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교환 파견 동기
사실, 교환학생을 가기로 결심한 데에 뚜렷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어서 여행이 아닌 공부나 생활 목적으로 타지에서 오래 지내보고 싶다는 막연한 욕구가 항상 있었고, 코로나19로 대학생활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기에 코로나가 잠잠해지는 대로 해외에 가겠다는 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무의식적인 열망들이 쌓여있었기 때문에, 종강 후 별 생각없이 있다가 친구에게서 곧 교환학생 모집 공고가 뜬다는 소식을 듣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자리에서 신청하기로 결정할 수 있었지 싶습니다. (어학시험도 3일 전에 신청해서 부랴부랴 점수를 땄는데, 졸업학년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저학년의 객기처럼 느껴지는군요.)
II. 파견대학 및 지역 소개
1. 파견대학/지역 선정 이유
미국과 유럽은 많은 학생들이 ‘해외’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지역일 것입니다. 저는 해외에서 지내는 것도, 자취를 하는 것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적응이 편한 지역,’ ‘여행을 다니기 좋은 지역’이 최우선 선정 기준이었고, 언어적 장벽이 비교적 낮은 영미권으로 후보를 좁혔습니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가장 많이 가고, 또 그래도 여행으로 가본 경험이 있는 미국을 가장 먼저 고려했습니다. 그러나 대도시권에 위치한 미국 대학들은 경쟁률이 지나치게 높았고, 다른 학교들은 운전면허가 없는 제가 여행을 다니기에 교통이 애매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으로 선택지를 바꿔서 교통과 관광의 중심지인 런던으로 최종적으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2. 파견대학/지역 특징
제가 다녀온 학교인 SOAS는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의 줄임말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의 역사, 언어, 사회, 개발 등에 관한 학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학교입니다. 저는 외교학 주전공, 서양사학 부전공을 하는 학생으로서 원래부터 탈식민주의와 세계지역연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비록 학업이 교환학생의 주목적이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전공과 연계된 수업들이 매우 다양하고, 학풍이 저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도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SOAS의 또 다른 장점은 교내외 환경이 외국인 학생, 특히 아시아인들에게 매우 우호적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어 전공이 설치되어 있어서 현지인 학생들 중에도 한국어를 할 줄 알고 한국 문화에 관심있는 학생들이 매우 많으며, 중국, 태국, 일본 등 아시아권 교환학생 비율도 높습니다. 각 학교에서 온 한국인 교환학생의 수도 엄청나게 많아서 한국인끼리만 대화해도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습니다. 현지 문화를 최대한 많이 접하고 싶은 분들께는 장점이 아닐 수도 있지만, 덕분에 초반 적응은 매우 수월했습니다.
그리고 SOAS는 대도시인 런던에서도 가장 중심부 쪽에 자리하고 있는 학교입니다. 도보 3분 거리에 영국 박물관이 있고, 학교에서 버스를 타거나 15분 정도 걸으면 쇼핑 거리인 Oxford Street, 문화의 중심지인 Soho와 Piccadilly Circus 등으로도 쉽게 갈 수 있습니다. 저는 뮤지컬 관람을 즐겨 하는데,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뮤지컬의 중심지 웨스트엔드가 Soho 바로 근처에 있어서 학교 끝나고 걸어서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을 보러 가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SOAS 교환학생 대부분이 지내게 되는 기숙사인 Dinwiddy House는 런던에서 가장 큰 기차역들 중 하나인 King’s Cross 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역을 통과하는 언더그라운드 지하철 노선이 5개나 되는데다가, 스코틀랜드나 런던 근교로 가는 기차도 거의 다 여기서 출발하기에 여행 다니기 정말 좋은 위치입니다. King’s Cross 바로 옆에 있는 St.Pancras 역에서는 파리, 브뤼셀, 암스테르담 등으로 가는 유로스타 열차도 탈 수 있습니다. 런던 중심에서 가장 가까운 히드로 공항은 킹스크로스역에서 지하철 Piccadilly Line을 타면 한번에 도착 가능합니다.
