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교환 프로그램 참가 동기
익숙하고 안온하지만 동시에 저를 가두고 있는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환학생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규정짓는 수많은 위치, 지위, 수식어 등에서 벗어나(별 대단하다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에서 살아오면서 자연스레 획득하게 되는 ‘학생’, ‘서울시민’ 등의 지위) 정말 저라는 사람 그 자체만 남겨지는 상황 속에서, 가장 날것의 나 자신을 마주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학우분들의 대다수 교환학생의 이유는 해외에서의 수학 경험, 외국어 능력 향상, 현지 및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사교 활동으로 거론하곤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교환 프로그램의 주요 동기가 되고자 하나 저는 제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어쩔 수 없는 타의적인 외부적인 요소들을 교환의 동기로 삼고 싶지 않았습니다. 교환학생을 위한 모든 기회 비용을 고려했을 때 제 결론은 외부 변수에 좌우되는 목적을 집착하면서 그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희생하고 싶지 않았고,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의 아쉬움 및 실망감을 겪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환학생 생활을 가면서 가장 중요시 두었던 가치는 그냥 그 경험 그 자체였습니다.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도모하고 바꾸려 하고 획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상황과 선택지들 중에서 끌리는 대로 움직이면서 그에 대한 결과들을 오롯이 혼자 겪으며 때론 즐기고 때론 견디고 참아내는 그 과정.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혈혈단신으로 한국으로부터 비행기로 반나절 떨어진 외딴 대륙에 있기에 그 경험들을 순화되지 않고 더욱 직접적으로 거세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교환학생을 하는 5개월 동안 가장 밑바닥의 구질구질하고 비참한 심정부터 그 무엇보다도 자유롭고 벅 차오르는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나를 오랫동안 알아온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나라는 인격체를 종종 대변하곤 한 소속 집단으로부터 벗어나자, 처음엔 나를 감싸고 있던 모든 옷들을 헐벗은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랬기에 더 이상 속일 필요도 가식을 떨 필요도 없어져, 솔직하게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수긍하고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아 나는 이럴 때 행복하구나’, ‘나는 이럴 때 불쾌하구나’, ‘나의 이러한 특성들은 본성적인 것이 아니라 주위에 맞췄던 거구나’.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나 자신을 더 많이 이해하고자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습니다.
II. 파견대학 및 지역 소개
저는 호주 시드니에 있는 University of Sydney에 22학년 2학기에 다녀왔습니다. 시드니는 자연과 도시문화의 밸런스가 굉장히 좋은 곳입니다.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를 중심으로 한 서큘러키부터 타운홀까지의 번화가에서는 세련된 높은 빌딩들과 고풍스러운 유럽식 건축물들을, 버스를 타고 30분만 나가면 본다이비치, 쿠지 비치를 비롯한 찬란한 바다를, 기차를 타고 1시간을 가면 나오는 로열내셔널파크 국립공원을 갈 수 있습니다. 교통이 무척 잘 되어 있어 왠만한 곳은 버스, 트램(light rail), 트레인을 이용해서 갈 수 있습니다. 치안도 굉장히 좋은 편이라 혼자서 당일치기로 시드니의 곳곳을 돌아다녀도 안전합니다. 공원도 굉장히 많아서 마을 단위로 하나씩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시드니대학교 바로 앞에도 빅토리아 공원이 있는데 굉장히 아름답고, 공부를 하다가 중간중간에 쉬고 싶을 때 그곳 잔디밭에 누워서 멍 때리거나 낮잠도 많이 잤습니다. 시드니대학교는 시드니 도심(CBD)으로부터 버스로 15분 정도 거리라 그냥 도심 한 복판에 굉장히 좋은 위치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학교 캠퍼스와 도심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시드니대학교는 도심 중앙에 대학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학교 근처에 살거나 기숙사에 살면 정말 시드니 어디든지 갔다 올 수 있습니다. 흔히들 시드니를 생각할 때 떠올리곤 하는 오페라하우스, 페리 선착장 (서큘러키), 퀸빅토리아건물, 타운홀, 차이나타운 그 모든 곳이 근처에 있어서 내킬 때 가면 됩니다. Central Station (중앙역)도 근처에 있어서 원한다면 근교로도 항상 다녀올 수 있습니다.
