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교환 프로그램 참가 동기
해외 거주 경험이 없어 한 번쯤은 외국에 나가 살며 다른 문화를 체험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서 공부하다 보면서는 외국에 나가 영어 실력을 늘리고 싶다는 생각과 복수 전공하고 있는 과인 미술사학과 수업이 해외에서는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진행되는지 경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습니다. 그러던 중 코로나 19로 인해 다년간 해외여행을 못 가니 교환학생을 더욱 적극적으로 고려하게 되었고 코로나 19가 완화되자마자 바로 신청을 했던 것 같습니다.
II. 파견대학 및 지역 소개
제가 다녀온 학교는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UBC)입니다. UBC는 캐나다 남서부 도시 밴쿠버에 캠퍼스를 두고 있는 명문대학입니다. UBC 캠퍼스는 밴쿠버 내에서도 가장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조금만 걸어가면 바다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UBC에는 다양한 학과가 있는 종합 대학인데 단과대와 학과 수 만큼 학생의 수도 많아서 동아리나 축제 등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기도 합니다. 또, UBC에는 외국인 유학생, 각지에서 온 교환학생들의 수가 굉장히 많아서 다양한 문화를 공유하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잘 형성되어 있습니다.
III. 출국 전 준비 사항
1. ETA 발급, ESTA 발급
저는 원래 study permit을 발급받을 예정이었으나, 6개월 미만으로 거주할 거면 관광 비자인 eta만 발급받아도 괜찮다고 하여 eta로 발급받았습니다. 그리고 입국할 때 미국을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야 해서 미국 관광 비자인 esta도 미리 발급받아 갔습니다. 두 개 다 신청하면 금방 발급이 되긴 하지만, 저는 혹시 몰라 출국 1달 전에 미리 준비했었습니다.
2. 보험
UBC에서 iMED라는 보험을 제공해줬습니다. 학기 초에 학교 계정으로 보험료를 납부하는 형식이었고, 보장 내용 등은 메일로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3. 카드, 국제학생증 발급
현지에서 쓸 카드로 하나은행 VIVA 카드와 Travel Wallet 카드를 발급받아 갔습니다. 캐나다에서 현지 은행 계좌와 카드를 만들었으나, 매번 해외 계좌로 송금하는 것이 번거롭기도 하고 위 두 개 카드로도 환전 수수료 거의 없이 결제가 가능해서 거의 한국에서 발급받아 간 카드들만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신분 보증용으로 국제학생증을 발급받아 갔습니다. 막상 캐나다에 있을 때는 쓸모가 없었는데, 종강 후 미국 여행에서 국제학생증으로 박물관/미술관 입장료 할인을 많이 받았습니다.
IV. 학업 및 현지 생활 안내
1. 수강 과목
저는 복수전공인 미술사학과 전공과 프랑스어 교양 강의를 들었습니다. 미술사학과 전공의 경우, 학점 인정을 받기 쉽도록 서울대에서 열리는 강의와 최대한 비슷한 내용의 수업들을 골랐고 저학년 수업보다는 고학년 수업을 위주로 고려했습니다. UBC에서는 미술사의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는 강의들이 폭넓게 개설되어 있어 전공 인정을 받기도, 새로운 관심 분야를 도전해보기도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ARTH 300
미술사의 이론과 방법에 관한 세미나 강의였습니다. 10명 남짓한 소수 정예로 진행된 강의였으며 매주 두 명씩 자신이 맡은 논문을 요약하고 발제하는 형태였습니다. 평가는 한 학기에 한 번 발제하여 1시간 20분 정도의 토론을 이끌어나가는 것과 학기 말 2~3편 정도의 논문을 요약하고 비교하는 레포트, 출석을 고려하여 이루어집니다.
미술사 이론에 관한 수업이다 보니 논문의 내용이 꽤 어려우며 매주 읽어가야 하는 양도 만만치 않습니다. 또, 저는 발표 시간이 길다 보니 준비 과정에서 부담을 많이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토론할 때나 발표할 때 학생이 조금 헤맨다 싶으면 교수님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고, 발제도 핵심을 짚는 수준으로만 해가면 되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편안한 수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ARTH 323
북유럽 르네상스 시기의 미술 작품들을, 핵심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훑는 강의입니다. 평가는 퀴즈 3개와 중간 레포트 한 번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수업의 좋았던 점은 교수님께서 Panapto라는 시스템을 이용해 매 수업을 녹화해서 올려주셔서 수업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한 날 다시 볼 수도 있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수업을 빠져야 하는 날에도 강의를 따라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수업 중간에 교수님께서 Panapto 업로드를 그만할까 고민 중이라고 하셨기에 이후까지 이 방식이 유지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레포트나 퀴즈의 난이도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조금 힘들었던 점은 교수님께서 매시간 꽤 많은 내용을 강의하시기 때문에 수업 시간 안에 모든 내용을 받아적기가 어려운데, 퀴즈는 수업 시간에 배웠던 것들을 잘 정리해서 그대로 쓰는 방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번 녹화된 강의들을 다시 봤던 것 같습니다. 혹시나 녹화 강의 업로드를 해주시지 않는다면, 교수님이 제시해주시는 논문들을 꼼꼼히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FREN 101
프랑스어 수업 중 가장 초급 단계에 해당하는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교수님께서 70% 이상의 수업을 프랑스어로 진행하십니다. 프랑스어에 완전히 빠지는 것이 학습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식이라고 설명을 하셨는데, 사실 프랑스어를 완전히 처음 접하는 입장에서는 어려워서 못 알아듣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또, 단원별로 자잘자잘한 과제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 거주 관련
저는 기숙사를 배정받지 못했습니다. 기숙사를 신청할 때 코로나 19 직후이기 때문에 기숙사를 원하는 인원이 많아 신청 인원의 50% 정도만 선발할 수 있다는 공지를 보긴 했지만, 교환학생을 떨어뜨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 탈락하고 나서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기숙사에 탈락했다는 공지와 몇 천번대의 대기번호를 받고 나서 UBC Housing 측에 메일을 넣어봤는데 돌아오는 것은 유감이지만 안된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외부 숙소를 구해 학교까지 왕복 2시간 반 정도의 통학을 했습니다.
