇을 얻고 싶은가’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여러 나라로의 여행을, 누군가는 전공 수업에 대한 심화 학습을, 누군가는 언어 공부를 하고 싶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미 동, 서유럽과 아시아 여행을 여러 차례 다녀왔기 때문에 교환지에서의 잦은 여행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신 교환학생이 끝나고 굵직한 나라 한 두 개를 두 달 가량 여행하고 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또 미국에서 거주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같은 나라를 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교환 생활에서 학교 공부는 가장 후순위였기 때문에, 학교에서 제공하는 수업의 질이나 전공 심화 학습이 가능한지에 대한 여부 또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제 교환학생 생활의 목표는 ‘영어 공부’, 그리고 ‘여유’였습니다. 듣기와 읽기 실력에 치우쳐있던 영어 실력을 쓰기와 말하기로 확대하고 싶었고, 한국에서 충분히 즐기지 못했던 쉼과 자기 개발을 여유롭게 행하고 싶었습니다. 교환 생활에 대한 목표를 정하니, 지원할 수 있는 국가의 목록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1순위는 캐나다였고, 2순위는 호주와 뉴질랜드였습니다. 다만 호주와 뉴질랜드는 주위에 여행할 수 있는 국가가 딱히 없었고, 캐나다에는 중남미라는 어마어마한 선택지가 있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캐나다로 목적지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것은, 러시아의 모스크바 or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와 캐나다였습니다. 왜 갑자기 러시아냐,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노어노문학도로서 러시아어를 깊이 습득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놓기 어려웠습니다. 계속 고민하던 와중에, 제주도에서 갑작스럽게 인턴 기회를 얻게 되면서 계획했던 날짜에 아이엘츠를 볼 수 없게 되었고 일정이 밀리며 추가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캐나다에 남아 있던 몇 개의 대학교,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에는 캘거리 대학교를 1순위로 하여 지원하였습니다. 러시아와 캐나다를 놓고 봤을 때, 캐나다를 가고 싶은 마음이 컸고 또 러시아어보다 영어를 배우는 것이 제 진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밴쿠버를 비롯한 다른 지역보다 캘거리를 선택한 이유는 날씨였습니다. 저는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기 때문에, 흐린 날이 많은 밴쿠버보다는 진득하게 눈이 오는 캘거리가 더 끌렸습니다. 다른 주보다 택스가 낮고, 시급은 가장 높은 알버타주의 여건도 좋아보였고, 대학교의 홈페이지 안내와 시설도 깔끔하고 깨끗해보였습니다. 캐나다를, 캘거리를 선택한 이유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었지만, 사실 되돌아보면 ‘그냥 여기에 꽂혀서’가 맞는 설명인 것 같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많이 가지 않는, 그런데 재미있을 것 같은 캘거리의 매력에 빠져 덥썩 지원하게 되었고 합격했습니다.
2. 파견대학/지역 특징
캘거리는 작고, 여유롭고, 아름답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대전 정도 되는 도시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놀거리는 별로 없어 보여도 구석구석 살피면 재미있는 장소들이 많았습니다. 또 로키산맥 옆의 청명한 공기,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작은 마을 밴프, 건물이 높지 않아 광활하게 보이는 하늘과 학교에서 15분 거리인 스키장은 저에게 최고의 겨울을 선물해주었습니다.
캘거리 대학교의 크기는 조금 작지만(서울대의 1/4보다 작음), 시설이 굉장히 깨끗합니다. 특히 체육관이 정말 큰데요, 다양한 스포츠 프로그램이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고, 올림픽이 열렸던 스케이트장도 교내에 있습니다. 하키 게임이 열리기도 하고, 강습을 받기도 합니다. 체육센터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각종 기구들이 많습니다. 실내 트랙도 있습니다. 스포츠를 좋아하신다면, 겨울이든 여름이든 캘거리 대학교를 잘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학교 바로 앞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고, 조금 더 걸어가면 University 정류장이 있어 캘거리 어디든 이동할 수 있습니다. 학교는 다운타운에서 조금 왼쪽으로 치우쳐 있지만, 다운타운에 가기 어려울 정도는 아닙니다.