III. 출국 전 준비 사항
1. 비자 신청 절차
영국은 6개월 미만 단기체류자는 별도 절차 없이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합니다. 게다가 한국 여권으로는 대면 입국 심사도 필요없이 전자출입국심사대를 통과할 수 있어서 출입국 관련해서는 준비할 게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혹시나 공항에서 증빙서류를 요구할까봐 교환교에 등록이 완료되었다는 enrollment letter와 기숙사 계약확인서 등을 미리 인쇄해가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
2. 숙소 지원 방법
SOAS는 등록 절차가 끝나면 accommodation 관련 메일을 학교 측에서 보내주고, 이때 기숙사도 지원할 수 있습니다. 숙소를 개인적으로 알아보려면 정말 돈과 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웬만하면 이 때 기한을 놓치지 않도록 바로 지원하시길 추천합니다. 상술했듯이 대부분의 교환학생은 킹스크로스역 근처 기숙사인 Dinwiddy House에 지내게 됩니다. 한 플랫 안에서 부엌은 5~8명의 학생이 공유하고, 방은 1인 1실에 개인 화장실이 제공됩니다. 시설이 엄청나게 좋지는 않지만 렌트가 4주에 100만원 정도로, 집값이 사악한 런던에서는 상당히 가성비가 좋은 기숙사이기에 대부분의 교환학생이 여기를 선택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방과 화장실을 혼자 쓸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큰 장점이라
고 생각합니다.
3. 파견 대학 지불 비용(student fee, tuition fee, 기숙사 비용 등)
서울대에 납부하는 등록금 외에 파견교에 등록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내야 하는 비용은 없었습니다. 기숙사는 처음에 신청할 때 60만원 정도를 선지불하고, 나중에 잔금을 내는 방식으로 한 학기 계약금을 선불해야 했습니다.
4. 기타 유용한 정보
짐을 쌀 때 한국에서 쓰던 것들을 많이 가져가겠다는 생각보다는, 웬만한 것들(침구류 등)은 도착한 후에 사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버리고 오겠다는 생각으로 가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저는 원래 쓰던 전자기기(노트북, 핸드폰, 충전기)와 변압기, 화장품, 의류 등 기본적으로 여행 갈 때 필요한 물건들 정도만 챙겼습니다.
2학기에 파견 가시는 분들은 가져가시는 짐에는 가을용 겉옷(후드집업, 후리스 등) 위주로 챙기고, 부피가 큰 패딩 같은 의류들은 나중에 가족들에게 한국에서 부쳐달라고 부탁드리는 게 짐을 줄일 수 있는 길입니다.
IV. 학업
1. 수강신청 방법
수강신청 시기가 되면 학교 측에서 교환학생용 수강신청 사이트 링크를 보내줍니다. 작은 학교이다 보니 우리나라처럼 정해진 일시에 모든 학생이 선착순으로 수강신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트에서 듣고 싶은 모듈을 선택한 후 저장하기만 하면 간단하게 수강신청이 완료되는 방식이었습니다. 해당 term에 개설된다고 학교 사이트에 명시되어 있지만 막상 수신 사이트 강의 목록에는 없는 수업들이 있는데, 이런 수업들은 수업이 열리는 단과대에 따로 메일을 보내서 수강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SOAS는 다른 학교에 비해서 enrollment 마감 자체도 늦은 편이고 수강신청도 정말 늦습니다. 9월 말이 개강인데 9월 초에 와서야 학교에서 수강신청 링크를 보내줬습니다. 그래도 개강 첫 주에 Welcome Week라고 해서 서울대로 따지면 수강신청 변경 기간과 같은 시간이 주어지고 이때 수업을 취소하거나 새로운 수업을 신청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혹시 누락된 것은 아닌가 불안하신 분들은 조금 느긋하게 기다리셔도 될 것 같습니다.
