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교환 프로그램 참가 동기
저는 서울대 중문과 대학원에 진학한 후 중국대륙문학을 위주로 공부하다가, 박사과정 진학 후 국내 연구가 상대적으로 저조한 대만과 홍콩의 현대문학 및 영화 연구에 주력하고자 하였습니다. 유년시절 홍콩·대만 등 중화권 영화에 탐닉하였던 경험이 제 정서의 바탕이기도 하고, 또한 문학에서 드러나는 성별·아동·가정 등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이 분야에 있어서 저명한 교수님들의 연구가 많이 축적되어 있는 대만에서 공부하고 교류하며 시야를 넓히고 많은 경험을 쌓고 싶었습니다.
이에, 현지에서 머물며 연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적극 모색하였고, OIA의 교환학생 프로그램 설명회를 들어본 후, 저에게 꼭 필요한 기회라는 판단이 들어 지원을 결심했습니다.(홍콩은 주로 광동어를 사용하기에 고려대상에서 제외하였습니다.) 지도교수님들과 상담 후 교환 프로그램 참가를 추진하게 되었고, 준비기간을 거쳐 감사하게도 제가 가장 선호했던 국립대만대학교로 파견이 결정되었습니다.
덧붙이자면, 또 하나의 주요한 동기는 중국어였습니다. 저는 학부부터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줄곧 중문학을 전공했지만, 한국에서만 수학했기에 중국어로 대화해볼 기회가 거의 없었고, 회화(특히 학술영역의)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습니다. 저는 대만대가 외국인 학생들에게 양질의 고급중국어 과정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 기회를 통해 중국어 능력을 향상시키고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국어 실력 향상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II. 파견대학 및 지역 소개
대만대는 쉽게 대만의 서울대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당연히 학교의 위상이 높거니와 교수님과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열정과 성실한 태도는 정말 본받을 만하고, 그만큼 자부심도 큰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대만대학교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저는 대만의 여러 대학들을 탐방해봤고, 타이베이의 여러 관광지들도 여행해봤지만, 누가 추천장소를 묻는다면 대만대를 꼭 가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정문에서부터 중앙도서관에 이르기까지 양쪽으로 쭉 이어지는 야자수들은 대만대의 상징입니다. 두 학기동안 등하교하면서도 볼 때마다 매번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아침에는 햇살 아래 우뚝 솟은 야자수들에게 기운을 받고, 밤에는 캠퍼스에 조명이 켜져 낭만을 더하며, 비오는 날은 비오는 날대로 운치가 있습니다. 학교 내 호숫가에는 오리와 각종 새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저녁나절이면 인근 주민들이 아이들과 반려견을 데리고 캠퍼스로 산책을 오기도 합니다.
캠퍼스 내 각종시설과 서비스도 훌륭한 편이라 하겠습니다. 인프라로 인한 불편은 거의 겪은 바 없으며, 한국에 비해서는 아직 아날로그 방식이 많은 편이긴 하나, 적응은 어렵지 않습니다. 학교가 커서 내부에서 이동할 때는 자전거를 이용하며, 유바이크가 많아 편리합니다. 도서관도 여러 곳에 있고, 학생식당은 저렴하고, 학교 주변에도 식당이 매우 많기 때문에 식사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아도 됩니다.
[외부 거주 관련]
타이페이는 이미 한국인들에게 꽤나 익숙한 관광지이기 때문에, 도시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보다는 학교 외부에서 방을 구하고 거주했던 경험에 대해 써보고자 합니다. 대학원생의 경우는 기숙사 배정이 안 되는 경우가 있거나, 다인실의 기숙사가 불편해서 외부 자취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기숙사를 신청했지만, 배정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통보받았습니다.