캘거리는 정말 춥습니다! 눈이 어마어마하게 내리는데, 제가 머물렀던 4월까지 끈적한 눈보라가 쳤습니다. 영하 24도까지 내려가기도 해요. 겨울을 완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캘거리를 추천합니다. 추운 날씨 덕분에 스키 타기, 스케이트 등등 전부 오래 즐길 수 있습니다. 또 여름은 굉장히 선선합니다. 여름에는 해가 아주 늦게 져서, 밤 9시에도 아주 환합니다.
III. 출국 전 준비 사항
1. 비자 신청 절차
캐나다에 6개월 미만으로 거주하실 생각이시라면 비자가 딱히 필요 없고 eTA만 준비해가시면 됩니다. eTA는 무비자 입국 시 필요한 전자 여행 허가서 같은 개념이고, 가격도 만 원 이하로 저렴합니다. 보통은 2-3일이면 발급이 되는데, 최근에는 일주일 넘게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넉넉하게 신청하시는 것을 권합니다.
캐나다에 6개월 이상 거주하실 계획이시라면 비자가 필요합니다. 교환학생으로 취득할 수 있는 비자는 ‘Study Permit’입니다. 신청 절차가 굉장히 복잡하고, 돈도 40-50만 원 가까이 들고, 나오기까지의 시간도 두세 달 여유를 두셔야 하니 교환학생 허가가 나시면 바로 스터디퍼밋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저는 6개월 미만으로 거주할 계획이었지만 스터디퍼밋을 신청했습니다. 일단 코로나 시기에 입국하는 것이니만큼 완벽하게 입국 준비를 하고 싶었고, 스터디퍼밋을 받으면 온/오프 캠퍼스에서 일정 시간 이하로 근무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영어도 배우고, 시간당 15달러의 높은 시급을 받으며 일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여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결국 노느라 바빠 일하지는 못했습니다). 또 스터디퍼밋과 한국 운전면허증이 있다면, 알버타주의 경우에는 알버타주 운전면허증으로 교환해줍니다. 저는 원래 장롱 면허라 운전할 계획은 없었는데, 캐나다에서 만난 남자친구가 차가 있었기에 결과적으로는 캐나다의 넓은 도로에서 운전 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 대학 차원에서 스터디 퍼밋을 굉장히 강조하는 곳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몇 명은 스터디 퍼밋 없이 오기도 했으니, 개인의 판단에 따라 발급받으시면 됩니다.
스터디퍼밋을 신청하시는 분들은 먼저 교환교에서 입학 허가서를 받아야 합니다. OIA에서 이메일로 안내해주시는 대로 캘거리 대학교에 신청을 한 후, 입학 승인까지의 과정을 거치면 입학 허가서를 보내줍니다. 또 만 불 이상의 돈이 통장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재정 증명서, 혹은 부모님의 재정 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 스터디퍼밋 관련 지원 서류, 여권 사진 등의 다양한 서류를 꼼꼼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이후 캐나다 정부에 온라인으로 필요 서류와 함께 스터디 퍼밋을 신청하고, 승인 이메일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이메일에는 바코드가 부착된 letter이 동봉되는데, 밴쿠버에서 환승하시면서 캐나다 입국 절차를 거칠 때 이를 보여주고 스터디 퍼밋 종이를 발급받으실 수 있습니다.