2. 수강과목 설명 및 추천 강의
SOAS의 Political Science and International Studies 전공에는 다른 학교에서 잘 가르치지 않는 지역이나 식민주의 역사학에 대해서 자세히 배울 수 있는 전공수업이 많습니다. 개발학(development studies) 분야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학교이니 관련 전공생이 아니더라도 수업 한 개 정도는 꼭 들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대부분의 강의는 주 2시간으로, 1시간은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lecture, 1시간은 조교님 및 다른 학생들과 소규모로 배정되어 각 주의 리딩 내용에 대해 토론하는 수업인 tutorial로 구성됩니다.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과 토론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고, 리딩 내용 정도는 알고 있어야 활발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리딩을 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저는 수강한 수업 중에 ‘State and Politics in Africa’ 수업이 가장 좋았습니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아프리카 국가들의 역사와 정치에 대해서 한 학기 동안 배웠는데, 교수님이 시각 자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시는데도 말씀하시는 것이 귀에 쏙쏙 박힐 정도로 흡인력 있는 강의였습니다. 수업의 튜토리얼 조에서 공교롭게도 저를 제외한 학생들과 강사님이 모두 아프리카 국적자였는데, 저에게 익숙했던 서양 중심의 가치체계와는 전혀 다른 시각을 접할 수 있어서 수업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같은 내용을 배우더라도 자신의 인종과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V. 생활
1. 가져가면 좋은 물품
-변압기(돼지코): 영국은 대부분의 다른 유럽 국가들(220V)과 달리 230V 전압을 쓰기 때문에, 가져가면 좋은 물품이라기보다는 필수품에 가깝습니다.
-전기장판: 바닥 난방이 발달한 한국과 달리 유럽 국가들은 라디에이터를 주 난방기구로 사용하고, 영국은 기온 자체가 그렇게 낮지는 않지만 해가 잘 나지 않아서 가을에도 으슬으슬하게 추운 날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라디에이터를 바로 켜면 공기가 매우 건조해지기 때문에 전기장판을 가져가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저도 한국에서 안 쓰다가 영국에서 처음 써봤는데 신세계를 경험했습니다.
-실내용 슬리퍼: 기숙사 방바닥에 카펫이 깔려있어서 먼지가 굉장히 자주 끼고, 맨발로 걸어다니기 상당히 껄끄럽습니다. 현지에서 사도 되지만 이후 다른 국가를 여행할 때도 개인 슬리퍼가 있으면 좋기 때문에 한국에서 튼튼한 제품으로 사가시면 첫날에도 쾌적하게 방을 걸어다니실 수 있습니다.
-배수구 거름망: 화장실 배수구에 끼워놓으면 화장실 청소를 하는 수고를 몇 배는 덜 수 있습니다.
-한국 관련 기념품: 이건 제가 안 가져가서 가져갔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던 물건입니다. 교환학생을 하며 플랫메이트들을 비롯해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만났는데 한국 기념품을 선물했으면 특별히 기억에 남았을 것 같습니다. 연필이나 지우개, 자석 등 작은 기념품도 좋으니 대량으로 가져가서 친구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것들이면 좋습니다. 참고로 런던, 특히 SOAS 근방에는 한인마트가 굉장히 많습니다. 라면, 김치, 쌀, 각종 양념은 물론이고 심지어 과일맛 소주(!)도 종류별로 살 수 있을 정도이니 한국 음식은 많이 챙기실 필요 없습니다.