기숙사를 신청하게 되면 Queen Marry Building을 가장 흔히들 갑니다. 일단 여기가 기숙사 중에서 가장 싸고, 캠퍼스로부터 10-15분 거리이고, 바로 옆에 Newtown이라고 해서 힙한 카페랑 펍이랑 맛있는 레스토랑이 많고, 대부분의 교환학생들이 살고 있어 교환학생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습니다. 이게 장점이라면 단점은 주차장들 사이에 끼어 있어서 저층의 경우 어둡고 창문을 열어도 자동차와 눈이 마주칠 뿐이며, 싱글룸이긴 하나 화장실/샤워실은 밖에 있기 때문에 화장실을 최대한 덜 가도록 물을 안 마시게 되며, 처음에 주는 단 하나의 카드키를 들고 방문을 열어야 하기에 나갈 때마다 노심초사 카드키를 챙겨야 하며 (카드키 두고 나오면 다시 구매해야 함, 1층 리셉션까지 내려가서 직원 데려와야함), 공용 주방이 매우매우매우 더럽습니다.
학교 건물은 외국 드라마에 나오는 캠퍼스 그 자체입니다. Quadrangle로 불리는 건물은 매해 신입생들이 ‘호그와트 같다’며 사진을 열심히 찍는 상징적인 곳입니다. 여긴 관광객들도 와서 사진을 찍을 정도로 예쁩니다. 그리고 실제로 거기에서 수업을 진행합니다. 그 앞 잔디밭에서 학생들이 눕거나 앉아서 떠들고, 랩탑으로 과제를 하곤 합니다. 도서관도 Fisher Library(중앙도서관격), Law Library, Science-tech Library 등 다양하게 존재하고 스터디 공간 (Learning Hub)은 건물마다 존재합니다. 횡단보도 하나를 기점으로 동서로 캠퍼스가 구분된 구조인데 서쪽이 이공계 계열 단과대들이, 동쪽이 문과 계열 단과대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동쪽의 문과대 캠퍼스는 연세대학교 중앙로와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북쪽으로는 간호대, 의대 건물이 있는데 이쪽에 Oval이라고 해서 럭비, Australian Football 등을 할 수 있는 잔디밭이 있습니다. 교내에 피트니스 센터, 수영장, 실내 클라이밍장, 안경점, 카페, 레스토랑 등이 존재합니다. 가장 특이한 것은 Manning Bar, Hermann’s Bar 이라고 바가 있다는 것인데, 이곳에서 매주 공연이나 파티가 진행되곤 합니다.