만약 입국하실 때까지 허가가 안나신다면, 일단 eTA와 관련 서류 인쇄한 것만 들고 가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저는 스터디 퍼밋 신청 허가가 늦게 나서 입국할 때까지 바코드를 받지 못했는데, 밴쿠버에서 바로 승인되어 실물 스터디 퍼밋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2. 숙소 지원 방법
캘거리 대학교의 큰 장점 중 하나는, 굉장히 시설이 좋고 깨끗한 1인 1실 기숙사를 높은 확률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학교의 입학 허가서를 받게 되면, 수강 신청을 비롯해 다양한 안내를 이메일로 전달받게 됩니다. 그중 하나가 기숙사 신청이었습니다. 제가 지원했던 시기는 초반에 비대면으로 수업이 진행되어 빈 기숙사가 많았고, 그렇기에 기숙사 자리가 굉장히 넉넉했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학교로 몰려 자리가 부족할 수 있으니, 꼭 이메일을 받자마자 빠르게 신청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Cascade, Aurora, Kananaskis, Rundle, Varsity Courts와 같은 다양한 기숙사가 있지만 저는 ‘Aurora’ 홀 지원을 권합니다. 일단 가장 최근에 지어진 빌딩이기 때문에 정말 깔끔합니다. 창문으로는 캘거리 근교의 들판과 눈 덮인 전나무가 보입니다. 뷰가 정말 최고였어요. 또 위치도 중심과 가장 가깝고, 추위를 대비해 지하 통로로 학교의 대부분이 연결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겨울에 밖에 나갈 일이 없어 편합니다. 학생식당, 맥홀(중심 학생회관) 등이 전부 연결됩니다. 1인 1실에 침대가 넓고, 옷장과 서랍, 책상까지 전부 furnished 되어 있기도 합니다. 주방도 굉장히 넓고(4구 스토브), 오븐도 있고, 냉장고도 크고, 총 3명이 공유하는 화장실과 샤워실이 분리되어 있어 사용에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쓰레기 처리도 매층마다 garbage chute가 있어 간단하고, 모든 층에 창문이 넓고 쾌적한 학생 공부 시설이 있어 자주 이용했습니다. 엘리베이터 두 대의 속도가 빨라 저는 8층에 거주했지만 지상으로 이동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이 정도면 엄청나게 완벽한 기숙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저는 기숙사에 대한 좋은 기억과 애정이 정말 컸고, 아직도 캐나다 생활을 떠올리면 기숙사에서 창문을 살짝 열어 시원한 공기가 들어오고 창문 밖으로는 노을이 지던 여유로운 저녁이 떠올라 행복해집니다. 여행이나 파티, 술이 아니라 여유와 행복이 중요한 가치가 되는 캐나다의 삶에서, 주거는 굉장히 중요한 조건입니다. 캘거리 대학교는 일단 기숙사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이상적인 교환학생 생활을 만들어줍니다.
IV. 학업
1. 수강신청 방법
캘거리 대학도 서울대학교와 마찬가지로, 인기 있는 수업은 빠르게 찹니다. 학교에 register한 이후 다양한 안내 메일들이 순차적으로 발송되는데, 조금 귀찮으실 수도 있지만 전부 꼼꼼히 읽고 숙지하셔야 합니다. 이때 기숙사, 수업 신청 안내 메일도 옵니다. 굉장히 꼼꼼하게 안내되어 있어서, 수업 신청은 그 메일에 적힌 방법을 따라 하시면 됩니다.
다만 주의하셔야 할 것은, 생각보다 교환학생의 신분으로 들을 수 있는 과목이 별로 없습니다. 선이수 과목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만약 ‘마케팅’ 수업을 듣고 싶으시다면, 한국에서 들은 관련 전공과목에 대한 서류를 캘거리 대학교에 제출해 미리 인정받으셔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1학년 과목만 들을 수 있고 서울대학교에서의 학점 인정은 못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2. 수강과목 설명 및 추천 강의
저는 미술 수업들을 들었는데요, 1학년 수업이라 난이도가 그렇게 높지 않고 분위기가 정말 좋아 미술을 좋아하신다면 추천해드릴 만합니다. 다만 미술에 큰 관심이 없다면, 다짜고짜 그림을 그리고 스케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습니다. 미술실은 정말 넓고 채광도 좋아서, 그리고 누구나 들어와서 작업할 수 있어서 그림을 좋아하신다면 아마 즐겁게 작업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미술 과목의 장점은 시험을 보지 않고 작업 결과로만 평가받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평소에 열심히 하신다면 적당히 잘 받을 수 있고, 시험에 대한 부담이 없어 편했습니다.