2. 현지 물가 수준
런던은 장바구니 물가는 한국보다 싸지만, 외식, 교통, 관광 등 다른 물가는 세계적으로도 악명이 높을 정도로 사악한 수준입니다. 대충 인력(人力)이 들어가는 모든 것이 비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1인용 간편 식당 같은 곳을 가도 최소 8~10파운드는 줘야 한 끼를 먹을 수 있습니다. 교통비 또한 사악하기로 유명한데, 한 번 지하철을 탈 때마다 3~4천원 정도 드는 수준이라서 한국에서 타던 것처럼 지하철을 자주 타기는 부담스럽습니다. 과소비를 방지하고 여행을 많이 다니려면 평소 음식은 웬만하면 직접 만들어먹고,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까지는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3. 식사 및 편의시설 (식당, 의료, 은행, 교통, 통신 등)
(1) 식사
현지 식료품은 Sainsbury’s, Tesco, Waitrose 등 마트에서 구할 수 있고 모두 기숙사에서 걸어서 10분 내에 있습니다. 가격은 Tesco가 가장 저렴하고 Waitrose가 가장 비쌉니다. 저는 Tesco보다 물건 종류가 다양한 Sainsbury를 가장 많이 이용했습니다. 다만 Waitrose가 품질이 좋아서 싱싱한 과일이나 채소를 살 때는 Waitrose를 추천합니다.
(2) 의료
영국은 NHS라고 하는 국가 운영 의료시스템에 따라서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국내 체류자에게 1차 병원(GP) 진료가 무료입니다. 그 대신 대기줄이 정말 길고, 1차 병원에서는 기본적인 수준의 처방과 응급처치만 해주기 때문에 그 이상의 진료가 필요하다면 1차 병원의 처방을 받아서 2차 병원에 가야 합니다. 2차 병원은 진료가 유료이고, 웬만큼 심각한 경우가 아니라면 2차 병원으로 보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1차 병원도 주치의를 등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데 제가 경험할 일이 없어서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는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외국에서 크게 다치거나 아플 상황이 걱정되시는 분들은 비자를 발급받아놓고 정식으로 주치의 등록을 하셔도 괜찮겠지만, 저는 그냥 한국 여행자보험에 의존했습니다.
(3) 은행
런던은 일상에서 현금을 거의 쓰지 않고, 오히려 카드만 받는 상점도 많을 정도로 카드나 애플페이 사용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심지어 길거리 버스킹에서도 카드결제를 받습니다!). 그래서 저는 파운드화 현금 환전을 아예 해 가지 않았는데, 혹시 모를 상황이 있으니 애플페이 사용자가 아닌 분들은 카드 분실에 대비해 현금을 환전해두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참고로 유럽 본토 국가들은 아직 카드가 안 되는 곳이 많기 때문에 다른 나라 여행 계획이 있으시다면 유로화/현지 통화를 꼭 미리 환전해가시기 바랍니다.
저는 한국에서 트래블월렛과 하나비바X, 두 종류의 체크카드를 만들어 가져갔습니다. 트래블월렛(비자카드)은 충전식 카드로, 원화를 현지 통화로 바로 환전해서 충전해둘 수 있고 여러 종류의 통화를 충전하는 것도 가능해서 가장 많이 사용했습니다. 하나비바(마스터카드)는 충전을 안 하고 바로 결제할 수 있는 대신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데 시간이 걸리고 실시간 환율로 바꿔서 원화로 결제되기 때문에 자주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아주 가끔 비자카드가 결제가 안 되는 곳도 있고, 핸드폰이 방전됐는데 트래블월렛에 잔액도 없고 현금도 없으면 매우 난감하기 때문에 비상용 여분카드를 가지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교환학생들의 경우 영국 현지계좌 및 카드는 Monzo가 가장 개설하기 간편합니다. 우리나라의 카카오뱅크처럼 몇 단계만 거치면 비대면으로도 계좌 개설이 가능합니다. 현지계좌가 있으면 한국인이 아닌 학생들과 놀러가거나 음식을 사먹고 정산을 해야 될 때 편리합니다.
(4) 교통
런던은 모든 대중교통을 컨택리스가 되는 체크카드 하나만 있으면 이용 가능합니다. 사실 이건 우리나라도 똑같기 때문에 영국에 있을 당시에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유럽 본토를 여행할 때 아직도(!) 대중교통에서 종이 표를 뽑아야 하는 나라가 대부분인 것을 보고 영국이 얼마나 기술적으로 발달했는지 느꼈습니다.
