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교환 프로그램 참가 동기
대학 이외의 곳에서 장기 해외 체류 경험을 쌓기란 쉽지 않기에 교환 프로그램 참가를 결정했습니다. 아름다운 곳에서 1년간 충분히 쉬고,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생활을 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II. 파견대학 및 지역 소개
제가 다닌 대학은 ‘Università Ca' Foscari Venezia’로 그 유명한 이탈리아 베니스 본섬에 있는 대학입니다. 이탈리아 내에서는 물론 유럽 내에서, 특히 언어 쪽으로 명망이 꽤 높다고 합니다. 외국인 유학생의 비율이 매우 높은 것도 특징입니다. 교환학생 역시 많은 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이탈리아인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의 모교이기도 합니다.
베니스는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섬입니다. 예로부터 상업이 발달하였고,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잘 알려진 곳입니다.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베니스는 정말 특수한 곳입니다. 아주 작은 크기(섬의 양쪽 끝까지 걸어서 한 시간 남짓)에 차도가 없으며 차, 자전거, 심지어 킥보드까지 금지된 곳. 이동수단은 오직 배와 두 다리뿐입니다. 모든 건물이 굉장히 오래되었고 물 가까이 있다 보니 무너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그러나 정말 아름답습니다.
III. 출국 전 준비 사항
비자, 항공권, 그리고 머물 곳만 준비되면 솔직히 준비 완료입니다. 그러나 저는 비자를 발급받기까지 진땀깨나 뺐습니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이탈리아 대사관은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제 경우 여러 블로그와 대사관 홈페이지를 정독하고 비교하며 서류를 열심히 준비해 갔습니다만, 그런데도 빼먹은 부분이 있어 대사관 근처 동사무소와 인쇄소를 몇 번씩 오가며 정말 고생한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꼭!!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준비해 가시기 바랍니다.
제 경우 학교와 연계된 사설기숙사 혹은 플랫(셰어하우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요, 아무래도 계약이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기숙사가 좋을 것 같아 기숙사를 선택했습니다. 사설기숙사는 직접 알아보고 연락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무엇도 해주지 않습니다. 베니스 본섬에서 가장 신식에 시설이 좋은 기숙사는 Camplus Santa Marta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베니스의 건물들은 모두 오래되었기 때문에 나머지 기숙사들의 퀄리티는 다 비등비등합니다만, 제가 머물렀던 Collegio A.M.D.G. (구 Residenza Universitaria Gesuiti)는 그중 단연 최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점을 나열하면 끝도 없기에 이만 말을 줄입니다. 이 기숙사는 피하세요.
아, 그리고 해외송금 어플, 해외수수료 없는 신용/체크카드는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가시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저는 게을러서 해외송금 어플을 이탈리아에 도착한 후 깔았더니, 이것저것 문제가 많아 유럽의 다른 나라에 체류 중인 친구에게 매번 부탁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IV. 학업 및 현지 생활 안내
제 경우 교환교에 제 전공과 맞는 학과나 수업이 없어 애초에 학점인정을 받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부담 없이 듣고 싶은 수업을 신청해서 들었답니다. 그리고 대부분 유럽 대학에는 출석 점수가 없습니다. 덕분에 여행은 실컷 다니고 시험기간 며칠 정도만 공부에 투자해도 괜찮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어요. 저는 첫 학기에는 인문 쪽 수업을, 그다음 학기에는 상경계열 수업을 들었는데요, 인문학 수업은 주제에 관심만 있다면 아주 재미있게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팟캐스트를 듣는 느낌으로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상경계열은 재미가 없었습니다. 대신 한 학기가 두 term으로 나뉘어 짧게짧게 진행된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저는 4th term에 여유롭게 놀고 싶어서 3rd term에 몰아서 수업을 들었답니다.