3. 학습 방법
미술 수업은 난이도라는 것이 없었고, 코딩이나 전공 수업을 열심히 들었던 친구들의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자면, 난이도는 한국 대학 수업과 비슷하거나 살짝 낮지만 자잘한 과제나 팀플이 많다고 합니다. 특히 팀플의 경우에는 줌이나 대면 만남으로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특히 언어 사용에 있어서 불편함이 많지만, 실력이 많이 는다고 들었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기말고사인데, 비율로 반영되어 성적이 책정되는 한국의 평가 방식과 다르게 캐나다에서는 기말고사의 중요성이 훨씬 큽니다. 100점 만점에 50점 미만을 받으면 아예 그 과목에 대한 F를 받아서, 적당히는 준비해가시기를 추천드립니다.
4. 외국어 습득 요령
저는 일단 최대한 외국 친구들과 부대끼며 수다 떠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원래 말이 많고 활발한 성격이기는 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밥을 먹자고 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있는 인간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이후의 약속이 잡혔기 때문에, 먼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을 티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제가 먼저 같이 어울리고자 하지 않으면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교환학생 커뮤니티에서 친구들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받아 먼저 같이 밥 약속을 잡고 어울려 다녔습니다. 캘거리에 있는 카페, 즐길거리 등을 먼저 찾아, 외국인 친구들을 불러 놀러 가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또 친구들이 나를 부르면, 귀찮고 힘들더라도 일단 나갔습니다. 이렇게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며 영어를 사용하니, 말하기가 금방 늘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인스타그램에서 실생활 영어 문장을 정리해주는 페이지를 팔로우해서 문장 정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교과서적인 문장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은어나 약어 등을 활용하고 싶어 미리 문장을 외워 친구들과 대화할 때 사용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영어 문장을 장기적인 기억으로 넘길 수 있었습니다.
교환 학생 생활에서는 생각보다 비는 시간이 많습니다. 한국에서만큼 수업을 많이 듣지도 않고, 동아리나 학회를 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영어를 정말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고 마음먹으신다면, 충분히 혼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영어 단어장, 회화책, 뭐든 좋으니 하나 가지고 오셔서 진득하게 파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How I met Your Mother이라는 미드도 정말 재밌게 보면서 공부했습니다.
V. 생활
1. 가져가면 좋은 물품
사실 캐나다에서는 한국이랑 비슷하게 뭐든 구할 수 있어요! 다만 가격이 비쌀 뿐입니다. 일단 제가 가져갔을 때 좋았던 것을 적어볼게요.
- 주방 : 캐나다에서 구할 수 없는 라면, 국물용 육수팩, 개인용 쇠젓가락, 숟가락
- 옷 : 양말, 속옷(캐나다에서는 질 좋고 딱 맞는 것을 구하기 어려워요!), 예쁜 한국 아우터(여기서는 아우터가 비싸요)
- 생필품 : 가습기(캐나다의 겨울은 엄청 춥고 건조한데, 가습기는 또 비싸서 다이소에서 하나 구매하는 것을 추천해요), 여행용 캐리어
+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한국 소설책 세 권 정도 들고 가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시간도 많고, 괜히 한글이 그리울 때 읽기 좋았거든요. 전자책이 편하시면 전자책도 좋지만요!
+ 가져갈 필요 없는 것 : 샴푸, 린스, 바디워시, 칫솔, 드라이기, 모자, 장갑, 마스크(캐나다에서는 마스크 사용 안 함)
2. 현지 물가 수준
캐나다의 외식 물가는, 한국의 두 배 정도 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둘이 좋은 식당 가면 8만 원에서 10만 원은 나오고, 그냥 일반적인 식당도 1인당 20불은 나옵니다. 학교에 있는 푸드 코트에서도 12-16달러 정도 하는 것 같아요. 한식은 더욱 비싸구요! 만약 한식을 자주 먹을 계획이라면 기본적인 양념을 H마트 등을 비롯한 한인 마트에서 구매하고, 직접 조리해 드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기름값은 한국에 비해서는 저렴한 편인데, 최근에는 많이 올랐습니다. 환율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보통은 1 캐나다 달러가 1,000원 정도로 생각했는데, 요즘은 더 나가는 것 같아요.
옷은 일단 한국보다는 비쌉니다. 아울렛같은 곳에 가면 저렴하게 파는 곳도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저렴한 옷은 한국보다 적은 것 같아요. 저는 옷을 미리 많이 가져가서 현지에서 구매하지는 않았어요. 대신 돈을 여행하는 데에 전부 썼습니다!