다만, 이건 유럽 전역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아래 기술하는 모든 대중교통에서 파업을 정말 자주 합니다. 특히 기차는 한 달에 일주일 정도는 파업을 할 정도로 심하니 기차여행을 계획하신다면 반드시 그 달 초에 National Rail 홈페이지에서 파업 날짜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버스: 우리가 영국 하면 흔히 떠올리는 빨간색 2층 버스가 일상생활 이동 시 타는 버스입니다. 지하철 요금이 워낙 사악해서 부각되지는 않지만 버스 요금도 한국보다는 비싸기 때문에 너무 자주 타지는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런던 근교로 나가는 웬만한 고속버스(코치)는 킹스크로스에서 여섯 정거장 정도 거리인 Victoria Coach Station에서 탑승 가능합니다.
-지하철: 런던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요소 중 하나가 지하철(언더그라운드)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인 만큼 노선 수도 많고 이용객들도 많은데, 어떻게 이런 열악한 시설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상술한 대로 요금이 매우 사악한 편인데, 열차 너비는 서울 지하철의 절반 남짓으로 매우 좁은데다가 열차에 에어컨도 없고, 지하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인터넷이 전혀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배차간격이 매우 짧은 것은 장점입니다. 런던 지하철만의 기묘한 정체성이 있어서 도시에서도 관광 상품으로 열심히 밀고 있는 듯하니, 종종 놀러갈 때 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저는 지하철을 그다지 자주 타지 않았기 때문에, Oyster 교통카드는 굳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기차: 런던 근교나 스코틀랜드 등으로 기차 여행을 많이 다니실 계획이라면 Railcard를 발급받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국내선 한정으로 Railcard가 있으면 티켓값을 30% 할인받을 수 있습니다.
4. 학교 및 여가 생활 (동아리, 여행 등)
(1) 영국 내 문화생활
-뮤지컬: 연극, 뮤지컬 공연은 TodayTix 앱을 사용해서 예매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입니다. 그밖에 TKTS라는 사이트나 각 극장 및 공연 사이트를 통해서도 표를 구할 수 있습니다. 투데이틱스에서 공연 당일 오전에 Rush ticket이라고 해서 남는 표들이 원가의 20~30% 정도 되는 매우 저렴한 가격에 풀리곤 하는데, 운이 좋으면 꽤 앞자리를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에 갈 수 있는 기회이니 꼭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박물관·미술관: 영국 내 박물관과 미술관들은 거의 대부분 입장료가 무료입니다. 이건 미술관과 박물관을 주 관광 수입원으로 삼는 유럽 내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엄청나게 큰 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 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모던과 테이트 브리튼 등 런던의 명소들뿐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와 글래스고 등도 예술로 매우 유명하니 각지의 미술관을 꼭 한 군데는 방문해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2) 유럽 타 국가 여행
-교통편: 유럽 본토에서 여행을 다닐 때는 비행기보다도 기차와 버스를 정말 많이 이용하게 됩니다. 저는 Omio와 Trainline 앱을 주로 이용했습니다. 국가 간 이동을 하는 교통편들도 국경이 붙어있으면 거의 5만원 이내로 예매를 할 수 있습니다.
-숙소: 저는 에어비앤비를 주로 이용했습니다. 일반 가정집에 머물 수도 있고 호스텔이나 호텔을 예약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가정집에 지낼 때의 장점은 현지인 호스트에게 그 나라에 대한 정보를 얻거나 문화적인 교류를 할 수 있고, 개인 공간이 없는 호스텔과는 달리 방을 혼자 쓸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혼자 다니는 여행객이라면 낯선 사람의 집에서 지내는 것이 껄끄러울 수 있고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후기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호스트를 고르신다면 어디에서도 하기 힘든 귀중한 경험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뮌헨을 여행할 때 묵었던 에어비앤비 호스트 분이 굉장히 친절하셔서 같이 독일 맥주를 먹으며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한국 음식을 제가 직접 요리해드리기도 했는데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5. 안전 관련 유의사항
런던은 이민자 인구가 굉장히 많은 도시이고, 상술한 대로 SOAS 근처에 매우 규모가 큰 차이나타운이 있어서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거의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이민자가 많은 만큼 빈부격차도 심해서 지하철역 근처 길거리에 홈리스들이 많으니 밤에 혼자 역 근처에 가실 일이 있다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영화에 나올 법한 강력범죄 용의자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혼자 있으면 다가와서 돈 달라며 말을 걸기도 하는데 꽤 무섭습니다.