III. 출국 전 준비 사항
크게 세가지로 비자 획득, 건강보험 획득, 비행편 예매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자(subclass 500)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를 준비하는 자세한 과정들은 이미 많은 블로그들에 올라와 있으니 가장 현실적인 팁들만 주자면, 첫번째로 가능한 빨리 비자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보통 해당 비자는 결과가 진짜 빨리 나오기는 하는데 (저의 경우에는 지원을 하자마자 바로 승인 메일이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결제하자마자 자동으로 승인된 꼴) 혹시라도 문제가 있는 경우 호주의 Home Affair 측으로 연락하는 과정이 굉장히 복잡하고 느리다고 들었습니다. 시드니대학교 측으로부터 eCoE를 받고 다른 서류들을 얼른 구비해서 가능한 빨리 신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계좌 잔액증명서 떼는 게 본인 통장에 6개월 기준으로 1000만원 이상 있는 것을 권유하는데, 이게 어려울 경우에는 부모님의 계좌로 증명하고 가족관계증명서를 영문으로 첨부할 수 있긴 하지만 복잡하다고 들었습니다. 가능하다면 본인 계좌로 잔액증명서를 영문으로 떼는게 편하긴 합니다. 또한 정성적으로 글을 쓰는 서류도 있는데 이것 역시 다양한 블로그들을 참고해서 신경쓰셔서 써야 합니다. 비자 획득 과정에서 가끔 건강검진을 제출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불안하다면 비자를 신청할 때 건강검진 결과를 미리 송부해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속설로는 1년 비자만 건강검진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제가 만난 한학기 교환학생들은 전부 건강검진 안했습니다. )
건강보험(OSHC)은 학교 측에서 제안을 해줄 것이라 해당 보험사에서 해도 되고, 원한다면 다른 보험사를 선택해도 됩니다. 이때 학교에서 추천하는 보험사의 건강보험을 구입하기 전에 꼭 날짜를 확인하셔야 합니다. 보통 개강 1주일 전부터 건강보험 효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뜨는데, 저는 이보다 일찍 입국하기 위해서 건강보험 회사에 전화해서 날짜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저처럼 날짜를 수정하지 않고 그냥 건강보험 계약 날짜보다 일찍 들어온 다른 나라 친구들도 꽤나 존재하긴 했는데, 제가 알기로는 법적으로는 불법입니다. 혹시라도 입국할 때 문제가 될 소지를 없애고 싶다면 이 부분도 반드시 확인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비행편의 경우 직행 또는 경유를 고르시게 될 텐데 가능한 빨리 예매하는 것이 돈을 아낄 수 있습니다. 추천하는 것은 개강하기 1주일 전까지는 무조건 입국하시는 것입니다. 개강 직전 주는 Orientation week라고 해서 다양한 캠퍼스 내외 활동을 통해 친구를 사귈 수 있기에 그 전에 도착하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직행은 국적기와 호주에서 운영하는 Jetstar 정도가 있는데, Jetstar은 싼 대신 싼 값을 할 것입니다.. 물론 장거리 비행이라 호주 내에서처럼 악명이 높지는 않으나, 저희 부모님은 수하물을 받는 데까지 3시간을 수하물 픽업 지점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경유를 하고자 하신다면 무조건 싱가포르로 가셔야 합니다. 저는 필리핀항공을 통해 마닐라를 공유해서 멜버른으로 입국한 케이스인데 비행기 지연만 5시간이 넘었고 그 와중에 위탁수하물도 분실했습니다. 일부러 수하물이 자동으로 옮겨질 수 있게 같은 항공사를 연결편으로 산 것인데 제 짐을 홀라당 마닐라에 버려두고 떠났더라구요^^ 이에 대한 사후 문제도 책임져주지 않아 외롭고도 힘든 싸움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입국할 때는 마음과 몸이 편할 수 있도록 돈을 조금이라도 더 쓰더라도 괜찮은 비행기를 예매하시기를 적극적으로 권장 드립니다.
한국에서 사가야하는 물품들 리스트는 수많은 워홀러 분들이 잘 정리해둔 것이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콘텍트 렌즈(호주에서는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 렌즈 구매 가능), 마스크팩(호주에서는 한국의 5배 가격/자외선이 매우 강해서 마스크팩을 살기 위해 해야 함)과 호주/한국 돼지코를 동시에 쓸 수 있는 콘센트(만능템)였습니다.