그리하여 대만에 도착하기 전 한국에서부터 ‘591(https://www.591.com.tw/)’이라는 대만 최대 부동산포털 사이트를 통해 집 사진을 먼저 보고, 마음에 드는 집을 추려 중개사 또는 집주인에게 연락하여 집을 볼 약속을 정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지에 가서 약속한 날짜에 중개사 등을 만났고, 다들 대체로 매우 친절했고 시간 약속도 잘 지켰기에,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과정에서 마음이 상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이트에 올라온 방 사진이 많이 보정되어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 가보니 방들은 거의 사진과 다름없었습니다. 문제는 바로 건물 외관과 층계, 복도, 그리고 집 주변 골목 환경이었습니다. 방 상태는 너무나 좋았지만 건물이 30년 이상 되어 외관이 낡은 집들이 매우 많았고, 그에 비해 월세가 너무 비싸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또한 집 주변에 취두부를 파는 가게가 있어 냄새가 심하거나, 다소 음침한 분위기의 골목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집을 구할 때 반드시 집 내부/외부환경을 전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총 열 개의 집을 본 후, 대만대 정문에서 가까운 타이디엔따로우(台電大樓) 근처의 내부 리모델링한 집을 계약하였습니다. 가전/가구 풀옵션이면서 깨끗하고, 대만대에서 가깝고, 주변 환경이 안전하고 1층에 식당이 없는 집(바퀴벌레 출현 가능성이 적은)을 계약하려면 거의 한화로 월세 100만원 이상입니다. 대만대에서 가까운 中正區나 大案區의 월세가 부담스러운 학생들의 경우 지하철로 이동이 용이한 永和區에서 집을 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III. 출국 전 준비 사항
저는 코로나로 인해 대만 입국이 제한되던 시기에 교환학생 파견을 진행했기에 현재와는 입국 절차가 많이 달랐습니다. 예를 들면, 서울대에서는 교환학생 파견자로 선정이 되었고, 대만대에서도 제 파견을 허락하였지만, 그와 별도로 대만 교육부에서 ‘입국허가서’를 받아야했는데 개강이 가까워져가는데 입국허가서가 빨리 나오지 않아 가슴을 졸였습니다. 또한, 비자를 신청할 때도 ‘코로나 시기’의 ‘교환학생 비자’에 대한 규정이 분명하지 않거나, 시시각각 규정이 변해서 애를 먹었습니다. 특히 그 당시 서울의 타이베이대표부의 비자 신청자가 많아 출국일 전까지 비자 발급이 요원해, 부산까지 내려가서 부산타이베이대표부에서 비자 발급 절차를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대만 현지 도착해서는 2주간 방역호텔에서 격리를 하였으며, 우체국에서 통장을 개설하고, 현지 이민소에 가서 거류비자를 거류증으로 바꾸는 등 각종 행정절차 때마다 한 번에 해결이 안 될 때가 많았습니다.(예를 들면, 통장 개설의 경우 반드시 ‘실물도장’이 필요하다거나, 관공서에서 현금만 받는다거나 등) 최종적으로 거류증과 대만대 학생증을 받아드는 순간까지도, 내가 대만에서 정말 학교를 다닐 수 있을 것인가 회의가 들만큼 매순간 많은 고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대만 도착 초기에는 하루하루가 너무 고단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좋은 경험이자 추억들입니다.
