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교환 프로그램 참가 동기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만, 저에게 교환학생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에 가면 가장 하고 싶은 활동 중 하나였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온 저에게 해외에 나가서 6개월 이상의 기간동안 살아보고, 공부해보는 경험은 막연하지만 큰 동경을 갖게 하기엔 충분했습니다. 19년도 스누인 프로그램을 참가하여 4주간 해외에 머물러보면서, 교환학생을 지원해야겠다는 확신이 더 굳어졌고 이는 곧 20년도 2학기 교환학생 신청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제가 1지망으로 신청한 학교로의 입학이 ( 싱가포르 국립 대학교 ) 두 차례 좌절되었고 저는 그렇게 교환학생을 가지 못한 채 2학년에서 4학년이 되었습니다. (당시 싱가포르 방역이 강해, 21학년도엔 미국/유럽 지역은 점차 완화하여 수학이 가능해졌으나, 싱가포르는 국가 차원에서 방역을 완화하지 않아 두 번째 지원, 즉 21-2학기에도 무기한으로 연기되었습니다.)
1차례 연기 되었을 때는 교환을 다녀와서 학회를 하고자 했던 처음의 계획과는 달라졌지만, 먼저관심 있는 분야의 학회를 들어가 활동함으로써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로 연기되었을 때는, (1) 싱가포르를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교환학생을 갈 수도 있었다는 생각과 (2) 이제는 학업과 병행하면서 대학교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점 (3) 같이 가기로 했던 대부분의 친구들이 교환을 갔거나, 가기를 아예 포기했다는 점 등 여러 가지 생각들 때문에 심리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습니다.
수학하고자 하는 학교를 선택하는 것도, 연기되어도 교환학생을 가기로 결정한 것도 온전히 저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었음에도,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계속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저는 꽤 우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2년의 기간 동안 저는 학회활동도 했고, 2차례 인턴을 하였고, 졸업학점도 다 채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당시 저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기존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저에게 집중해서 스스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었습니다.
II. 파견대학 및 지역 소개
오르후스(Aarhus)는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 다음으로 큰 도시로, 바다 옆에 있는 항구도시이자 대학이 많고 학생들이 많이 사는 학생도시입니다. 덴마크 자체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학생도시라는 점 때문에 치안이 정말 정말 좋았습니다. 물론 국가 특성상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나라처럼 날씨가 좋지는 않았습니다만, (특히 저는 2학기에 가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친절하고 도시가 조용하며, 여유로운 느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점 또한 사소하지만 소소한 편안함을 주었던 점입니다. 또한 바다가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기숙사에서 산책을 나가서 광활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점도 행복한 점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학점을 다 채우고 가서 결국 하나의 수업만을 이수하였습니다만, 오르후스 대학교는 경영대가 꽤 유명한 편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가르치는 내용들과 수준은 서울대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수준과 유사했습니다. 또한 다양한 유럽 국가에서 학생들이 교환학생을 오는데, 제가 어울렸던 친구들만 생각해도 독일 및 네덜란드, 스페인, 폴란드, 이탈리아, 아이슬란드, 호주, 싱가포르, 홍콩, 프랑스, 핀란드에서 왔었습니다. 제 추측이지만 아무래도 북유럽이라, 아이슬란드나 핀란드에서 온 친구들도 종종 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III. 출국 전 준비 사항
출국 전 대학교에서 필요한 것들 챙겨야 하는 것들( 서류, 여행자 보험 등 )을 국제협력본부에서, 파견 대학교에서 알려줍니다. 그 과정 속에서 준비 해야 하는 서류가 적지는 않지만, 시키는 것만 잘 한다면 큰 어려움 없이 준비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IV. 학업 및 현지 생활 안내
제가 오르후스 대학교를 선택한 큰 이유 중 하나가 교환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이 잘 되어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가보니, 버디 제도가 잘 되어 있어 초반에 아무것도 모를 때 학교에서 매칭해준 동일 대학/대학원 학생 버디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며, 이는 적응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학교 내에 카페 겸 바(student bar)가 있었는데, 교환학생을 포함한 해당 대학/대학원 학생은 그곳에서 봉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1주일에 1번 정도 봉사를 하며 수업 외의 경로로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고, 다양한 술 만들어보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그리고 코펜하겐과 마찬가지로 오르후스의 주요 교통수단은 자전거입니다. 저 역시 자전거를 렌트하여 매달 약 33000원 정도를 내며 시내나 근처로 나갈 때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경영대학까지는 약 15분간 오르막을 가야 했기에, 꽤나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_
정말 무수한 좋은 점들에도 불구하고, 현지 생활에서 아쉬운 점들 역시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날씨가 좋은 국가/도시는 아니었다는 점, 둘째로 물가가 저렴한 편은 아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 역시 날씨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었지만, 어차피 2학기에 가는 것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최악은 아니었습니다. 날씨가 더 좋은 나라들도 있었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덴마크의 다른 장점들이 이 단점을 덮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날씨가 안 좋았던 날들 마저도 대부분 좋은 기억들로 남아있습니다.) 물가는 비싼 편이어서 외식은 거의 하지 않았으며, 집에서 간단한 요리를 해먹었습니다.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는 경우, 한국보다 많이 비싸지는 않았으나, 전반적인 물가는 비싼 편이었습니다.