IV. 학업 및 현지 생활 안내
입국 후 초반 1주일이 가장 바쁘면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을 것입니다. 먼저 계좌를 개설하고 카드를 발급받아야 합니다. 보통은 Commonwealth라는 은행에서 하는데, 이때 학교 내 지점은 사람들이 많이 몰리기 때문에 Redfern이나 Newtown 지점을 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때 카드가 우편으로 발송되기 때문에, 반드시 ‘거주하는 곳’ 주소가 있을 때 신청하셔야 합니다. 호텔과 같은 임시 숙소는 아예 불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USI 관련 메일도 줄 텐데 그것도 잊지 않고 사용해서, Opal Concession(교통카드) 발급받을 때 써야합니다. 일반적인 Opal 카드에 절반 가격이기에 반드시 빠르게 신청해야 돈을 아낄 수 있습니다. 이외에 생활적으로 필요한 다양한 살림살이들을 사야 하는데 학교 근처 Broadway 쇼핑몰에 있는 Kmart 또는 Target에서 사는게 가장 경제적으로 합리적입니다. 겨울에 도착하시는 분들은 Kmart에 있는 전기장판 적극 추천합니다. 식자재의 경우 다양한 선택지가 있으나 가장 저렴한 곳은 Coles 또는 Woolworths입니다. Coles는 브로드웨이 쇼핑몰에 있어서 보통 대부분 시드니대 학생들은 모든 것을 브로드웨이 쇼핑몰에서 해결합니다. 여기서 야채, 고기, 과일, 빵, 간식 등을 구매하시면 되고 한국인이라면 결국 반드시 한국음식 재료가 필요하게 될 것인데, 이때는 아시안마켓에 가시면 됩니다. 학교 근처에 GR Buy, 퀸메리빌딩 근처에 Oriental Express를 자주 이용했고 한인마트를 가야할 경우에는 Townhall쪽에 있는 Cosmos에 갔습니다. 코스모스의 경우 한국으로 택배도 보내주는 서비스도 있어서 귀국할 때쯤에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래도 찾는 게 없다면, 호주 내 최대 규모 한인 타운인 Strathfield에 가면 하나로 마트도 있습니다.
수업의 경우 실시간 줌으로 수업을 듣거나, 오프라인으로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시간표를 짜실 때 이미 고르실 수 있어서 보고 편한대로 결정하면 됩니다. 수업은 총 4개를 듣게 되고, 보통 Lecture 2시간과 Tutorial 1시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Lecture은 출석 체크를 안 해서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자유롭게 참석하시면 됩니다. 모든 수업은 녹화되어 동영상이 Canvas (ETL 같은) 업로드 되기 때문에 렉쳐 참석에 대한 부담감은 없지만, 튜토리얼은 출석 체크를 정확하게 하고 3번 이상 안 올 경우 해당 수업에서 Fail을 받을 수 있습니다.
III.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후회 없는 최고의 한학기였습니다. 힘들고 외로웠던 순간도 분명 존재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굉장히 사소한 것들이 저를 행복하게 해주었습니다.
수업을 듣다가 뛰쳐나가서 공원 잔디밭에서 누워서 맡던 봄바람의 향기, 잔잔한 물결을 드리우던 보라빛 석양, 바닷가에 비치 타월을 깔고 누워 맞이하던 강렬한 햇빛과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 부시워킹을 하며 달궈진 몸을 물웅덩이에서 식히는 시원함,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 양 옆의 자카란다 꽃잎이 날리는 모습, 길 모퉁이에 있는 카페에서 마시는 플랫화이트의 고소함, 친구들과 브런치 카페에서 떠들던 기억, 펍에 가서 리듬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던 감각..
내킬 때 언제든 훌쩍 떠나 원하는 곳을 유랑하면서 지내는 것이 무척 행복하고 자유로웠습니다. 좋아하는 자연이 도처에 깔려 있어, 저는 구글맵에 가고 싶은 모든 공원, 부시워킹 트랙, 해변가를 지정해 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시드니는 제가 훌쩍 떠날 수 있을 만큼 교통편이 구석구석까지 연결되어 있었고, 혼자 다녀도 무방할 만큼 안전했습니다. 덕분에 시드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나중에는 로컬들보다도 더 많이 시드니를 탐험하고 만끽했습니다. 관광객들이 잘 가지 않는 좋은 바닷가나, 유명하지 않지만 좋은 트랙들, 브런치 카페들이 많이 모여 있는 동네 등 저만의 카테고리 하에서 좋은 곳들을 찾아가면서 학업 외 시간을 잘 보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