어찌저찌 집을 구해서 4달 동안 잘 살기는 했지만, 개강 이후 한 주 정도까지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살 정도로 집을 구하는 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캐나다는 부동산 사기가 많다고 하여 한국에서 직접 방을 보지 않은 상태로 계약하고 갈 수는 없었기에 직접 가서 발품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생각보다 더 방이 구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름 안전하고 쾌적하다 싶은 집들은 최소한 기숙사 가격이 1.5~2배 정도 비싼 것도 문제였지만, 집주인들이 보통 6개월 이상 거주할 사람들과 계약하기를 원해서 아예 들어갈 수 있는 집이 없다시피 했던 게 가장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책부터 집까지 거래하는 사이트인 craigslist, 부동산 전문 사이트인 zumper, 학생들 전용 방이 올라오는 places4students, 한국인 스테이를 찾을 수 있는 밴조선 등을 모두 뒤져보았으나 기간에 맞는 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밴쿠버 바로 옆에 붙어있는 버나비 지역에 있는 airbnb에서 셰어하우스를 구해 거주했습니다. 처음엔 airbnb 숙소들이 너무 비싸서 꺼려졌으나, 몇 달씩 연박을 하면 40~60%의 금액을 할인해줘서 다른 방들보다 약간 비싼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기숙사를 떨어지신 분이 있다면, 최우선으로는 UBC housing forums 사이트에서 기숙사생이 다른 학생에게 방을 빌려주는 형태인 sublet 매물이 나와 있는지 먼저 보시고(기숙사가 간절한 학생들이 많은 걸 알고 원래 기숙사비보다 훨씬 비싼 금액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집을 구하는 것보다 저렴하고 학교 밖 동네는 어둡고 무서운 곳이 많으니 잡을 수 있다면 꼭 잡으세요!) 그 후 순위로 airbnb나 교환학생들 전용 셰어하우스 등을 알아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생각해보면 airbnb 같이 허위매물을 등재할 수 없고 어차피 발품을 팔 수 없는 사이트들에서 집을 구할 거라면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하고 가도 될 것 같긴 합니다! 대신 밴쿠버에서 반지하, 셰어하우스 등의 조건을 기재해놓지 않는 단기 숙소들도 꽤 봐서 예약/계약할 때 꼭 본인이 생각한 조건이 맞는지 확인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역은 West Vancouver가 가장 좋긴 할 텐데 주택가는 밤거리가 매우 한적해서 혼자 다니기 위험한 지역이 많으니 낮, 밤에 모두 가보시는 게 현명할 듯합니다.
3. 밴쿠버 생활
밴쿠버는 동양인 비율이 높고 길거리를 지나다니다가 심심치 않게 한국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인 비율도 높은 도시입니다. 그래서 한식당, 한인 마트, 한인 미용실 등도 많아 생활이 편리합니다. 그러나 물가가 한국보다 비싸다는 점, 길거리에서 노숙자나 마약한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는 점, 행정 처리가 느리다는 점은 밴쿠버에서의 생활을 좀 어렵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III.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교환학생 생활은 제 생각처럼 반짝반짝 빛나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적긴 어렵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처음 겪어보는 좌절감도 느껴보고,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큰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돈도, 시간도 엄청나게 들여 해외까지 나간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의 경우에는 마음 편하게 놀고 즐긴 날보다는 그렇지 못했던 날들이 더 많았던 것 같네요. 그래도 지금은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부하지만 익숙한 곳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냈던 하루하루가 제 시야를 많이 넓혀줬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에서도, 한국에 와서도 저 자신의 관점이 바뀌고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걸 끊임없이 느끼고 있으니 확실히 그런 거겠죠. 그리고 모든 것에서 떠나 제가 가진 편견을 시험하는 경험들을 많이 하면서 저에 대해서 더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제 가치와 방향을 고민하고 점검하며 저 스스로에게 조금 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잃은 것도, 얻은 것도 많은 교환학생 생활이었지만, 어떤 종류든 지난 몇 달간의 기억이 평생 잊지 못할 큰 경험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