III.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도 그러하겠지만, 어려서부터 저는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렇게 대학에 입학하여 2-3년 정신 없이 학교를 다니고 나니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기준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주위의 말들에 쉽게 흔들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학회를 해도, 인턴을 해도 즐겁지가 않았고, 어떤 결정을 내려도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머리로는 주위의 얘기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한 순간에 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더구나 제 스스로의 행동이 바뀔만한 아무런 계기가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그렇게 되기란 참 어려웠습니다.
한국에서 아무리 제가 머리로 스스로를 세뇌해도 안되던 것이, 한국에서 벗어나서 완전히 홀로가 되니 비로소 자연스럽게 가능해졌습니다.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사람들, 삶의 방식들을 직접 옆에서 보고 느끼면서 주어진 상황에서 정말 온전히 ‘나’에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당연한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하면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환학생 기간 동안 모로코에 있는 사하라 사막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사막 내부에 있는 베이스 캠프를 가기 위해, 그 곳에 오래 전부터 살던 가이드 분들의 동행이 필요했습니다. 그 분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삶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1) 우리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모래언덕들이 그들 눈에는 다 다르게 보이기에, 베이스 캠프로의 길도 찾을 수 있고, 광활한 사막 속에 풀어놓은 낙타도 찾을 수 있다는 점과 2) 이 일을 하는 가이드 분들은 대부분 최소 3-4개국어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또 한 번은 스위스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했습니다. 패러글라이딩 역시 저를 위해 함께 해주시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된 사실이, 1) 그 분 역시 10년 전 대학에서 완전히 다른 전공을 공부하다가 처음 저와 같이 패러글라이딩을 해보고 나서 이 일을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하셨다는 것과, 2) 패러글라이딩 조종사 되기 위해선 많은 전문적 지식 (지형에 따라 바람이 어떻게 달라지는 것과 같이) 과 물리적 스킬(신체적 능력) 모두가 필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많은 공부와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보시다시피, 두 경우는 완전히 다른 나라에서, 완전히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나눈 대화입니다만, 이들의 이야기는 저에게 ‘진로와 삶’에 관한 종합적인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첫 번째 분은 자연스럽게 살다 보니, 본인의 능력과 업이 일치된 것처럼 보였고, ( 적어도 제가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에 따르면, 1) 사하라 사막 근처의 마을에서 태어났기에 사막을 자주 다니면서 사막의 모래언덕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졌고, 2) 다양한 외국인들이 여행을 와서 그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몇 개 국어는 거뜬히 할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분은 본인이 성인이 된 후 새로운 경험을 해봄으로써 결심을 하고, 그 때부터 노력을 하여 능력을 갖추고 원하는 업을 갖게 된 것이었습니다. 두 분은 모두 행복해 보였고, 그 분들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삶을 긍정하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의 삶의 외양과 그 살아온 과정은 너무나 다르지만, 결국 본인들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삶을 긍정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었고, 이는 제가 살아가고 싶은 삶의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분명 또 힘들고, 우울한 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교환 시기 동안 만난 다양한 친구들과,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저 스스로 ‘왜 사는지,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등에 관한 질문들에 대해 저만의 답을 내렸고, 이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비슷한 어려움이 오더라도 이 전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한국에서도 혼자의 힘으로 기존의 환경으로부터, 사고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과거의 저와 비슷한 상황이시라면, 교환학생을 꼭 가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삶 자체를 긍정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교환학생 프로그램, 이를 수월하게 다녀올 수 있게 해준 국제 협력본부에 감사의 말씀 전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