유럽에서는 특히 소매치기를 조심하셔야 합니다. 저는 소매치기를 당할까봐 앞으로 멜 수 있는 힙색을 가져가서 여권, 지갑 등 중요한 것들은 꼭 힙색에 넣고 다녔고, 관광지에 갈 때는 백팩에 자물쇠를 채워서 다녔습니다. 공항이든 어디든 소지품을 두고 자리를 비우는 것은 금물입니다(심지어 학교 도서관에서도 노트북을 두고 자리를 비우지 말라는 안내가 붙어있더군요). 가장 도둑맞기 쉬운 것은 핸드폰인데, 항상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곳에 두시고, 주머니에 넣을 때는 손에 꼭 쥐거나 지퍼를 잠그시기 바랍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공기계를 들고 가시는 것도 좋습니다.
그나마 영어가 통하는 런던에서 잃어버리면 경찰 신고라도 할 수 있지만, 프랑스나 스페인처럼 영어가 잘 안 통하는 국가에 여행갔을 때 소매치기를 당하면 정말 곤란해질 수 있으니 미리 조심하시는 것이 답입니다.
6. 기타 유용한 정보
-Primark라는 체인 매장에서 옷이나 침구류를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습니다. 품질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나 교환 생활 끝나고 버리고 갈 침구류 등은 여기서 구매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교환 기간이 끝나고 여행을 더 다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실 분들은 기숙사 체크아웃이 다가올 즈음 한국으로 미리 무거운 짐을 부치시는 것이 좋습니다. SOAS 근처 Tottenham Court Road에 ‘서울프라자’라고 하는 한인마트 겸 우체국이 있는데, 일반 해외특송과는 달리 한국으로만 부칠 수 있는 택배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고, 운영자도 한국 분인데다가 가격도 해외특송치고 저렴한 편입니다. 한국에 도착하기까지 일주일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DHL이나 EMS 등 일반 우편 시스템은
택배 물량이 밀리면 지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이곳에서 부치는 것이 유리합니다.
Ⅵ.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교환학생을 갈 때 큰 계획이나 기대가 없이 갔는데 결과적으로 굉장히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행을 주로 혼자 다녔는데, 처음으로 저 혼자서 생활부터 해외여행까지 모두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경험을 한 것이 가장 큰 자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4개월 동안 영국을 포함해 8개국, 30여 개의 도시를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고 교환학생을 가기 전과 비교해서 가치관에 큰 변화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는 불안하고 막막하기도 했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새로운 경험들을 하면서 4학년이 되기 전 삶의 버팀목이 될 기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특히 교환학생을 가 있는 동안 카타르 월드컵이 열려서 말 그대로 전세계 학생들이 하나가 되는 감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경험을 한 것뿐 아니라, 한국에서 보냈던 생활을 외부에서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앞으로의 미래와 삶의 방향에 대해 이성적으로 고민해볼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습니다. 교환학생을 신청할 당시에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지만, 저는 3학년 여름 즈음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타이밍 좋게 외국에 나가서 마음을 환기하고 돌아온 덕분에 지금 학교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주변 환경과 인간관계가 사실 절대로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 한국에서의 제 일상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낯선 외국에 처음으로 혼자 간다는 불안 때문에 초반에 다소 소극적이고 경계하는 마인드로 다녔던 것입니다. 교환교에 한국인이 너무 많아서 현지 친구들을 사귈 필요성을 잘 못 느꼈던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해외에 나가서는 안전이 최우선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더 적극적으로 현지인에게 말도 걸어보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도 대화를 시도해보면서 새로운 경험에 도전할걸 그랬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