3. 식사 및 편의시설 (식당, 의료, 은행, 교통, 통신 등)
1) 식당
캘거리의 장점은,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이 굉장히 많다는 것입니다. 15개가 넘는 식당이 캘거리 곳곳에 자리잡고 있고, 종류도 다양해서 일단 기본적으로 먹고 싶은 것들은 대부분 찾을 수 있어요. 한국식 핫도그, 엽떡맛 떡볶이, 뿌링클 치킨, LA 갈비, 김치찌개, 치즈 닭갈비, 파전, 매운 쭈꾸미, 삼겹살, 갈비 등등 저는 한국 음식을 그리워할 새도 없이 많이 먹었습니다. 그래도 위에 적었다시피 가격이 비싸서, 친구들이랑 외식할 때 먹곤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남산’이라는 식당 추천합니다!
2) 의료
캐나다는 일단 1차 의료 기관은 무료입니다. 다만 퀄리티가 좋지 않아요. 예를 들어 귀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가고 싶다면, 로컬 의료 기관을 예약해서 방문해야 합니다. 그런데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서, 보통 2주 전에 예약을 해야 해요. 당일날 방문할 수 있는 곳도 있지만,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예약제로 이루어지는 병원 중에 당일 예약이 가능한 곳도 있었는데, 평점은 좋지 않았어요.
1차 의료 기관에 가면, 의사가 간단히 증상을 보고 진료를 합니다. 다만 여기서는 예비적으로 증상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기에, 치료를 본격적으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의사가 판단하기에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면, 환자를 2차 의료 기관에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럼 그 병원을 예약하고 방문해서 치료를 받으면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시스템이 정말 답답했습니다. 한국이라면, 바로 이비인후과에 방문해서 전문의에게 치료를 받고 약까지 처방받을 수 있을 텐데, 캐나다는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길고 1차 의료 기관에서는 제대로 된 처방을 해주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캘거리를 방문하시는 분들께서는, 최대한 개인 상비약을 꼼꼼하게 준비하시고 병원 방문은 최대한 삼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3) 은행
저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머물 예정이어서, 계좌를 개설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찾아보니 스터디 퍼밋으로도 계좌를 만들 수 있다고는 합니다. 계좌를 만들면 캐나다의 TD Bank 카드 등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대신 저는 제가 사용하던 신한카드를 현지에서도 썼습니다. 수수료가 그렇게 유의미하게 있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카드는 서로 다른 은행으로 최소한 두 개는 들고 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드물게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신한 카드는 가끔 결제가 되지 않는 분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에는 숙박 시설 결제가 안되어서, 한국에 있는 우리카드를 번호만 알아가지고 에어비앤비를 온라인으로 결제해야 했습니다. 호텔 보증금 등은 카드로 낼 수 없어서 현금으로 대체했습니다.
가끔 계좌이체, e-transfer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캐나다는 특이하게 이메일로 발송이 가능합니다. 이럴 때는 가까운 친구에게 현금을 주고 계좌이체를 부탁하곤 했고, 액수가 클 때는 카카오뱅크 해외 송금 제도를 이용했습니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바로 이체되는 것은 아니고 하루 정도 기다려야 해서, 미리미리 송금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4) 교통
캘거리의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은 C-train과 버스입니다. 씨트레인의 경우, 레드 라인과 블루 라인이 있고, 학교는 레드 라인입니다. 여기는 대중교통 비용이 비싼데, 다행히도 캘거리 대학교에 enrolled하면 무료로 캘거리 대중교통 이용권을 줍니다. 어디든 무료로 다닐 수 있어 아주 유용했습니다.
방법은, Calgary Transit 앱을 깔고 학교 인증을 하시면 됩니다. 관련 안내는 학교 홈페이지에 무척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씨트레인은 사실상 티켓 검사를 하지 않아서, 앱에서 스스로 activate을 시키면 되고, 버스는 QR을 태그하면 승차 처리가 됩니다.