IV. 학업 및 현지 생활 안내
[수강신청]
대만대 학부생들의 경우 수강신청은 다소 까다로운 편이나(우선순위를 정해 신청한 후 학교에서 배정해 줌), 대학원생의 경우 인원 초과로 인해 원하는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대학원 특성 상 본인의 세부전공과 너무 동 떨어지는 수업을 들을 경우 본인에게도, 함께 토론을 할 다른 동학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기에, 미리 교수님들과 상의가 필요합니다. 저는 개강 전 미리 교수님들께 메일을 보내서 간단한 제 소개와 함께, 수강 가능 여부를 여쭈었습니다. 그럼 교수님들께서 반겨주시기도 하고, 해당 수업보다는 저에게 더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수업을 추천해주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학원 수업]
저의 경우 일상생활에서 쓰는 중국어보다는, 대학원 전공수업이 알아듣기 훨씬 쉬웠던 것 같습니다. 교수님 강의의 디테일한 어휘를 전부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전공 배경지식을 활용해서 내용을 유추하고, 관련 논문과 자료들을 예/복습하면 수업을 따라가기 크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교환학생 생활 초기에 식당에서 메뉴판은 못 읽어도 전공 관련 논문은 읽을 수 있는 괴리가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원 수업은 서울대에서와 마찬가지로, 교수님의 강의 외에도 학생들의 발표와 토론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학기 중에 보통 개인당 두 차례의 구두발표 를 하고 기말서면논문을 제출합니다. 석사생은 1만~1만2천자, 박사생은 1만5천자~2만자 분량의 논문을 제출해야 합니다. 구두발표는 통상 각자 선택한 주제에 대해서 20분의 발표시간이 주어지고, 발표 이후 문답과 토론 시간이 10-20분 정도 이어집니다. 가끔 개인이 아닌 2-3인이 한 팀이 되어 한 시간 이상을 발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는 두 가지를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첫째, 수업 중 (대형강의가 아닌 이상) 본인이 이해하지 못한 내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저도 학기 초에는, 잘 모르면서도 부끄럽다거나 눈치 보느라 질문하지 않고 넘어가곤 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한 어려운 내용들은 대만 학생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둘째, 한국의 사례, 문화에 관해서 자주 공유(分享)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대만대 교수님과 동학들에게 있어서도, 한국 대학원생의 학업이나 관심사, 진로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또한 최근 한류로 인해 대만인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 큰 편입니다. 가볍게는 한국 드라마나 케이팝, 한국음식 등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학술이나 좀 더 무거운 주제에 이르기까지, 먼저 마음을 열고 대화하면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습니다. 참고로 대만 친구들이 한국의 과자, 라면, 술 등을 매우 좋아하므로, 소소한 간식을 선물하거나 함께 한국음식을 먹을 기회를 많이 가져보길 추천합니다.
III.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저의 인생은 대만 교환학생을 다녀오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 회사생활을 길게 했고 해외출장이 잦은 편이였기에 외국생활에 대한 환상이 큰 편은 아니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대만에서 보낸 두 학기, 총 11개월은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고, 앞으로의 향방을 좌우할 큰 자산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대학원 수업을 들으며 학업 역량을 높이고 현지 교수님들, 학생들, 외부 학자들과 여러 방면으로 교류하였으며, 매 학기 수차례의 구두 보고를 실시하는 한편, 두 학기 동안 총 네 편의 소논문을 중국어로 작성하여 좋은 성적을 얻었습니다. 제가 쓴 소논문들은 추후 보완하여 대만 학술지 투고를 진행할 예정이며, 대만 학회에서도 발표하고자 준비 중입니다.
저는 2022년 9월에 대만으로 파견되기 전까지는 한 번도 대만을 가본 적이 없었고, 현지에 거주하는 대만인 지인도 전무했기에, 학교에 제출할 현지 비상연락망에 쓸 수 있는 전화번호조차 단 한 개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파견기간 동안 대학원 동학과 선생님들뿐 아니라 중국어수업에서 만난 외국인친구들, 타대학 학자, 작가분들, 운동·음악 등 취미활동을 하며 만나 친해진 친구들, 대만 전역을 여행하며 인연을 쌓은 이들까지,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고, 친밀한 교류를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참고로 대만에서 여행은 ‘좀 미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주 다녔던 것 같습니다. 방학 때는 물론이고, 매 주말, 때로는 평일 수업이 끝난 이후에도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저는 특히 문학전공자로서 각 지역의 문학관은 빠짐없이 참관하였고, 저명작가의 생가나 기념관 등도 자주 찾아다니면서 영감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온천을 좋아해서 대만의 유명한 온천지도 골고루 다녀보았습니다.
돌아보면, 교환학생 파견 과정은 분명 굉장히 험난하고 힘들었습니다. 대학원생이 교환학생을 가는 사례가 많지 않거니와, 코로나 시국에 특히 방역에 엄격하고 보수적인 대만 파견은 더욱 녹록치 않았고 불확실한 요소들이 산재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참가하고 있던 여러 활동을 중단해야 했고, 조교나 장학금 기회 등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에서 보낸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시간들이었고, 제 자신에 대해서도 새롭게 발견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지금 교환학생 지원을 망설이거나, 두려워하는 분이 계시다면 어떤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꼭 도전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시고 지원해주신 서울대와 OIA, 학과에도 감사드립니다.