수업은 교환학생이 들을 수 있는 수업이라면 모두 제한 없이 수강신청을 할 수 있어요. 심지어는 같은 시간에 진행되는 두 개 이상의 수업도 신청 가능합니다. 다만 수강과목 변경 시 언제나 Incoming Mobility와 미리미리 연락해 두는 것이 편합니다. 제 경우 과목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서로 착오가 있어,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성적을 받기 위해 수십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는 등 고군분투해야 했습니다. 초장에 확실히 해놓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답변도 느리고 학생 메일을 무시하는 일도 흔하기 때문에 끈질기게 나오셔야 합니다. 하하!
현지 생활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먼저 이탈리아에서 속도를 바라시면 절대 안 됩니다. 모든 면에서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셔야 합니다. 정말정말 모든 것이 느린 나라입니다. 답변도, 발급도, 공사도, 계산도, 서빙도, 요리도 느립니다. 이점 꼭 마음에 새기셔야 합니다.
현지 마트에서 웬만한 생필품을 모두 구할 수 있어요.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 들고 가지 않아도 됩니다. 차라리 옷을 더 많이 챙기세요. 카메라가 있으신 분은 꼭 챙기세요. 사진 정말 많이 찍게 됩니다. 마트 물가는 저렴한 편입니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 그리고 끝내주는 치즈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식재료가 싸고 레스토랑이 비쌉니다. 그래서 저는 피자와 케밥을 제외하고는 외식을 거의 하지 않고 기숙사 부엌에서 항상 밥을 해 먹었습니다. 한국 식재료도 버스 타고 육지에 가면 구할 수 있습니다. 규모가 작은 편이긴 하지만 아시안 마트가 몇 개 있습니다. 한국 식재료는 많지 않은 편이나, 대신 저는 중국 식재료를 애용했어요. 대체품이 많습니다.
베니스는 거주자에 한하여 Unica Card라는 교통카드를 발급해 줍니다. 자동 발급되는 것은 아니고 서류를 구비하여 Unica 사무소에 가서 신청해야 합니다. 이 카드를 발급받기만 하면 교통비 부담이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Unica 카드로 베니스 Piazzale Roma 역에서 Marco Polo 공항까지 20분 이내에 단돈 1.5유로로 갈 수 있습니다.
유럽대학 학생인증을 하면 아마존 프라임을 무료로 몇 달 사용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초반에 아마존으로 이것저것 시켜서 아주 유용하게 썼습니다. 배송도 무척 빠릅니다. 이외에도 학생인증을 하면 이것저것 할인받을 수 있는 쇼핑몰이 많으니 적절히 이용하시길 바랍니다. ASOS 같은 의류 쇼핑몰부터 라이언에어, 플릭스버스까지 다양한 학생 혜택이 있습니다. 미술관, 박물관, 유적지는 당연하고요. 유럽은 정말 학생 친화적인 곳입니다.
인종차별 있습니다. 베니스는 워낙 사람이 많은 관광도시라서 인종차별이 심하지 않은 편인데요, 며칠에 한 번씩 니하오 소리를 듣는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아주 미미한 편입니다. 유럽 전역을 여행하다 보면 세상에는 각종 인종차별이 참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여성분들의 경우 아시안 페티쉬가 있는 각국의 남성들이 접근하는 때도 정말 많습니다. 단호하게 대응하셔야 합니다. 처음에는 기분이 나쁘고 하루종일 속상하겠지만, 저는 무시하는 법을 터득하여 나중에는 신경조차 안 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각자의 방법으로 인종차별을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V.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제 인생에 다시 없을 시간이었습니다. 힘들지 않았냐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홀로 하는 타지살이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특히나 영어권도 아니고, 버스 하나 탈 수 없는 곳이니 더더욱요. 그러나 힘든 만큼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 좋아하는 장소와 음식, 나만의 산책 루트, 마트에서 장을 보던 순간까지 무엇 하나 빠짐없이 소중합니다.
너무 늦지 않았나 고민하시는 분들, 비용이 걱정이신 분들, 언어장벽이 두려우신 분들께 감히 조언합니다. 일단 도전해 보세요.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맛있고 저렴한 피자와 젤라또, 쏟아지는 햇빛과 아름다운 윤슬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