구글맵으로는 씨트레인의 운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1-5분 정도는 오차가 생기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캘거리는 대중교통이 서울만큼 딱딱 떨어지지 않아서, 처음 방문하신다면 약속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나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저도 처음 갔을 때 별일이 많았는데요, 버스를 놓쳤다고 구글맵에 나와 다시 반대쪽으로 길을 건너 씨트레인을 타러 갔는데 그 순간 버스가 와서 정말로 놓쳐버리는 일들도 많았습니다. 캘거리에 산다면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대중교통을 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주의해야 할 점은, 씨트레인은 밤에는 탑승하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24시간 오픈되어있는 씨트레인 역은 노숙자들의 집입니다. 낮에는 다운타운을 돌아다니시다가, 밤에는 트레인이 끊길 때까지 열차 하나를 타고 돌아다니시거나 역에서 주무십니다. 대부분 술이나 대마에 취한 상태고, 가끔 노숙자들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밤 다운타운도 마찬가지로 돌아다니시는 것을 자제하셔야 합니다. 낮에는 그래도 안전하지만요.
5) 통신
저는 한국에서 미리 유심을 구매했습니다. ‘말톡’이라는 곳에서 북미 캐나다 유심을 샀는데, 캐나다 통신사 TELCEL이라는 곳의 유심이어서 알버타주 바깥, 캐나다 어느 곳이든 아주 잘 터졌습니다. 유심 가격은 만 원이 살짝 넘었고, 매월 통신비가 60불 정도 나왔습니다. 저는 15기가짜리 데이터를 구매했는데, 학교, 도서관 등에서는 와이파이가 잘 터져서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무제한으로 살다가, 캐나다에 가서 15기가로 살아야 해서 조금의 적응 기간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랜덤으로 어떤 유심은 같은 종류여도 유콘주 등에서 터지지 않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4. 학교 및 여가 생활 (동아리, 여행 등)
저는 하이킹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캐나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첫 하이킹을 갔는데, 제게는 정말 충격적으로 아름다웠던 경험을 안겨주었습니다. 캘거리는 지리적으로 밴프와 정말 가까워 로키산맥의 다양한 트래킹 포인트를 섭렵할 수 있습니다. 제가 방문한 곳은 미네왕카 호수였고, 모든 것이 얼어붙은 호수를 따라 6시간 정도 하이킹을 했습니다. 살면서 본 풍경 중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미네왕카 호수 외에도, 유명한 레이크루이스, 밴프, 캔모어 등의 여행지가 이 지역에 몰려 있습니다. 수업이 없는 날짜를 모아 한국인 친구와 함께 4-5일 정도 캔모어 살기를 했는데, 정말 여유롭고 행복했습니다. 낮에는 캔모어 시내와 주위 하이킹 포인트를 걷고, 그리즐리베어 펍에서 햄버거와 푸틴을 먹었습니다. 해가 지면 집으로 들어와, 알버타주의 유명한 소고기 스테이크를 구워 파스타와 함께 요리해먹고 영화를 봤습니다. 또 얼은 몸을 자쿠지에서 녹이기도 했습니다. 쓰다 보니 정말 그립네요!
캐나다에서 또 꼭 가야하는 여행지는 오로라 투어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옐로우스톤이 닫혀 있어서, 유콘 주의 화이트홀스로 오로라를 보러 갔습니다. 캘거리에서 유콘 왕복 비행기가 50만 원, 투어비가 100만 원 정도 들었는데, 방한복, 스노모빌, 자연보호구역투어, 유콘시 투어, 3번의 오로라 투어 등이 전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조금 비싸긴 하죠! 숙박비까지 포함하면 200만 원 정도 들었습니다. 오로라는 정말 아름다웠는데요, 사실 구름이 많아 아주 커다랗고 일렁이는 오로라는 보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만약 가신다면, 달의 크기, 날씨를 무조건 고려하셨으면 합니다.
밴쿠버, 몬트리올, 퀘벡, 오타와도 함께 여행했습니다. 캐나다 국내선이 나름 저렴했던 시기였고, 숙박비도 그렇게 비싸지 않아 3주 정도를 할애해서 여유롭게 구경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몬트리올이 정말 좋았는데요, 날씨도 날씨였지만 집도 정말 고풍스러웠고 풍경도 아름다웠습니다. 오타와에서는 튤립축제가 한창이어서 열심히 꽃을 즐겼고, 밴쿠버에서는 UBC를 걸으며 바다와 숲으로 둘러싸인 캠퍼스를 즐겼습니다. 도깨비 촬영지로 유명한 퀘벡에서도 이틀 정도 머물며 다운타운을 꼼꼼히 돌아다녔습니다. 캐나다는 여행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하고 아름다운 곳이었고, 만족도도 높았습니다. 유럽 여행을 못가서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캐나다 동부를 여행하며 유럽풍 도시들을 즐길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제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멕시코와 쿠바였습니다! 북미까지 왔는데 중미 여행은 가야지! 싶은 마음이 가장 컸고, 특히 쿠바는 캐나다인들에게 매우 유명한 휴양지였기에 접근성이 높았습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종강하자마자 쿠바로 떠나는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약 16일동안 하바나와 바라데로를 여행했습니다. 카리브해에서 헤엄치고, 하바나의 구시가지를 걷고, 시가를 구매하고, 모히또를 마시고, 바라데로의 올인클루시브 리조트에서 뷔페와 수영과 프라이빗 비치를 즐기는 모든 순간이 정말 행복했습니다! 물론 중간에 코로나에 걸려서 병원에 격리당하는 등의 다이나믹한 썰도 많았지만, 다시 여행가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나라였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코로나 규제가 풀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전반적으로 조금 혼란스러운 시점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정말로 한 번 더 여행할 생각입니다.
멕시코는 무려 한 달 반이나 여행했습니다. 캐나다에서 멕시코로 가는 비행기는 약 50만 원 정도로 저렴했고, 물가가 싸 숙박비도 저렴했기 때문에 오래 머물 수 있었습니다. 타코 맛집 과달라하라, 영화 ‘코코’의 배경 과나후아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힌 산 미겔 데 아옌데,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 멕시코시티, 축제의 중심 와하까, 가장 유명한 멕시코의 휴양지 칸쿤과 플라야 델 카르멘까지 멕시코 전역을 돌아다녔습니다. 고래상어와 수영하고, 가장 맛있는 타코를 맛보고, 온천수가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똘란똥꼬에서 한 박을 머무는 등, 진귀한 경험을 전부 할 수 있었습니다. 멕시코는 물론 안전한 국가는 아니지만, 안전하게 다닌다면 문제 없으니 꼭 도전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5. 안전 관련 유의사항
캐나다는 워낙 치안이 좋고 사람들이 친절해서, 안전에 대한 큰 유의사항은 없습니다. 물론 외국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사항은 있습니다. 밤에 돌아다니지 않기, 위험한 지역(캘거리에도 위험 구역은 있습니다. ex. 말보로역 근처) 가지 않기, 술 마시고 다운타운 걷지 않기 등은 물론 숙지해야 합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Ⅵ.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교환학생으로 캐나다, 쿠바, 멕시코에 머물렀던 반년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선택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은 모두 즐겨 후회가 전혀 없습니다. 저는 교환학생 이후로 삶의 지향점이 생겼고 또 생활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에서의 여유로운 생활 속에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얻었다는 것이 가장 큰 배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구체적인 진로를 적을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 또한 충분히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캐나다에 살면서 매일 하루에 하나씩 비공개 계정으로 일기를 쓰고, 가까운 사람들과 공유했습니다. 거기에 적은 마지막 일기를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항목에 첨부하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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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112일째, 오늘은 기숙사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다. 내일이면 쿠바에서 2주를 보내고, 캘거리에 돌아오기 무섭게 캐나다 동서부 여행을 떠난다. 캐나다에서 ‘사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인 셈이다.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잠들어, 눈을 뜨면 창문 너머 파란 공기를 마시고 가장 먹고 싶은 요리를 해 먹던 아침들. 재료가 부족하면 천천히 걸어 장을 보고, 귀찮을 땐 도서관에 가서 크루아상을 사 먹었다. 잠이 오면 잠을 자고, 노을을 보고 싶으면 달려 나가고, 해가 조금 떴다 싶으면 여름인 줄 알고, 따뜻한 날에는 강가에 돗자리를 펴고 눕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업을 몽땅 빠졌고 대신 친구들과 내내 놀았다. 학교에서 15분 거리 스키장에 가서 먹었던 푸틴, 바스라지는 눈으로 만들었던 오리들, 뒤뚱거리며 스케이트를 타던 나의 겨울. 하키에 반쯤 미쳐있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맥주를 마시며 플레임즈를 외치고, 눈 위에 메이플시럽을 뿌려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알래스카 옆에서 쏟아지는 은하수를 이불 삼아 몇 시간이고 봤던 오로라와, 눈을 떴을 때 스쳤던 선명한 별똥별 하나까지도 전부 기억한다. 이곳에서 사는 내내 날씨는 영하 24도를 오갈 만큼 추웠는데, 그 안의 기억들만큼은 꽉 안아도 따뜻하다.
행복의 정의를 좁게 잡든, 넓게 잡든 지난 넉 달 동안의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아주 엄밀하게 골라 쓴다고 해도 정말 그대로 행복했다. 일선 오빠가 시간 나면 하루종일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보라고 했었는데, 난 쭉 그렇게 살았다. 하기 싫은 것들은 단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그래서 행복했나 보다. 나를 신경 쓰게 하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고, 사소한 것들조차도 몽땅 아름다우니까 말이다.
캐나다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내 행복의 기준을 알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스울 정도로 사소한 것에서부터 나름 가치 있는 것까지, 매일 뚜렷해지는 나를 만나는 것이 즐거웠다.
나는 뷰파인더 속의 초점과 셔터 사이의 숨 참는 몇 초를 사랑한다.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먹는 저녁이 좋고, 침대 보단 카페에서 책을 읽으면 몇 시간이고 집중할 수 있다. 불확실해도 내 성과가 의미 있게 반영되는 일을 하고 싶다. 돈보다도 여가가 보장될 때 동기부여가 되고, 여행과 관련된 일이면 뭐든 지치지 않는다. 우울할 때는 바다 다큐멘터리를 보다 잠들면 나아진다. 카더가든 앨범을 하나씩 틀어 놓고 일할 수 있는 새벽에 집중이 가장 잘 되고, 간이 세지 않아도 좋으니 재료의 맛이 선명히 보이는 음식이 맛있다. 그리고 사랑! 누구든 무엇이든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이렇게 터득한 나의 수많은 행복의 기준들은 결국 앞으로 살아갈 내 삶의 방향성을 이룰 것이다. 살아갈수록 나의 행복이 순간이 아니라 기간이 되어감을 느낀다.
내가 겪었던 나의 불행은, 영원한 것이 있다고 믿었던 순수함과 완전한 행복의 상태를 그리워하는 미련에 뿌리를 둔 것 같다. 모든 영원함과 완벽함엔 기대가, 기대에는 실망이 따르니까. 하지만 아직 나에겐 모든 것의 가변성을 믿는 것은 비관적으로 보이고, 적당한 행복에 타협할 능글맞음도 없다. 무던해지는 것이 어른이 되는 거라면 난 굳이 노력하지 않겠다. 나이가 들어도 모든 것에 정을 주고, 모든 것을 결국 사랑하고, 작은 것들과의 이별에도 눈물이 나는 철없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나는, 나의 스물네 살 겨울을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워할까. 떠나는 건 언제나 슬프고 시간은 여전히 너무 빠르다. 그래도, 친구를 못 사귈까 걱정했던 처음의 내가 무색하게 가져간 30개의 기념품은 동이 났고, 이제는 하루종일 영어 쓰는 것이 피곤하지 않다. 이천 자씩 꼬박꼬박 올렸던 캐나댱 계정을 훑을 땐 매일 철없이 행복했던 내가 보인다. 떠날 때 돌아보니 아쉬운 것도 후회하는 것도 없다.
나중에 나이가 들면 꼭 캐나다 같은 곳에서 살고 싶다. 조금만 나와도 대자연과 닿아 있는 마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우리를 닮은 집을 짓고. 항상 배경은 제주도였는데 이 곳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캐나다가 됐다. 그만큼 좋았나 보다.
캐나다에서 산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